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유별나기는 하다. 근대 산업혁명 이후,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이행한 거의 유일한 국가이며, 더욱이 한류 콘텐츠로 전 세계를 속속들이 누비며 온갖 밈을 만들어 내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것은 아무튼, 한국인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그로부터 유래하는 특유의 생활방식, 그리고 한반도의 풍토와 역사적 흐름 속에서 형성된 특유의 기질이 그 원인이 되었을 터이다.
한국인 고유의 생활방식, 사고방식, 기질 등은 멀리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외래종교의 치성(熾盛)을 겪으며 마모되고, 특히 자본주의의 세계화라고 하는 근대화 시기 이후에는 식민치하에 놓이면서, 이어서 분단국가 체제로 살아오면서 크게 위축되고 왜곡되고 변화한 것도 사실이다. 그 와중에 분단 이후 남쪽 사회는 급속도로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를 겪으며 숱한 고비들을 넘겨 왔다.
마치 질풍노도의 시기와도 같은 지난 70년의 시기를 거치며, 한국사회가 세계 유수의 국가 대열에 들어선 직후에 우리는 또 다시 퇴행적 역사의 갈림길을 마주하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시 깨닫는다. 우리가 폐해의, 질곡의 역사를 완전히 떨쳐 내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고비가 남아 있음을.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한국인이 자기 피와 살, 그리고 심성의 결에 따라 사유하는 방식, 즉 한국철학을 살려내고, 살펴내고, 살아내는 것임을.
‘한국의 철학자들’은 한반도의 주 거주민들인 우리 조상이 중국으로부터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를 수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우리 고유의 철학적 태도가 발현되고 있었다는 데서부터 논의를 전개한다. 일찍이 최치원이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를 증언하고, 그것을 풍류(風流)라고 규정하며, 그리고 그것이 ‘포함삼교(包含三敎)’의 방식으로 작동함을 갈파한 것을 ‘한국철학적 사유의 원점’으로 삼아 이야기를 시작한다. 포함삼교란 삼교 수입 이전에 이미 그와 유사한, 혹은 그것보다 크고 넓은 현묘지도가 존재했다는 국수주의적 의미보다는, 삼교를 넉넉하게 수용하면서도 거기에 귀속되지 않고, 화랑의 도로서 삼교를 살려나가는 그 방식-포함 자체를 한국철학의 기본적인 태도이자 방법론이라고 보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한국의 철학자들을 살피기 전에, 한국 고대사회에 풍부한 철학적 사유의 소재를 제공한 유교, 도교, 불교의 한국적 의미들을 살핀다. 그리고 근세사(조선시대)에 주류 철학으로 자리매김하였던 성리학을 집중적으로 살핀다(1~4강). 이어 신라의 최치원과 원효 같은 한국철학의 선구자들이 이들 삼교를 어떻게 포함(수용)하고 변주(창조)시켜 나갔는지를 이야기한다. 그것이 최치원의 풍류, 원효의 화쟁론이다(5~6강).
그리고 조선왕조를 500년이나 존속하게 한 근본적인 힘으로서의 ‘실록’을 중심으로 한국적 철학 전통이 기록문화유산에 어떻게 반영되었으며, 계승되고 증폭되어 왔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그 기록을 관통하는, 한국인이 하늘과 관계 맺는 독특한 방식을 탐구한다. 그러한 한국인의 하늘 관념이 최근세사, 민족의 위기 국면에 동학이나 유학의 종교화 방식으로 발현되는 것을 살핀다. 특별히 조선 세종의 한글 창제, 여민의 정치철학이 어떻게 한국적 사유방식, 유교이면서도 유교를 넘어선, 술이창작(述而創作)의 새로운 전통으로 드러나는지를 살핀다. 열린 자세로서 철학하는 이황의 태도, 그러면서도 이황이 리(理)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던 그 마음, 그리고 근대화가 본격화하기 훨씬 이전 시기부터 미지의 서구세계와 조우하여 그것을 창조적으로 수용하고 재해석함으로써, 한국(조선) 철학의 특이한 전통을 열어준 홍대용, 정약용의 경우를 살핀다(7~11강).
