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진, 장서연, 조송, 최현숙, 한채윤 등
존엄하게 사랑하며 욕망하는 퀴어식 인생을 기록하다
2015년, 스물세 살이던 김보미는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자신의 성적 지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세상은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퀴어’라는 낯선 조합에 화들짝 놀랐다. 신문과 방송 지면은 앞다투어 그의 목소리를 옮겨 적었고, 인터뷰와 취재 요청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그가 이성애자였다면 결코 하지 않을 질문을 자꾸만 건네었다. ‘왜 커밍아웃했는가?’ ‘어째서 주어진 세계에서 가만히 살지 않느냐’는 차별의 말 앞에서 그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정상성이 깨졌으면 좋겠어요. (…) 당연하게 이성애자로 간주되는 사회 안에서 아등바등 살았는데 커밍아웃은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죠. 그것이 가져오는 불이익이 있을지언정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살겠다는 다짐이에요.”(《키스하는 언니들》 저자 인터뷰, 337쪽) 그의 대답은 마치 “왜?”라는 질문이 더는 들리지 않을 때까지,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가치들이 다양해질 때까지 커밍아웃하고 또 커밍아웃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대사회 커밍아웃을 통해 주어진 세계를 그대로 받아 안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김보미가 7년이 지난 지금, 김규진, 김은영, 명우형, 수, 연희, 장서연, 조송, 최성경, 최현숙, 춘식, 한채윤, 황소 등 성소수자들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들고 돌아왔다. 20대부터 60대 후반까지, 유튜버부터 변호사, 인권활동가, 작가, 레즈비언 클럽 사장까지 나이와 세대를 불문한 퀴어들을 마주하고 ‘어떤 삶을 추구하고, 어떤 해피엔딩을 꿈꾸는가’ 묻는다. 사회와 국가가 정해준 정상성이라는 잣대에 자신을 욱여넣지 않아도 이렇게 멋지고 꽤 번듯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열두 가지 예시는 존재 자체로 하나의 역사다.
성별과 정체성으로 가능성을 규정짓는
한심한 잣대들을 부수어버린 언니들의 이야기
이 책에서 김보미 작가는 인터뷰이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사랑하고 당당하게 살 방법을 묻는다. 결혼이나 시민결합 등의 제도적 선택지 없이, 가정을 꾸리거나 아이를 낳지 않고도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할 수 있을까? 퀴어로 살면서도 커리어를 안정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꾸려낼 수 있을까? 성정체성을 밝혀도(또는 밝히지 않아도) 괜찮을까? 안전한 관계와 마음 둘 공간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늙음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사실 해당 질문들은 성정체성 관련 부분만 제외하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두의 고민이다. 많은 이들이 비혼을 선택하거나 결혼을 유보하고, 가임기 여성 출생률이 0.7명대를 육박하며, 불안정한 취업 일자리는 청년 실업자를 25만 명 6.7퍼센트에 이르게 만들었다. 청년들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과 ‘다포(모든 것을 다 포기)’를 읊으며 생을 자조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모두가 불행을 배틀하는 것 같다. 이쯤 되면 우리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정상성’에 대해 의심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으며, 남들과 조금 달라도 사회 안에 제도적으로 포용하는 사회라면 자조의 마음이 사그라지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퀴어라고 더 불행하거나 더 행복할까?
그저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이야기일 뿐!
이 책은 정상성을 거부하고 주어진 세계를 의심한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지 보여준다. 김보미 저자를 포함한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 성정체성의 혼란, 원치 않는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정체성을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 주류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거나 사랑하지 못하고 거부했던 시간까지 모두 견뎌낸 뒤에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며, 어떻게 살아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지 알아차렸다.
열두 명의 인터뷰이가 생각하는 삶의 지향점은 각자 조금씩 다르지만 바라는 바는 같다. 바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자신들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힘든 법이라고, 고립되었다고 느낄 때마다 이 책을 펼쳐보라고 말을 건넨다. 유부 퀴어 김규진은 ‘행복은 노력해서 이루어 얻어내야 하는 야망’(김규진, 109쪽)’이니 자신만 생각하며 나아가라고 격려한다.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에게 무지개 깃발을 내보인 장서연 변호사는 ‘성소수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깊이 고민할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오히려 축복받았다(장서연, 90쪽)’고 힘주어 말한다. 2001년부터 우리나라 퀴어문화축제의 조직위원으로 활동한 한 채윤 활동가는 ‘행복해지기를 포기하지 말자, 끈질기게 행복하자(한채윤, 57쪽)’고 응원하며, 국내 최초 커밍아웃 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린 바 있는 최현숙 작가는 ‘무너지면 다시 하면 되고, 죽을 때까지 하면 된다(최현숙, 283쪽)’고 선언하며, 나이 일흔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퀴어의 산증인 명우형은 ‘혼자 있지 말고 울더라도 함께하자(명우형, 322쪽)’고 손을 내민다.
이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는 지금의 삶에 길을 찾지 못해 막막한 이들에게 하나의 롤모델이 되어준다. 독자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망하지 않는다’는 단순하지만 확연한 진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퀴어 인생 만렙 인터뷰이 12인
김규진(유부 레즈비언)
김은영(퀴어 클럽 사장)
명우형(이태원 퀴어 바 ‘레스보스’ 사장)
수(영상 연출가)
연희(스타트업 CEO)
장서연(변호사)
조송(유튜버)
최성경(출판사 대표)
최현숙(작가, 인권활동가)
춘식(직장인)
한채윤(성교육 전문가, 인권활동가)
황소(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