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현장으로, 노동자에게로, 세상 속으로 섞여 들어
‘빌어먹으며, 거지발싸개 같이’ 살고자 한 활동가 이훈구의 생애
이 책의 주인공 이훈구는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9년부터 2020년까지 40여 년간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다. 이훈구는 1979년 학생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2005년경 정치조직운동을 정리할 때까지, 그리고 2002년부터 2020년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노동보건안전운동을 매개로 사회 변혁, 나아가 모든 사람이 주체가 되는 ‘삶으로서의 운동’을 꿈꿨다. 이 책은 긴 사회변혁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이훈구의 문제의식과 활동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를 정리했다.
이훈구는 대학 탈춤반에서 사회과학을 학습하던 시기에 1979년 10.26사태,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지나며 신군부정권을 규탄했고, 이후 노동 현장으로 이전해 공장에서 일하다 1985년부터 인천 제파PD 그룹에서 지역 활동을 했다. 1987년 6월 민중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거쳐 1989년에 조직 내분으로 정치조직 활동을 중단한다. 그는 1980년대의 지나친 이념 지향성과 대리운동 방식, 민주적 소통과 훈련의 부족, 자기 검열과 헌신의 강요에 문제의식이 있었고, 전노협 백서 작업, 한국노동정치이론연구소 세미나 등에 참여하며 인식의 변화 과정을 가졌다. 1999년부터는 정치조직 ‘노동자의 힘’ 창립에 참여해 조직위원장, 연대사업위원장 등을 지내며 투쟁 전반을 담당했다. ‘조직 중심주의’로 평가될 만큼 계급정당 결성 실현을 위해 온 힘을 기울였으나 내부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처리 문제를 계기로 2005년 탈퇴했다. 이때 이훈구는 계급적 주체를 형성하려면 현실 문제에 천착해 구체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현장에서부터 이를 시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장 구체적인 나의 몸과 노동과정으로부터 시작해
삶의 주인으로서 세상을 바꿀 주체가 된다는 것
이훈구가 삶의 마지막까지 노동안전보건운동에 매진한 것은 이윤과 노동자의 몸과 삶이 부딪히는 경계, 즉 실제 노동과정에 주목해야 노동자계급 주체 형성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훈구가 초대 소장을 지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노보연, 2003년 출범)는 기존 단체의 전문주의, 산업재해 인정 중심의 활동에서 벗어나 노동과정을 강조해 산업재해의 원인 해결에 집중하면서 현장 노동자의 투쟁을 통한 건강권 쟁취를 중시했다. 한노보연의 현장 프로젝트 사업과 노동조합 실천단 지원은 현장 노동자가 직접 참여하는 기획이었고, 작업 방식과 노동시간을 개선하는 여러 성과를 남겼다. 나아가 이훈구는 노동안전보건운동이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운동이며, 따라서 노동안전보건 문제에서 나아가 세상 사람들의 건강 문제, 보건의료 영역과 섞이며 사회복지, 사회 공공성 문제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는 “운동을 어떻게 삶으로 확장할 것인가”에 관한 이훈구의 끈질긴 고민이 잘 드러난다. ‘죽은 노동’이 아닌 ‘산 노동’을 한다는 것은 현장 노동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삶의 주체, 노동의 주체로서의 정치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가 생각한 운동은 “혁명을 꿈꾸는가 아닌가”의 차원이 아닌 “노동, 노동시간을 자본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관장하며 주도해 나가는 것”으로 파악된다. 같은 세대의 운동가들이 보수 기득권이 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공장에서 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며 “섞여야 한다, 넓혀야 한다”고 당부한 이훈구의 생애를 통해 한 노동운동가의 사상과 실천을 엿보는 동시에, 앞으로의 운동과 더 나은 삶을 전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