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는 과연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자본주의의 기생충인가
복지국가는 전후 서구 선진 국가의 상징이었다. 복지국가는 민주국가라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최고 발전 단계로 설정되었다. 하지만 1930년대 이후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으면서 긴축 정책이 시행되었고, 복지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시장 자유지상주의자들이 경쟁이 치열해지는 세계 경제에서 복지국가는 더 이상 살아남아서는 안 된다고 집요하게 주장해 왔다. 정말 복지국가는 극단적인 시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비생산적이고 자본주의 경제의 기생충이므로 해체되어야 마땅할까?
이 책에 따르면 복지국가와 자본주의 간에는 창조적 긴장이 존재한다. 이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복지국가의 생존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해서도 복지국가는 필요하다고 이 책은 역설한다. 복지국가는 성숙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에 필수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복지국가에 찬성하는 주장과 반대하는 주장을 살펴보고, 우리가 현재 상황에 도달하게 된 과정을 개관한다. 또한 복지국가를 둘러싼 몇몇 논쟁을 탐구하고, 복지국가의 과제와 미래의 궤적에 대해 논의한다. 이사야 벌린 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앤드루 갬블은 이 책을 통해 복지국가는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장기적인 생존 전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혁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복지국가를 둘러싼 세 가지 입장과 네 가지 과제 분석
이 책은 복지국가를 둘러싼 입장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한다. 사회주의적 입장, 보수주의적 입장, 시장 자유지상주의적 입장이다. 사회주의적 견해에서는 복지국가의 도덕적 기반이 평등과 연대이며, 보수주의적 견해에서는 복지의 주요 모델이 가족과 가정에 기초한다. 시장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그 무엇도 개인을 강요할 수 없다. 따라서 시장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복지국가를 계획경제의 마지막 요새로 간주한다.
한편 이 책은 복지국가의 효과와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는 과제를 분석하고 그 과제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이 책에서는 복지국가가 현재 직면한 과제를 크게 네 가지로 제시한다. 비용 감당 가능성, 국제 경쟁력, 새로운 사회적 위험, 고령화이다. 비용 감당 가능성 문제는 더 많은 세금을 내라고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국제 경쟁력 문제는 많은 신흥 강국이 복지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형태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있어 노동 비용이 높은 부유한 국가는 다른 나라와 경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 문제는 대량 제조업이 쇠퇴하고 여성의 역할이 변화되며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붕괴되는 데서 비롯된다. 고령화는 노인 부양 비용이 꾸준히 증가하는데 그 비용이 대부분 젊은 세대에게로 돌아간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복지국가를 개혁하는 방향으로 기본소득과 자본 보조금 제시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이 책은 이 모든 과제에 직면한 복지국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갬블은 복지국가를 개혁하고 확장하는 방안의 하나로 기본소득과 자본 보조금을 제시한다. 기본소득의 개념은 노동의 의무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으로, 사람들의 게으름을 조장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심한 저항에 부딪혀왔다. 그러나 이 책은 개인이 삶의 모든 단계에서 기본적인 보호를 받는다는 확신을 가지면 시장경제가 훨씬 더 잘 작동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의 안전망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와 전념할 일을 찾는 기회를 넓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데에는 정치적 상상력과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에 맞서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복지 정책에는 항상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마련이지만, 복지를 둘러싼 포퓰리즘 논쟁의 근저에는 복지를 수단화하는 정치인들의 관행과 복지를 시혜로 바라보는 시각이 자리하고 있다고 갬블은 꼬집는다. 이 책은 복지국가의 실현을 통해 개인이 시장에서 거둔 성과보다 개인의 사회적 권리를 우선시하는 사회, 복지를 국가의 시혜가 아닌 국민의 권리로 인식하는 사회를 만들어갈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