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노는 지주에게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분양받은 작은 토지를 자율적으로 경작하여 독자적인 가족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지주층의 독점적 토지 소유, 공권력 사점, 인신규정으로 부역노동(무보수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예속적 소농이다. 부역노동을 수행하는 고전적 개념의 농노는 12~13세기경 생산물지대나 화폐지대를 지불하는 순수장원제로 이행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이 책은 전형적인 고전장원제가 발전했던 9~11세기 루아르강과 라인강 사이의 북부 갈리아지방을 중심으로 농노노동의 수탈구조와 크기를 분석한다.
중세의 문헌기록을 꼼꼼하게 검토한 이 책은, 기존의 연구에서 구체적으로 조명하지 않은 농노노동의 실체를 샅샅이 밝힌다. 예를 들어 ‘코르베(corvee)’는 그동안 일반적인 부역노동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저자는 ‘고전장원제 아래서 코르베가 표준적인 농민보유지인 망스의 보유자가 일정 크기의 토지를 할당받아 경작하는 정적부역 외에, 역축과 쟁기를 가지고 주로 파종기에 영주직영지의 곡물경작지를 대상으로 해서 추가로 갈이질하는 부역’이었다고 정리한다. 또한 코르베의 수행 시기와 기간, 수행 방식, 나아가 코르베가 농노에게 부담을 주는 정도까지를 다루어 이 착취 제도가 농노의 삶에 미친 영향까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다음으로 이 책은 서유럽 대륙부에서 작성된 영지명세장을 지역별로 분류하여 고찰하고, 파리 분지 중심부 영지의 부역노동제도와 파리분지 주변부 영지의 부역노동제도의 특징을 정리한다. 파리 분지 중심부에서 고전장원의 기본적인 부역노동제도는 경작부역, 잡역, 코르베 등으로 구성된 혼합적 형태를 띠면서도, 영주직영지의 일정 면적을 할당받아 경작부역을 수행하는 정적부역 방식이 우세했다. 파리 분지의 주변부로 갈수록 고전장원의 전체 농민보유지 중에서 노예망스의 비중이 증가했으며, 북쪽 주변부에서는 주부역이 주된 부역방식으로 드러났고 동쪽 주변부에서는 정적부역과 주부역의 결합을 주축으로 한 혼합형 부역방식이 지배적이게 나타났다. 지역별 부역노동제도의 특징과 시간에 따른 변화를 살핌으로써, 저자는 농노도농의 부역부담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설명한다.
11세기 서유럽 고전장원제의 부역노동제도의 경제적ㆍ사회적 형태, 농노의 구분과 부역노동의 종류, 부역노동의 구체적인 시기와 방식, 크기를 문헌 자료를 통해 분석한 이 책은 고전장원제에서 영주가 농노의 노동을 어떻게 수탈했는가, 그리고 그 수탈제도가 농민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