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교육 현장에 필요한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란 흔히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불리며 장애 유무, 연령, 성별 등의 조건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도구나 시설을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하는 디자인을 의미한다. 이 책은 그 유니버설 디자인의 원리를 교육 현장에 접목하여 선생님들의 학급운영에 활용하도록 하기 위한 독특한 연구와 경험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접근법을 교육학에서는 ‘보편적 학습 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라고 부른다. 여기서 ‘보편적’이라는 말은 획일화된 것이 아니라, 교실에서 모든 학생이 평등한 것을 일컫는다. 즉, 모든 학생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수업에 몰입까지 하게 만드는, 조화를 중시하는 학급운영의 일환이 바로 유니버설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교사가 전문적인 디자이너가 되어 물리적인 사물을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전통적으로는 특수교육 분야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이 더 관심을 받았지만, 이제는 특히 초등 교육 현장에서 장애 학생은 물론 학급에서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구성원 모두에게 조화로운 분위기가 필요해짐에 따라 유니버설 디자인의 역할이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교육과정만 잘 설계하면, 교실만 쾌적하다면
모든 학생이 조화롭게 학습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학습은 교수법과 교육과정뿐 아니라 학습 분위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한때 유니버설 디자인은 이러닝에 적용되어 플랫폼과 콘텐츠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활용된 적도 있으나, 지금은 학급 내의 조화로운 관계와 정서적 유대감을 창출하는 데서 더 큰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이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뿌리인 디자인 분야가 사람들의 행동과 경험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춰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디자인은 단지 제품을 편하고 예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사회 문제 혁신에도 활용된다. 우범지대의 으슥한 골목길에 화사한 그림과 색을 입혀 범죄를 저지를 심리적 동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범죄 예방 디자인(셉테드)’이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교실에서 일어나는 문제 역시 디자인을 통해 자연스럽게 심리적 분위기를 바꾸면 해소될 수 있는 것이 많다. 따라서 이 책은 교육과정이나 물리적인 교실 환경의 디자인을 논하는 대신, 학생과 교사 사이 유대관계, 학생들끼리의 정서적 조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도록 ‘학습 분위기를 디자인하는’ 기법들을 소개한다.
작금의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따돌림과 소외, 학교폭력, 학생과 교사 사이의 갈등 등 정서적, 관계적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한 교실에서 그러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과연 교사 한 명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할까? 유니버설 디자인은 그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전체적인 학급 분위기를 조화롭게 변화시키면 누군가 소외되는 경우가 없어지고, 그렇게 아이들끼리 조화로운 관계가 형성되면, 나아가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도 긍정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쇄적 효과를 내는 것이 바로 디자인의 힘이다. 앞서 언급한 범죄 예방 디자인은 범죄율을 낮추는 효과를 넘어서 그 지역 주민들이 서로 신뢰하게 만듦으로써 다정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저자들은 그 인적 환경을 조화로운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유니버설 디자인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임을 강조한다.
만일 한 학생이 어떤 의견을 냈는데 같은 교실의 누군가가 그것을 무시한다면? 혹은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데 나를 괴롭히는 학생과 한 공간에 있다면? 당연히 그 학생의 학습 의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의견을 편안히 말하고 학습할 수 있는 교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하여 아이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이나 편안해하는 환경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그를 토대로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학생의 단점이 아닌 장점에 주목한다거나, 아이들끼리의 발언량을 고르게 조율해주는 것은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모르는 것, 못하는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교실, 공감이 넘치는 교실, 잘못을 통해 배우는 교실이라면 어떤 아이든 적극적으로 본인의 의견을 낼 수 있고 학습할 수 있다. 이 책 〈다정한 교실을 만드는 유니버설 디자인〉은 아이들과 교사 사이 유대관계를 깊게 하는 동시에, 반 아이들끼리의 유대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인적환경의 유니버설 디자인 방법과 실제 사례, 그리고 원인 분석과 해결책까지 제시해주어 교사의 평소 고민을 속 시원히 해결해줄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 교사가 실천하고 효과를 낼 수 있다!
교실이라는 작은 공동체 속에서 누구 하나 소외되고 불안해하지 않도록, 또 불공평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중심을 유지하면서, 학생들에게 타인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둔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소통 및 상호작용 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공교육에서 교사라는 역할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면 그들도 타인의 입장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자신과 타인이 함께 지내는 사회를 다정하게 만드는 방식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주된 독자인 선생님들이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이름만 보고 환경을 꾸미고 관리하는 것 혹은 장애 학생들만을 위한 내용이라고 판단하지 않길 바란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다루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학급경영을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가 아니라, 아이들과의 신뢰 관계를 쌓고 모두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교실을 만드는 지향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