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통일로 가는 초석,
남북 박물관의 교류를 꿈꾸다
박물관은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얼굴이다. 방문한 나라의 구석구석을 가보지 못하더라도 박물관 기행을 통해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방문했을 때 시간을 내 박물관을 방문하는 이유일 것이다.
남과 북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박물관을 둘러봄으로써 75년 넘게 갈라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오면서 달라지거나 유지된 다름과 같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박물관 교류는 다름을 확인하고 같음을 지향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2006년 6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소장된 북녘의 국보급 역사유물이 남쪽에 선보였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의 합의로 특별전 ‘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이 서울과 대구에서 전시된 것이다. 당시 선보인 역사유물은 고고역사분야 유물 65점, 회화작품 25점 등이었다.
이 특별전은 남의 국립중앙박물관과 북의 조선중앙력사박물관 사이에 이루어진 첫 번째 교류사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우리 민족의 전 역사시대를 포괄하는 유물들이 대거 선보임으로써 남북 문화재 교류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전기로 평가되기도 했다. 실제로 ‘상원 검은 모루 출토 구석기’, ‘왕건 청동상’, ‘관음사 관음보살좌상’, 심사정의 화조도, 김홍도의 신선도, 신윤복의 소나무, 정선의 옹천파도도 등 남쪽에도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역사유물을 직접 본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속적으로 남북문화협력을 모색했기 때문에 이러한 특별전이 가능했다. 2004년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남북은 북한 고구려고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힘을 모았고, 그해 금강산에서 고구려고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남북 공동전시회가 열렸다.
2006년 초에는 일본 야스쿠니신사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다가 100년 만에 돌아온 북관대첩비가 남북의 협력으로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남북의 교류와 협력사업이 하나씩 쌓이면서 남북 사이에 상호 신뢰가 형성되었고, 북의 중앙역사박물관 소장유물의 서울 나들이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특별전은 일회성으로 끝났다. 남과 북은 특별전의 정례화 함께 민족문화재의 전시·조사·연구·보존 등 각 분야에 걸친 남북 박물관의 교류 협력을 확대해 나가지 못했다. 남북관계가 단절되어 갈등이 심화되었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마저 중단돼 버렸다.
북의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이 다시 남녘에 선을 보이고, 남의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들도 평양에 가서 전시되어야 한다. 북의 고구려·발해·고조선 유물, 남의 신라·백제·가야 등 남북의 문화재들을 상호전시·연구한다면 우리 역사를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박물관 간 협력과 유물 교류는 남북의 화해·협력을 위한 동질성 회복의 지름길이다.
100여 년 전 대한제국 시대와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의 글을 읽노라면 한 가지 부러움을 느낀다. 이들은 기차를 타고 평양, 신의주 혹은 평양, 청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거쳐 만주와 시베리아를 넘어 멀리 유럽에까지 자유롭게 여행했다.
남북이 정치논리, 안보논리에만 매몰되지 않고 남북 사이의 문화교류에는 열린 자세를 가지고 폭을 넓혀가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것이 75년 넘게 갈라져 산 남북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자 남북 갈등을 완화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에 김정은체제가 출범한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4년 10월 24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나눈 담화 「민족유산보호사업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빛내는 애국사업이다」에서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하나의 핏줄을 이어받은 단군의 후손들”이라며 “온 겨레가 민족 중시의 역사문제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가지며 민족문화유산과 관련한 학술교류도 많이 해 단군조선의 역사를 빛내는 데 이바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이 담화에서 “민족유산보호지도국에서 국제기구와 다른 나라들과 교류사업도 벌여나가야 한다”며 “대표단을 다른 나라들에 보내 견문을 넓히도록 하고 다른 나라 역사학자들과 유산 부문 인사들과의 공동연구, 학술토론회도 조직하며 대표단을 초청해 우리나라의 역사유적과 명승지들에 대한 참관도 시켜야 한다”고 독려했다.
민족문화의 계승·발전이라는 전통적인 정책기조를 재확인하면서도 민족문화유산 보호와 대외홍보를 위한 남북, 국제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김정은시대 북한의 정책방향이 계승을 표방하면서도 다른 한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유산정책에서도 대외교류 측면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가 지속되고 한반도비핵화를 논의하는 국제회담이 중단된 조건에서 북한의 남북, 해외 문화유산교류는 제한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문화유산 교류는 비정치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비핵화문제와 남북교류가 분리돼 두 갈래로 추진될 경우 언제든지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남쪽에서도 남북관계의 단절에도 문화교류에는 열린 태도를 보여 왔다. 남북 교류가 막혀 있던 2011년에도 현존하는 북한의 59개 사찰과 6개 폐사지에 대한 상세한 사진자료가 남쪽에서 출간되고, 개성 만월대 발굴사업이 이어지고 있는 사례처럼 남북 문화유산 교류와 공동조사, 공동발굴을 위한 준비작업은 정세와 관계없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특히 문화유산 관련 분야의 교류는 남북의 오랜 분단의 이질감을 극복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남북의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하는데 역사문화유산은 가장 좋은 분야인 동시에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박물관 교류는 단순히 남과 북의 유적과 유물을 둘러보거나 서로 교류전시회를 여는 것에 거치지 않는다. 남북 역사학자, 박물관학 관계자들이 만나 다양한 경험을 교류하는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남북이 역사 문화유산을 매개로 박물관 교류를 통해 서로의 부족한 분야를 메우는 날이 오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