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화해와 질서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길러내려면
- 어지러운 사회 문제를 극복하는 순자의 ‘예’와 ‘도덕’
인류 문명은 학문의 발전을 토대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공허한 이론적 탐구나 단지 이론을 위한 이론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성의 성취와 결부되었을 때 학문은 비로소 제 빛을 발한다. 순자는 학문과 실천의 결합을 강조하며, 이것이 인류 문명의 발전 동력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혼란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도덕성은 현실에서 인간의 의지와 실천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순자의 사상은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관념적 도덕이 아닌 실천적 도덕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사회를 이끌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송두리째 부정당했던 유가 사상이 재평가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람 사이의 외적 관계로 정의되는 정치와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예의’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통해 ‘예’에 사회적 생명을 불어 넣음으로써 유가의 사회철학을 완성한 순자의 사상은 자본과 자유, 민주의 서구 중심주의가 모순을 드러내는 현대 사회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즉 《순자》는 절대 자유를 추구하는 서양 사상이 드러낸 비공동체성과 자본의 무한한 확장이 부른 비인간성, 노쇠한 서구 민주주의의 비주체성 등에 관한 문제를 고전 사상을 통해 현대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순자는 인간의 화와 복은 오직 인간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으며, 도덕성 역시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 《순자》에는 제자백가의 여러 학풍을 집대성한 순자의 정치와 사회에 관한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2,30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뿐만 아니라 인류의 발전 가능성까지 내다보게 하는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극도의 혼란에 빠졌던 전국 시대 후기에 지적 탐색과 실천의 접목에 매진했던 순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면,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이 해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다.
예로 다스리는 성왕의 나라를 꿈꾸다
-순자 사상의 핵심을 담은 중국 철학사의 획기적인 작품 《순자》
《순자》는 대화체가 많고 일화나 경구 중심으로 이루어져 사상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어려웠던 《논어》나 《맹자》 등과 달리, 저자가 직접 자신의 주장을 펼친 글과 제자들의 기록까지 아우르고 있으며, 최초로 일관된 사상체계를 갖춘 논문이다. 또한 《순자》는 각 편의 핵심 주제를 편명으로 삼고 있으며 하늘과 인간의 일, 정치·경제와 논리학에 이르기까지 종합 학문을 다루고 있는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전해지는 《순자》는 당나라 때 양량이 재구성한 것으로 모두 3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32편 가운데 순자가 직접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18편 모두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책세상 고전의 세계 《순자》는 그중 순자 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는 친필 저작이자 대표작이라 평가받은 7편만을 골라서 옮겼다.
1장에서는 경험적 지식의 중요성과 공부는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 강조하며 예법과 인의에 전심전력할 것을 당부하고 있으며, 2장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학설을 대표하는 열두 사상가를 비판하며 올바른 학자의 모습을 제시한다. 3장에서는 왕도는 예법과 인의에 입각해 어진 정치를 하는 것이며 성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어떤 나라이고 왕이 갖추어야 할 덕에 대해 설명한다. 4장에서는 욕망 때문에 인간 사회는 등급을 구분해주는 예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서 출발해 어진 정치로 백성들의 생산을 늘리고 가혹한 세금을 없애야 하며, 예의에 입각한 정치로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5장에서는, 하늘은 두려움이나 숭배의 대상이 아니며, 하늘보다 인사가 중요하다는 순자의 합리적인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인위의 핵심은 예의이므로 예의에 입각한 일관된 도로 다스려야 한다는 현실 정치에 대한 주장이 담겨 있다. 6장에서는 예가 무엇에서 생겨나는지 설명하고 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절제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특히 예는 치국의 핵심이므로 그 정신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7장에서는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순자의 기본 사상과 선함은 인위 때문이고, 성인의 인위가 바로 예의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