조선시대 말기, 몇 번의 헛발질로, 자주적, 자생적, 토착적 근대화의 기회를 실기하고 서세동점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와중에, 한국철학은 동학과 원불교 같은 ‘개벽종교’의 틀로서 더욱 공고한 자기성찰을 이루어내고 마침내 독자적인 틀을 빚어내기에 이르렀다. 위기가 곧 기회가 된 셈으로, 이로써, 오랫동안 잠재, 잠복된 형태로 발휘되던 한국철학은 명시적으로, 독자적으로 자기 운행을 지속할 수 있는 틀을 확보하게 되었다(12~14강).
끝으로, 가장 서양철학과 습합되면서도 고래(古來)의 전통을 짙게 풍기는 방면에서의 한국철학의 가장 최근 형태로서 ‘생명평화’ 사상과 운동을 살핀다(15강). 이돈화, 김지하, 윤노빈, 장일순, 도법 등의 생명평화운동을 한국철학의 현재적 적용으로서 재발견한다.
2023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온갖 파행적인 사태들을 한국적인 풍토에서 벌어지는 한국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면, 깊은 철학적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한국인의 평균을 벗어난 별종들이 벌이는 희비극이라고 간주해도 마찬가지다. 그 일들을 일으키는 한국인이란 어떤 족속인지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문제를 이해할 수 없고, 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이 국면을 넘어설 수가 없다.
지금 벌어지는 행태의 근원(根源)을 해설하는 글들이 난무하지만, 단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문제로 단순하게 재단할 수는 없다. 지금의 이 대한민국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인들의 시선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코로나19 팬데믹 대처 1등 국가였다는 점, 그리고 때로 터무니없는 대통령을 뽑기도 하지만, 또 ‘촛불혁명’이라는,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장기간의, 비폭력 정치혁명을 성공시킨 나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뿐인가!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되더니, K-POP를 비롯한 K-한류 열풍을 일으키며 세계 곳곳에 그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바로 그 나라이기도 하다.
도무지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극단적인 일들이 동시대에 일어나는 다이내믹한 나라! 그 성취 국가의 측면에서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can"t & must not) 파행 국가의 측면에서든, 오늘 한국이 한국이게끔 한 근본적인 에너지, ‘3류 선진국’에서 맴돌고 있는 이 트랩을 벗어날 길을 지시하는 이정표는 바로 한국철학의 재생과 재건, 그리고 재활에 놓여 있다.
때로 우리는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는가?’ 아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나를 지켜 줄 나라이기는 한가?’ 하는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혹은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재난의 일상화, 보편화, 거대화의 이 인류세 시기에, ‘우리에게 미래가 있는가’ 하는 좌절에 휩싸일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최하위를 유지하고 있는 출생률을 보면, 한국사회는 확실히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자멸과 소멸, 전멸과 공멸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분단체제 극복의 길, 한-중-일을 아울러 동아시아 협력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은 꿈속에서도 그려볼 수 없는 현 동북아정세의 전개, 그 와중에 후쿠시마 핵 오염수의 방류 사태!
이것을 해결하는 걸음의 출발점은 바로 한국철학의 재발견에 있다. 그것은 한국철학이 세계 최고라는 식의 국수주의가 아니라, 그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한국인)의 체형과 체질, 심상과 심성에 가장 잘 맞는 철학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현재 세계(지구)와 인류, 생태계가 직면하고 있는 전 지구적 위기 사태에 대한 나름의 유의미한 해법도 갖추고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이 책은 대학생 저학년 수준에 맞춰져 있으나, 식상하고 틀에 박힌 ‘한국철학’이 아니라, 새로운, 그러나 더 한국 특유의, 특성의, 특징의 철학에 충실한 한국철학 인물사이며, 한국철학사이며, 한국철학의 워크북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시대적 가치를 “포함(包含)” 책이라 할 만하다.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호응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