■ 저자의 말
2023년은 휴전 70주년이 된다. 휴전 이후 남북한에서 분단의식은 더 깊어진다. 서로 살상했던 동족상잔의 후유증으로 적대감이 팽배한다. 해방 직후의 군사적 분단(지리적 분단)과 남북한 정권수립 후의 정치적 분단(이념적 분단)에 이어 민족적 분단(심리적 분단)이 깊어 가는 것이다.
민족사의 중심지였던 서울에 대항하는 또 다른 도시가 정치중심지로 된 후 서로의 마음자리까지 멀게 하면서 민족문화의 동질성은 옅어져 갔고 이질성은 크게 드러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1970년대 남북한은 더는 이질화된 현상을 막자면서 대화를 시작했지만 결과는 자기 쪽의 문화현상을 더 내세우고 강화(Reinforcement)하는 형국을 보인다. 그때 북한에서는 우상화 상징을 만들어 내면서 한창 대중조작을 하던 시기였고 남한에서도 한국적인 것을 내세우려던 동향이 세찼던 시기였다.
북한은 해방 후부터 모든 분야에서 “소련을 따라 배우자”를 목표로 했고 정권수립 후에도 민족전통을 폄하하는 행태를 보이다가 전후복구시기(1954~1960)에는 집단주의화를 추진하면서 전통적인 모습을 많이 훼손시켰다. 하지만 1960년대 혁명전통 수립기(1960~1968)에는 중소 이념분쟁 와중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전통문화 말살을 완화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곧 주체를 내세운 유일사상 확립기가 되면 온갖 상징문화를 만들어 내면서 대중조작을 하던 시기를 맞는데 이때가 남북대화가 시작된 1970년대다. 남북대화가 간헐적으로 열리던 1980년대를 넘기고 1990년대가 되면 북한에서는 소련과 동유럽권 국가들의 공산정권 퇴진을 목도하게 된다. 이때 북한은 위기의식 극복 방편으로 민족회귀를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문화건설의 두 기둥으로 삼게 된다.
북한이란 존재는 우리에게 어떤 대상인가?
남북한은 지금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다. 이 특수관계가 80년 가까운 격절을 겪다 보니 계란, 달걀을 닭알이라 하던가, 김 100장 한 톳을 40장이 한 톳이라 하는 것이야 그렇다 치고 백두산을 “김일성의 산인 동시에 김정일의 백두산”이라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보게 된다. 이처럼 같거나 닮은 것보다 다른 것이 더 많은 모습을 보노라면 북한 동포가 함께 살아야 할 대상은 맞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같거나 닮았거나 한 민속문화도 있어서 전통명절에는 북한에서도 장기, 바둑을 두고 윷놀이, 그네타기, 널뛰기를 하고 연날리기, 팽이치기, 제기차기를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형식은 비슷해서 닮았기도 한데 놀이 내용에서는 많이 다르기도 하다. 분단 이전에 지역적으로 이미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분단 이후 달라진 것이 더 많다.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르고,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그저 다르거나 닮았거나 하면서 그대로 둬야 할 것인가? 이 다름을 독소가 되게 하기보다 자양분이 되게 할 수는 없을까?
이런 관점에서 북한문화 중에는 전통 부분을 포함해서 우리와 같은 것이 아직 살아있을까, 혹은 닮은 것이라도 있을까를 면밀히
살펴보게 된다. 그래도 남북한 문화통합의 연결고리가 되고 불쏘시개가 될 재료를 찾으려는 기대 때문이다.
민족문화라는 공유의 보편성을 찾아내려고 할 때 대남관계에서 억지를 부리는 가증스런 저들에게도 포용의 큰 보자기를 펼치고 지금의 특수관계를 정상국가 관계로 전환해 가야 할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책은 사단법인 북한연구소가 발간하는 월간 『북한』 지에 연재(2020. 10~2022. 12.)된 글들로 구성되었다. 당초 깊이 있는 천착보다 연구자들이나 관심을 둔 독자들에게 귀띔하듯이 썼던 것이어서 성긴 부분도 많을 듯하다. 지적을 바라면서 책으로 엮어준 도서출판 JMG에 감사드린다.
2023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