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하는 프레스코이자 가장 값비싼 직물, 태피스트리
15-18세기 프랑스 사회를 재현하다
『실의 변신: 프랑스 태피스트리 읽기』(이하 『실의 변신』)는 국내 최초로 태피스트리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태피스트리는 실로 짠 그림으로, 가로실(위사)과 세로실(경사)을 교차시켜 다채로운 색채로 그림을 표현한다. 태피스트리를 제작하려면 긴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는 가격으로 반영된다. 같은 면적의 벽을 장식한다면 태피스트리의 제작비는 프레스코(벽화)의 약 10배가 든다. 때문에 태피스트리는 ‘가장 값비싼 직물’, ‘이동 가능한 프레스코’로 여겨졌고 태피스트리의 소유자는 대부분 왕과 귀족이었다. 태피스트리는 궁정 예술이며 귀족 예술이었다. 필사본이 중세를 대표하는 고급 예술이라면 르네상스의 최고급 예술품은 태피스트리라 할 수 있다. 벽을 장식한다는 점은 태피스트리와 프레스코가 동일하지만, 태피스트리는 이동이 가능한 매체라는 점에서 당시 성을 이곳저곳 옮기며 생활했던 귀족들에게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선호되었다.
『실의 변신』은 특히 15~18세기 프랑스에서 제작된 태피스트리에 주목한다. 이 시기 프랑스는 중세에서 벗어나 근대로 진입하였고, 봉건사회에서 절대왕정으로, 발루아 왕조에서 부르봉 왕조로 교체되었으며, 1789년에는 대혁명이라는 격변을 맞았다. 큰 변화의 시기에 프랑스의 왕과 귀족들은 자신의 성을 화려하게 장식할 태피스트리에 어떤 장면을 담으려 했을까. 이 책은 여기에 착안하여 태피스트리를 당대의 사회변화를 보여주는 텍스트로 읽고자 한다. 넓은 공간을 장식하는 태피스트리는 장식적인 기능과 함께 관람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태피스트리는 벽의 냉기를 막아 방안의 온기를 보존해주고, 부드럽고 유연한 시각매체로서 효과적인 선전 도구로 사용되었다. 저자는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태피스트리 연작을 한 작품씩 상세하게 해석한다. 파리 클뤼니 중세 박물관의 대표적인 작품인 《여인과 유니콘》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중세 미술 분관 클로이스터스에 소장된 《유니콘 태피스트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발루아 태피스트리》, LA 게티 미술관의 《그로테스크》까지. 커다란 고화질 도판을 함께 수록한 이 책은 독자에게 마치 전시실을 관람하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여인과 유니콘》 : 궁정풍 사랑 이야기
태피스트리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에는 등장인물이 있고 테마(주제)와 플롯(구성)이 있다. 파리 클뤼니 중세 박물관에 소장된 여섯 점의 태피스트리 《여인과 유니콘》 연작은 1500년경 제작되었고, 다홍색 배경과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19세기 문인부터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이 이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쇼팽의 연인으로 알려진 조르주 상드는 소설 『잔(Jeanne)』(1844)에서 이 태피스트리를 “기이한 태피스트리”라고 언급했고,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테의 수기』(1910)에서 이 연작을 “벽걸이 양탄자”라고 칭하면서 한 작품씩 자세히 묘사했다. 『진주 귀고리 소녀』(1999)로 유명한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동명의 소설 『여인과 일각수』(2003)를 펴내기에 이른다.
‘궁정풍 사랑’은 11세기 남프랑스에서 활동한 트루바두르(음유시인)들이 부르던 여인을 숭배하는 시가에서 시작된 사랑의 전통이다. 결혼한 귀족 여성을 미혼의 젊은 기사가 좇는 내용이 많았고, 대체로 기사는 상대 여성에게 절대복종했다. 여성은 태양이나 달처럼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지며 남성의 존경과 숭앙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여성과 남성의 지배ㆍ종속 관계는 봉건제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성은 봉건영주로서 가신인 남성의 헌신을 받으면서 그 대가로 사랑을 선사한다.
