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연보
1926년(1세)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 159번지에서 태어나다.
1933년(8세) 인제공립보통학교 입학하다.
1936년(11세) 서울 덕수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하다.
1939년(14세)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하다.
1941년(16세) 경기공립중학교 자퇴하고 개성에 있는 송도중학교로 전학하다.
1942년(17세) 명신중학교로 전학하다.
1944년(19세)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다.
1945년(20세) 광복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상경해 ‘마리서사(茉莉書舍)’를 개업하다.
1948년(23세) 4월 20일 김경린,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과 『신시론』 발간하다. 4월 이정숙(李丁淑)과 결혼하다. 12월 장남 세형(世馨) 태어나다.
1949년(24세) 4월 5일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발간하다. 김경린, 김규동, 김차영, 이봉래, 조향 등과 ‘후반기’ 동인 결성하다.
1950년(25세) 1월 『경향신문』 입사하다. 한국전쟁 겪다. 9월 딸 세화(世華) 태어나다.
1951년(26세) 5월 육군종군작가단에 참여하다.
1952년(27세) 5월 15일 존 스타인벡의 기행문 『소련의 내막』 번역해서 간행하다. 6월 16일 「주간국제」의 ‘후반기 동인 문예’ 특집에 평론 발표하다.
1953년(28세) 5월 차남 세곤(世崑) 태어나다. 7월 중순 서울로 돌아오다.
1954년(29세) 1월 오종식, 유두연, 이봉래, 허백년, 김규동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발족하다.
1955년(30세) 3월 5일 미국 여행하다. 10월 1일 시작품 「목마와 숙녀」(『시작』) 발표하다. 10월 15일 시집 『선시집』 간행하다.
1956년(31세) 3월 시작품 「세월이 가면」 이진섭 작곡으로 널리 불리다. 3월 20일 오후 9시 자택에서 타계해 3월 22일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다.
1959년(3주기) 10월 10일 윌러 캐더의 장편소설 『이별』 번역해서 간행되다.
2014년(58주기) 7월 25일 이정숙 여사 별세하다.
푸른사상사에서 간행해온 박인환 전집 시리즈 『박인환 번역 전집』 『박인환 시 전집』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 『박인환 평론 전집』에 이어 마지막 권 『박인환 산문 전집』(맹문재 엮음)을 펴낸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박인환 시인의 수필, 한국전쟁의 체험 수기, 미국 여행기, 서간, 전기, 설문 등 41편의 글을 이 책에 수록했다. 아울러 당대 시인의 활동 상황을 참고할 수 있는 언론 기사를 실었다. 부인 이정숙과 큰아들, 딸의 추모글도 수록했다. 특히 이번 전집에는 박인환 시인의 경기공립중학교 학적부와 제적등본이 공개되어 그동안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았고, 가족 사항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도 수록되어 시인의 생전 모습을 다양하고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박인환이 시인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 1940년에 발표한 「고(故) 변(邊) 군(君)」부터, 타계하기 직전에 쓴 「환경에서 유혹」(1956), 타계 후에 발표된 「사랑은 죽음의 날개와 함께」(1963), 「불안과 희망 사이」(1967) 등 총 15편의 수필을 쓴 것으로 파악된다. 시인은 사랑에 관한 글을 주로 썼는데,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혼란한 시대, 한국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죽음과 불타고 황폐해진 도시의 참상을 목도하며 「서울 재탈환」, 「서울역에서 남대문까지」 등 5편의 수기에 여실히 기록했다. 「19일간의 아메리카」, 「서북 미주의 항구를 돌아」 등 4편의 미국 여행기에서는 미국에서의 체험, 한국 유학생과 이민자들의 삶을 살펴보고, 여행에서 만난 사람 등을 소개했다. 박인환 시인이 아내 이정숙 여사에게 보낸 편지와 이봉구 소설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연을 향한 시인의 다정다감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