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지구, 아픈 언니를 구하는 소녀의 당찬 모험
어느 미래의 지구, 사람이 사는 곳은 모두 쓰레기로 뒤덮였다. 숲은 전 세계에 열 군데밖에 남지 않아 보호 구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아이들이 걸어 다니는 등하굣길, 자동차가 지나는 도로 할 것 없이 쓰레기를 겨우겨우 피하거나 밟고 넘어 다녀야 한다. 땅이나 물, 공기는 오염된 지 오래고 흔하디흔하던 씨앗도 구하기 어려워졌다.
그런 지구에서 나무를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들이 태어난다. 주인공 올가 역시 책이나 옛 영화에서만 나무를 봤지만, 방 안에 비밀 정원을 만들 만큼 자연에 관심이 많다. 올가의 언니 리나는 환경 오염 때문에 폐가 아파서 치료 기기를 달고 산다. 언제나 언니를 걱정하던 올가는 꿈속에서 숲의 정령을 만난다. 올가는 언니를 낫게 할 실마리가 숲의 정령에게 있다 믿고,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존재조차도 확실하지 않은 숲을 찾아 떠난다.
함께 가꾼 마음의 숲에서 탄생한 영웅
이야기 속 지구는 당연했던 초록이 당연하지 않게 변해 버렸다. 올가의 친구 마르코스는 산세베리아, 소나무, 선인장 같은 이름이 낯설기만 하다. 어떤 사람들은 씨앗을 귀한 수집품처럼 모은다. 하지만 올가는 평범한 또래들과 달리 우주여행이나 게임보다 씨앗을 더 좋아하고, 남들은 상할까 봐 고이 모셔 두는 씨앗을 망설임 없이 심는다. 비밀 정원을 가꾸는 동안 올가의 마음속 숲도 함께 자랐다. 아픈 사람이 없는 지구, 아픈 지구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푸른 숲 말이다.
올가가 떠나는 여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험담과는 조금 다르다. 뾰족하게 솟은 탑, 무시무시한 용, 새빨간 용암이 흐르는 강, 아이들을 잡아먹는 마녀 대신 낡은 휴대폰이 쌓인 탑, 버려진 용 인형 옷을 입은 아이, 도시락 상자와 플라스틱 컵이 둥둥 떠다니는 개울, 산에서 살며 식물을 돌보는 할머니가 나온다. 웅장한 절경과 화려한 악당은 어디 가고, 더럽고 냄새 나는 풍경에 우스꽝스럽거나 초라한 행색을 한 이들이 나온다. 올가는 치열한 전투 끝에 생긴 흉터가 아닌, 넘어져서 까진 무릎을 영광의 상처로 남긴다. 그러나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는 올가의 모험은 여느 대서사시 못지않게 위대하다. 리나 언니를 도우려는 마음에서 싹튼 용기가, 인류와 그 인류를 품고 있는 지구까지 돕는 길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어른도 아이도, 심지어 떠돌이 개조차도 올가의 씩씩함을 받쳐 주는 동료가 된다. 마르코스는 숲까지 안전하게 가는 길을 알려 주고, 리나 언니는 올가가 자랑스럽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할머니는 잠시 산길을 함께 오르며 올가의 정원과 여행길을 응원한다. 그나마 올가에게 짓궂게 굴던 형제 팀과 톰도 올가가 하는 말에 흔들리거나 감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올가의 모험에는 절대적인 악당도, 올가를 완전히 부정하는 존재도 없다. 올가의 마음속 숲을 지켜 준 조력자들 덕분에 올가는 바깥세상의 숲을 찾아갈 수 있었다.
먼 나라, 먼 미래가 아닌 이야기
어느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의 지구, 사람이 사는 곳은 이미 쓰레기로 뒤덮었다. 이른바 ‘쓰레기 섬’이라 부르는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와, 의류 폐기물이 이룬 언덕 위에서 풀 대신 옷을 뜯어 먹는 소의 모습은 많은 이에게 충격을 안겼다. 굳이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쓰레기로 가득한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쓰레기통 위에 하나둘 버리고 간 일회용 컵, 전봇대며 길모퉁이에 겹겹이 쌓인 쓰레기봉투, 아파트 분리수거함을 가득 채운 재활용품은 일상적으로 보는 광경이다.
책 속에 나오는 어떤 정치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구에 쓰레기를 버릴 공간이 없으니 우주에 버립시다.” 그런데 이것도 현실이나 다름없다.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이나 로켓이 분리되면서 생긴 파편, 우주 비행사가 떨어뜨린 물건 따위가 우주 쓰레기가 되어 지금도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 우주 쓰레기끼리 충돌하면 다른 인공위성과 우주 정거장에 피해를 주거나 새로운 쓰레기가 생길 수 있고, 우주 쓰레기가 지구로 떨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우주 쓰레기에 미리 대처하지 않으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땅속에, 물속에, 대기에, 우주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있다. 지구가 얼마나 자정할 수 있을지, 자정 가능한 임계점을 벗어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른 채 지구를 소모품처럼 사용하고 있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지구가 망가지기는 쉬워도, 해결하기는 그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의 올가가 등장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올가가 되고 영웅이 되어 씨앗을 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