《여인과 유니콘》의 각각의 제목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나의 유일한 소망〉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과 프랑스의 작가이자 성직자 안드레아스 카펠라누스의 『사랑에 대하여』를 바탕으로, 여성이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단계에 맞춰 해석을 제시한다. 프랑스의 귀부인은 애인을 찾고(시각), 사랑을 속삭이고(청각), 화관을 선물하고(후각), 애인을 사로잡아(미각) 육체적 결합(촉각)에 이른다. 다섯 가지 감각이 명확하게 묘사된 것과 달리 〈나의 유일한 소망〉은 그렇지 않아 해석이 분분한데, 〈나의 유일한 소망〉에서 여인은 머리카락이 거칠게 잘려 있다. 저자는 신체 일부분인 머리카락을 애인에게 선물로 보낼 만큼 여인이 적극적이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궁정풍 사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의 존재감이 크다는 점인데, 실제로 궁정에 살던 귀부인들이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로 얽힌 결혼이 대다수였다. 또한 주로 밀회를 즐기는 쪽은 아내가 아닌 남편이었다. 어쩌면 궁정풍 사랑은 귀족 여인들의 소망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여인과 유니콘》의 주문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지만, 작품의 내용으로 보면 귀족 가문의 여성일 가능성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발루아 태피스트리》 : 쇠약해가는 왕권과 귀족의 득세를 보여주는 시대화
프랑스 궁정에서 주문한 여덟 점의 태피스트리로 구성된 《발루아 태피스트리》는 귀족들의 축제 장면을 담고 있다. 각 작품의 제목은 〈마상 시합〉, 〈창던지기〉, 〈장애물 경기〉, 〈퐁텐블로 축제〉, 〈바욘에서의 수상 축제〉, 〈튀일리 축제〉, 〈코끼리 행렬〉, 〈여행〉이다. 1574년 프랑스 궁정화가 앙투안 카롱이 디자인한 이 연작의 주문자를 학자들은 프랑스의 왕비이자 섭정으로 권력의 중심에 있던 카트린 드메디시스로 추정한다.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후 검은 드레스만 입어 ‘검은 왕비’라는 별명이 있는 카트린은 태피스트리에서도 검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남편인 앙리 2세가 세상을 떠난 뒤 처음에는 축제를 개최할 생각이 없었다가, 샤를 9세의 통치기에 섭정을 하게 되면서 왕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발루아 태피스트리》의 화면 구성은 크게 전경의 인물, 그리고 배경이 되는 놀이와 축제 풍경으로 나뉜다. 전경의 인물들은 이 작품의 주문자로 짐작되는 카트린 드메디시스를 포함한 발루아 가문의 귀족,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이다. 촘촘하고 정교하게 그려진 배경에는 당시 궁정의 풍속을 엿볼 수 있는 축제와 놀이가 재현되어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전경의 인물이 과도하리만치 크게 묘사된 것이다. 크게 묘사된 인물은 누구일까. 태피스트리를 주문한 군주일까? 〈튀일리 축제〉에서 축제를 개최한 카트린 드메디시스는 원경에 작게 등장하지만, 폴란드 대사를 맞이하는 기즈 공작 앙리는 전면에 커다랗게 서 있다. 한편, 앙리 3세가 아네성으로 여행을 떠나는 행렬을 묘사한 〈여행〉에서도 앙리 3세는 두드러지게 표현되지 않았지만, 전면 오른쪽에 오라녀나사우 가문 귀족 세 명이 마치 주인공처럼 당당히 등장한다. 즉, 왕실의 권력을 재현하는 태피스트리에서 그 권력의 중심이어야 할 왕은 부재하거나 희미하게 표현되었다. 《발루아 태피스트리》는 발루아 왕조의 권력보다는 당시 득세하던 귀족정치를 보여주는 프로파간다이다.
《그로테스크》 : 극장 무대를 재현한 태피스트리
그로테스크는 동굴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그로타(grotta)에서 유래한 프랑스어로, 15세기 말 로마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곳곳에서 발굴된 고대 장식미술을 지칭하는 용어다. 로마시대에 그로테스크 장식이 등장할 당시, 제국 로마는 이민족의 침입이 빈번했다. 혼란과 불안은 난잡한 잎사귀와 소용돌이 장식, 물고기 꼬리를 한 사람 같은 이미지로 재현되었다. 그로테스크는 장식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시작되어 18세기에 그 개념이 미학적 범주와 문학으로 확장되었지만, 이 책에서는 그로테스크를 장식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1690~1730년 보베 제작소에서 제작된 《그로테스크》 중 〈낙타〉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장식과 만개한 꽃병, 잎이 무성한 덩굴이 나타난다. 이를 배경으로 곡예를 하는 인물, 악사, 무희가 나타나는데, 이는 ‘코메디아’라는 당시 유행하던 대중극 무대를 재현한 것이다. 특히 〈낙타〉에서 세 부분으로 구성된 구조물은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삼면 양식 무대장식술의 영향을 받았다. 삼면 양식 연극 무대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7세기부터 프랑스에서 인기를 얻은 양식이다. 이 이탈리아식 무대는 원근법을 적용하여 이론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장소가 존재하는데, 바로 전면에 있는 첫 번째 관람석에서 극장의 대칭축 위에 있는 왕의 좌석이다. 프랑스에서 이탈리아식 극장 무대는 루이 13세, 루이 14세의 절대왕권의 표현인 동시에 그 도구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특권을 가진 관람자를 위한 무대장식은 18세기에 들어 변화를 맞는다. 프랑스 왕실 밖에도 이탈리아식 극장 건축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왕의 자리를 위해 소실점을 구현한 17세기 이탈리아식 무대 배경은 원근법의 깊이감이 얕아진다. 코메디아의 무대를 재현한 〈낙타〉에서도 무대 배경에 해당하는 건축물들은 깊은 원근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는 절대 권력을 추구했던 왕의 시선이 사라지고 다양한 취향을 추구한 귀족들의 시선으로 변화된 사회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로테스크》 태피스트리가 유행한 시기는 루이 14세 사후, 어린 루이 15세를 대신한 필리프 도를레앙의 섭정기였다. 또한 이 귀족의 섭정기는 코메디아의 시대라고도 불렸다.
실은 사랑의 이야기였다가 선전매체가 되고, 극장의 무대를 재현하기까지 다양하게 변신하였다. 15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태피스트리로 읽고자 한 『실의 변신』은 태피스트리가 장려한 예술품 이상으로서 귀중한 사료이자 시각매체임을 흥미롭게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