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빛바랜 기록으로 잊혀가던
한국 근대관광을 복원하다
일반적으로 관광에 관한 연구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생산자, 즉 관광공급자로서의 관광지와 관광 대상 그리고 이를 조성한 주체의 측면에서 고찰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소비자, 즉 여행자와 관광객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관광공급자 측면의 연구는 관광지의 구조와 성격, 관광정책, 관광을 제공하는 국가·시장·조직의 특성 등이 연구 대상이다. 이때는 관광지의 정보를 담고 있는 관광안내서와 관광정책 보고서 등이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루어진 근대관광 연구는 대부분 관광공급자 측면에서 이루어져 왔다. 신문자료를 활용해 한국 학생들의 일본·만주 수학여행의 여정 등을 살펴본 연구, 조선총독부 자료, 관광안내서 등을 활용해 일제하 조선총독부의 관광정책과 주요 여행지를 고찰한 연구 등이 대표적이다.
『근대 일본인의 서울·평양·부산 관광』이 지금까지 근대관광을 다룬 여타 책과 다른 점은 관광의 소비자, 즉 관광객의 측면도 함께 다룬다는 점이다. 그동안 소비자 측면에서 연구가 이뤄지기 어려웠던 점은 당시 한반도 관광을 누렸던 주 소비자 역시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당시 일본인의 기행문, 사진 등을 그러모아 해체하다시피 분석하였고, 한반도에서 펼쳐진 근대관광의 모습을 복원하는 동시에 일본인이 기록하지 않은 사회상과 역사적 의미를 탐구하였다. 그러므로 일본인의 손에서 끝날 뻔한 한국 근대관광의 기록을 다시금 우리의 기록으로 만들었다는 데 이 책은 또 다른 의의를 갖는다.
시대를 다시 그리게 하는 개인들의 기록물
“한눈에 내려다본 경성 시가의 전망은 실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시가를 둘러싼 산들이 멀리 창공에 분명하게 붉게 도드라졌다. 그것은 내지 등에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산의 모습이었다. 살짝 안개가 서린 가운데 아침 햇볕을 받은 집들이 모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지붕은 붉은색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어딘가 외국의 거리에 온 것 같은 이국적인 경치였다.” (닛타 준)
1941년 경성을 찾은 소설가 닛타 준이 유람 버스를 타면서 본 경성 풍경을 기행문에 남긴 내용의 일부다. 식민지 조선에 관광을 와서 그 기행을 글로 쓴 이 일본인과 같이, 과거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여행을 떠났고, 먼 곳에 대한 동경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관광에 나섰다. 그런 동경과 호기심은 관광안내서와 지도를 낳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한 사람들은 수많은 기행문을 남겼다. 역사적 기록을 통해 과거의 경관이나 지리적 상황을 복원하는 역사지리학자인 저자는 특히 개인이 기록하는 여행의 결과물인 기행문에 관심을 가졌다. 문학작품이기도 한 기행문은 작가의 여행 과정과 여행지의 지역 상황을 상세하고, 비교적 재미있게 담고 있는 사실적인 기록이므로, 과거의 경관이나 지리적 상황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연구 자료로 활용한 일본인의 기행문(단행본)은 80여 편에 이른다. 이와 별도로 기행문 저자의 특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직업, 관광 당시 나이, 관광의 개인적 배경 등에 대해서도 인터넷과 문헌 자료를 샅샅이 살피어 조사하였고, 이 결과를 도표로 정리하였다. 연구 자료로 활용한 관광안내서는 37가지, 사진첩 목록은 18개다. 각종 지도와 사진첩에 수록된 도판을 비롯하여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소장하고 있던 그림엽서를 포함한 총 90여 개의 도판을 이 책에 실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서울, 평양 그리고 부산
이 책에서는 근대 관광공간 가운데 서울·평양·부산 등 3개의 도시에 주목한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세 도시는 관광지로서 각기 나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는 관광지는 금강산이라고 할 수 있으나, 세 도시를 통해 세계의 형성과정에 제국주의, 자본주의, 산업발전, 도시화의 진전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식민지의 수도였던 경성, 즉 서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발전시킨 제국 일본의 정당성을 상징하는 관광공간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평양은 조선의 전통문화가 잘 보전된 관광공간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평양이 임진왜란·청일전쟁의 전적지여서 일본제국의 확대 과정을 기념할 수 있는 관광지라는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한편 일본인의 식민지 조선 관광의 출발점이자 종착점 역할을 했던 부산은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관광지가 특히 많았으며, 시간에 따라 변화가 컸다. 일제가 제안한 관광지 중 상당수는 조선 역사 속에서의 의미보다는 일본 역사 속에서의 의미 때문에 선정되었다. 이 책은 ‘관광지’로서 서울, 평양, 부산이 어떻게 조성되었고, 시간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였으며, 구체적인 장소들이 관광지로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고찰하였다.
한국 근대관광을 말할 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
한국에서 근대관광이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주도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였다. 일본은 1905년의 러일전쟁 승리 이후 자국민들의 해외여행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고, 특히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관광개발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획득하고, 제국의 우월성과 제국주의의 정당성을 홍보하고자 하였다. 이 책의 시간적 범위는 1905년부터 1945년까지의 41년간으로 하는데,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이나, 관부연락선과 경부선철도가 개통된 1905년을 기점으로 일본인의 한국 여행이 급증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인의 관광은 대부분 현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현지인과 만날 기회가 배제된 오늘날의 단체 패키지 해외 관광과 매우 닮은 여행이었다. 그들이 남긴 기행문 속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낙관적인 전망이 배어 있으며, 특히 한국인들의 모습은 피상적이고 소략하게 설명되었다. 저자는 이 책이 경성·평양·부산이라는 세 도시를 주로 다루고 있어 지역적 제한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이 만든 자료 위주로 분석하였기 때문에 당시 한국인의 관점과 상황을 담은 후속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며 소회를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