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가 이런 것이라면 내 삶의 일부로 만들고 싶다
정화와 신범에게 농사짓는 재미와 기쁨을 알게 해 준 것은 친구들과 함께 가꾼 작은 도시 텃밭이었다. 식물을 키우는 즐거움, 땀 흘리는 노동의 즐거움, 내가 키운 채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즐거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 생존과 직결된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재미있기까지 하다니! 정화와 신범은 농사를 ‘한번 해 보고’ 싶었다.
도시에서 삶의 전환을 모색하던 정화와 신범은 일상생활을 뒤로 하고 긴 유럽 여행을 떠났다. 거기서 대규모 유기농부터 자급자족형 작은 농장, 시민운동 차원의 공동체 텃밭까지 다양한 형태의 ‘농사짓는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원하는 삶, 우리가 원하는 농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농사는 또 다른 밥벌이가 아닌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 그 자체이자 원하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일이었다. 여행하며 관련 책을 읽고, 농사 선배들을 만나며 이들은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농사,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최대한 인위적인 영향을 배제한 농사, 돈이나 화석에너지가 적게 들고 우리 둘의 손으로 해낼 수 있는 농사, 내 밭에서 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규모의 농사”를 꿈꾸었다. 이런 농사가 곧 삶과 일상이길 바랐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2017년 3월 1일, 두렵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 생활을 접고 300평짜리 밭이 딸린 양평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농사지어서 먹고살 수 있을까?
안 그래도 많은 농가가 농업 외 소득에 의존하고 사는데, 농사 경험도 거의 없고, 농약도 비료도 치지 않고, 밭도 갈지 않으며, 생산량도 적은 ‘자연농’을 선택한 이들이 농사로 먹고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농사의 주요 목적이 자급자족하는 삶이었기 때문에 정화가 고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신범이 농사를 주로 맡기로 했다. 농사 규모도 방식도 일반 상업농과는 매우 달랐지만, 그래도 이 작은 밭에서 달마다 나오는 다양한 채소와 곡물은 둘이 소화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섰고, 양평에 정착한 이후로 매년 이 밭을 매개로 ‘먹고사는’ 일 뿐만 아니라 농사와 관련한 여러 가지 재미난 일들을 모색하고 시도하고 있다.
책은 이들이 어떻게 시골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과 ‘자연농’을 추구하는 종합재미농장의 1년의 흐름을 눈으로 살필 수 있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정화와 신범이 재배하는 다양한 채소와 곡식, 그 재료로 만들어 먹는 음식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작은 농사’를 짓는 이들의 1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2장은 종합재미농장이 추구하는 농사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농사가 재미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농사는 그렇게 낭만적인 노동이 아니다. 게다가 자연농은 관행농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간다. 종합재미농장은 다양한 제철 채소와 작물을 노지 농사를 할 수 있는 기간에 수확할 수 있도록 계획해서 키운다. 가능한 한 토종 작물을 구하고 씨앗으로 심고 씨앗을 받는 농사를 한다. 종합재미농장은 밭의 규모는 작지만, 키우는 작물의 종류가 매우 많다. 시장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토종 작물 위주라는 것도 특징이다. 이 ‘토종’ 농사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기후 위기 시대의 농사와 ‘다양성’이 우리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생각으로 우리를 이끈다. 책은 “우리는 농부입니다”라고 선뜻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들이 농사라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고, 그 선택이 지속 가능한 삶이 될 수 있도록 어떤 선택과 시도를 했는지 그 과정과 노력을 담담하게 보여 준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가기로 했어요
3장에서는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마르쉐@ 같은 농부시장 출점, 소비를 통해 농부의 생산 방식을 지지해 주는 꾸러미 판매, 색깔이 비슷한 다른 농장과 연결되어 할 수 있는 일 찾기, 친환경 농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행사 기획 등 종합재미농장이 삶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며 시도한 여러 가지 일들을 이야기한다. 정화와 신범이 농사짓는 삶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인정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4장은 바로 한 사람의 농부를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주변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영감을 주었던 선배 농부들, 그런 농부들과 이어질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는 관련 단체와 프로그램 이야기는 물론 과거 경험을 떠올리며 그들도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시작한 우핑, 매년 1년 농사를 되돌아보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기획하는 사진전까지. 정화와 신범은 현재도 진행 중인 ‘더 나은 삶’을 향한 자신들의 시도가 시골로 삶터를 옮겨 자연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무언가 새롭고 가치 있는 일을 시도해 보려는 사람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소리로 다가가길 바란다. 책을 읽고 있으면 이들이 농사를 지으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있는 “이대로 계속 살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도 던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