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최대 전쟁, 왜 일어났을까?
2022년 2월 24일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의 일방적인 우세로 끝날 거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전쟁은 장기화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매일같이 전쟁에 대한 새로운 보도가 쏟아져 나온다. 이 전쟁은 규모와 그 영향력 면에서 ‘21세기 최대의 사건’이라고 할만하지만 도대체 왜 이 전쟁이 벌어졌는지, 또 실제 전황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대해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부』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러시아 군사·안보의 전문가 중 한 사람인 고이즈미 유가 전쟁이 일어나게 된 과정, 러시아가 초기 장악에 실패한 이유, 개입의 범위를 둘러싼 서방 측의 고민, 이 전쟁이 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자세하게 소개한 책이다. 복잡한 국제정치적 사건의 맥락과 어려운 군사 용어도 매우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주기 때문에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독자도 읽기 쉽고 알기 쉽다.
전쟁의 발단, 푸틴
제1장과 제2장은 이번 전쟁이 일어나기 전 약 일 년간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전쟁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한다. 개전 전인 2021년 7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일체성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이 논문에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그리고 벨라루스인)은 9세기에 발흥한 고대 루스를 계승하는 민족이며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푸틴의 이러한 주장이 어떠한 역사적 근거를 가지며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푸틴은 이 논문 발표 직후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여 벨라루스를 전진 기지로 삼아 우크라이나 침공 준비를 완료한다. 이제까지 러시아와 동맹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러시아군 전투부대의 자국 영토 배치를 단호하게 거부해오던 벨라루스는 어떤 이유로 전진 기지가 되었을까? 저자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2020년 8월 벨라루스 대통령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선거에서 루카셴코가 재선되자 벨라루스 국민들은 이 선거는 부정 선거라며 격렬한 항의 시위를 일으켰다. 정권이 흔들리고 있던 때에 러시아가 개입한다고 위협하면서 겨우 사태를 진정시킨 적이 있다. 이때부터 푸틴이 루카셴코의 생살여탈권을 쥐었기 때문에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공격 거점으로 삼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는 것.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TV나 신문에서 단편적으로 전해 듣던 뉴스의 맥락을 하나하나 맞춰가면서 흐릿하게만 알고 있던 사건의 전모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주도권을 쥐어가는 우크라이나, 다음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푸틴
제3장과 제4장은 2022년 2월 24일의 개전부터 7개월간의 전황의 추이를 살펴보면서 전황을 이끈 주된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본다. 단기간에 젤렌스키 정권을 붕괴시키고 괴뢰 정권을 수립할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한 러시아의 계획은 생각보다 뛰어난 젤렌스키의 정치적 역량, 강한 우크라이나군, 우크라이나 국민의 철저한 저항 의지 등 예측 밖의 요인에 의해 좌절된다.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전쟁 초기에 잘 버티자 원래 예상처럼 우크라이나가 일찍 패배할 것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서방 국가들의 관심은 자신들과 러시아의 직접 충돌 없이 러시아의 의도를 좌절시킬 수 있는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이 무엇인지 모색하는 쪽으로 옮겨 간다.
참수 작전을 통한 전격 승리(플랜 A)와 대규모 전면 침공(플랜 B)이 연이은 실패로 끝나자 러시아는 한정된 지리적 범위에 집중적으로 침공하는(플랜 C) 전략을 선택한다. 이를 통해 러시아의 작전은 겨우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군에 대한 불신이 커진 푸틴이 장군들을 잇달아 실각시키자 전쟁의 기류는 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제공한 고속 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 ‘하이마스(HIMARS)’를 활용해 러시아의 탄약 저장소 등 핵심 시설 공략에 성공함으로써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푸틴은 이제 총동원령, 핵 사용 등의 카드를 만지작거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전쟁은 어떤 ‘성질’의 전쟁인가?
제1장~제4장에서는 시계열로 전쟁의 추이를 살펴보았다면 제5장에서는 이 전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한다.
군사학자로서 저자의 개성은 전쟁을 ‘특징(character)’과 ‘성질(nature)’로 구분해서 살펴보는 데서 나타난다. 이 두 개념은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특징’은 전투의 양상, 더 쉽게 말하자면 ‘전쟁터의 풍경’이다. ‘특징’을 만들어내는 건 새로운 무기, 새로운 전술, 새로운 편제 같은 넓은 의미의 테크놀로지다. 제2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무인항공기(UAV)를 대대적으로 활용하는 등 매우 현대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편 ‘성질’은 그 전쟁의 존재 양상을 말한다. 즉,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등 기본적 자세나 인식의 틀에 의해 규정된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기존의 오래된 전쟁들과 ‘성질’ 면에서 어떻게 다를까? 저자는 이 전쟁이 어떠한 점에서 새로우며 어떠한 점에서 새롭지 않은지 서방과 러시아의 군사이론을 폭넓게 오가면서 규명해낸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동북아와 한반도를 생각한다
유럽연합군 부사령관을 지낸 루퍼트 스미스는 그의 저서 『전쟁의 패러다임』에서 “이제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전쟁, 즉 전쟁터에서 교전국 쌍방의 병사가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쟁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2022년 2월 24일 시작된 제2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런 미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고전적인 전투 방식으로, 또 대규모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이 전쟁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끝나든 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전장의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폭력 투쟁”이라고 말한다. 이는 테크놀로지가 발달하고 비군사적 투쟁 수단을 사용하는 ‘새로운 전쟁’의 시대가 대두했다 하더라도 ‘오래된 전쟁’에 대한 대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점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2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인 2022년 6월, 나토는 「전략 개념」을 12년 만에 개정했다. 개정 내용 중에는 ‘유럽과 대서양 공간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상황 인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는 사라질 것 같았던 ‘거대한 전쟁(대전쟁)’이라는 현상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동북아시아도 언제든 이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 수 있다. 그런 사태가 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미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등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유독 국제정치에 약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뉴스에서 국제정치 얘기만 나오면 채널을 돌리는 일은 이제 그만! 크림반도에서 들리는 총성이 머나먼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이 전쟁을 더 또렷하게 이해하는 일을 돕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다음 질문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첫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나? 둘째,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평화와 안보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깊이 논의할 기회를 주는 더없이 훌륭한 텍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