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심장 석학 박승정, 시간 속을 유영하며 기억하고 기록하다.
그가 카메라로 담은 25년, 300만 마일의 내밀한 이야기.
의사이자 늦둥이 딸을 둔 아버지, 때로는 그 모든 수식을 내려놓은 사람 박승정의 첫 포토 에세이. 잦은 출장길과 틈틈이 오른 가족과의 여행길을 죽 이으면 300만 마일의 비행 거리로 환산된다. 세계 곳곳에서 그가 카메라로 기록한 25년이 무수한 사진으로 남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999년부터 2023년에 이르는 저자의 내밀한 시간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저항 없는 웃음이 터져 나오다가 적요해지고, 마침내 뭉클하다. 아득한 숫자들은 그를 어디까지 데려다 놓고, 돌아오게 한 걸까.
어떤 길은 동료 혹은 친구와, 늦둥이 딸과 함께했고 때때로 혼자 거닐었다. 어떤 곳은 여러 해에 걸쳐 들렀다. 어떤 해는 유난히 분주하게 여러 곳을 다녔다. 각기 다른 자아로 일상과 동떨어진 시간과 장소에 놓였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저자는 그가 포착한 다채로운 찰나의 장면들 속에서 반복되어도 싱그러운 삶의 표정을 발견했다. 여행은 결국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말이 있다. 저자가 그러했듯 이 책의 끝에서 스스로를 발견해 보길 바란다. 저마다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소소하고도 대수롭고, 그래서 반복되어도 싱그러운 것임을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하다.
“같은 장소, 같은 사물일지라도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이미지를 담는다. 렌즈의 차이, 구도의 차이, 각도의 차이, 빛의 밝기, 셔터 스피드, 그 밖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차이들이 모여 생경한 인상을 자아낸다. 사사롭고 근소한 차이들이 똑같은 대상의 전혀 다른 존재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반복되어도 싱그럽다.”_본문에서
사진, 그리고 사진집.
스스로 기억하기 위한 기록에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기억되기 위한 기록으로.
“어찌 보면 새롭게 과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중략) 나를 아는 이들의 기억 속에 조금이라도 오래 남고 싶다는 욕심은 동물의 본능에 가깝고, 앞으로 나를 기억해 줄 늦둥이와 집사람을 위한 사랑 이야기를 조금 남겨 놓고 싶었다.”_본문에서
본문에서 발췌한 위 문장 몇 마디가 이 책의 시작점이 되었다. 지극히 사사롭고 소박한 이유로 25년의 세월을 취합하는 대대적인 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직업 특성상 우리 모두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다는 간명한 사실을 자주 목도하는 저자는 더 지체할 것 없이 그간 스스로를 기억하기 위해 찍어 온 사진을 엮어 사랑하는 이들에게 기억되기 위한 또 다른 기록을 남기고자 했고, 그렇게 이 책이 탄생했다. 이처럼 지극히 사적인 활자와 개인적인 시각으로 남긴 사진을 보며 뭉클함을 비롯한 이런저런 감정의 교차를 느낄 수 있는 건, 누구나 유한함이란 섭리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리라.
본서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목차가 있지만 목차가 없는 책이라는 것이다. 본문 전체를 몇 갈래로 나눠 각각 타이틀을 달아 묶는 일반적인 구성을 벗어났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어인 ‘내밀한 기록’에 초점을 맞춰 일기장처럼 사진으로 남긴 나날의 날짜와 내용만이 연거푸 줄 이을 뿐이다. 또한 구태여 연도나 장소별로 정리하지도 않았다. 집을 청소하다 우연히 찾은 앨범은 왜 항상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지. 기어코 앨범을 꺼내 들고는 아무렇게나 앉아 손끝에 걸리는 대로 펼쳐 보게 된다. 저자가 여러 밤을 지새우며 사진을 뒤적이고, 기억을 더듬어 끄집어낸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저자의 호흡에 따라 본서의 일상성을 더욱 밀착하여 느낄 수 있도록 이와 같이 다소 두서없는 구성을 과감히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