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현은자 교수는 성균관대 아동청소년학과 교수로서, 특히 그림책 읽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 책은 기독 독자와 평론가는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관점을 담지하고 있다.
기독 평론가로서 저자는 그림책에 투영된 세계관을 성경의 빛으로 조명하며, 말씀의 빛으로 모든 생각과 이론을 비추어 판단하려고 애써 왔다(고후 10:3-6).
저자는 그림책을 잘 읽어내기 위한 요소로 세 가지를 꼽는다. 묘사, 해석, 판단이다.
첫째, 묘사는 비평가가 어떤 작품에 대한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첫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림책 비평에서 묘사의 역할은 글과 그림, 페리텍스트를 촘촘하게 읽어내어 그 책을 보지 않은 사람도 그림책의 특징과 서사를 파악하고 감상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좋은 묘사는 해석과 판단의 기초가 되며 그것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것은 C. S. 루이스가 촉구하는, 텍스트에 대해 선입견을 버리고 수용하는 태도로 읽는 것이다. 그런데 수용한다는 것이 꼭 텍스트가 말하는 바를 무조건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작품을 읽을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해석은 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자 가장 복잡한 활동이다. 어린이가 읽는 그림책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인격체인 작가의 창작물이라면 세상과 인간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을 것이며 해석의 역할은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해석에 있어서 상대주의적이거나 독자 중심적인 접근과 대비된다.
셋째, 판단은 그 작품이 가치 있는가. 그렇다면 그 기준과 근거는 무엇인가와 관련된 문제이다. 비평가들 대부분은 그들의 글에서 직설적으로 자신의 판단을 진술하는 대신 암시하는 편을 택하는데, 어느 경우에도 판단의 근거는 제공되어야 한다. 사실 비평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행위는 가치 판단을 전제로 한다. 한정된 시공간과 자원 안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어린이 독자를 위한 그림책 평론이라면 그 텍스트를 추천하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라도 어린이에게 적합한 텍스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기준과 그에 따른 판단이 있어야 한다. 그림책 비평에서 이러한 기준과 근거들은 당연히 평론가의 세계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교육관이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평론가가 기독 신자라면 그의 신앙관이 작동할 것이며, 비기독인이라면 인본주의 세계관이 작품 평가의 기초가 될 것이다.
또한 저자는 평론가에게 인간 존재론적 자각과 겸손한 태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즉 해석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해석도 전적으로 옳다는 보장은 없다. 신학적인 용어를 빌리자면, 해석의 확실성을 자랑하는 것은 교만의 죄를 짓는 것이며, 반대로 어떤 해석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태만이라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하나의 해석만이 옳다는 주장은 대화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며, 반대로 독자의 해석을 저자나 텍스트 자체보다 우위에 두는 것은 독자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유한성과 인식론적 한계로 인해 우리의 앎은 언제나 제약을 받지만, 항상 더 좋은 해석은 가능하다.
좋은 그림책 평론은 세상과 인간과 삶에 관한 대화를 진전시키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다. 따라서 미술평론가 테리 바렛이 제안한 것처럼 비평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