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 동물’이 ‘멸종 동물’이 되어갈 때,
내가 진료실 밖에서 할 수 있는 것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캐릭터 분석이었지만, 캐릭터가 된 실제 동물들의 현실을 마주하고 보니 이대로 소비하는 데 그친 내가 부끄러웠다. 이들은 언제나 귀엽고 밝은 모습이지만, 그 뒤에 매우 냉혹한 현실을 품고 있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저 ‘멸종 위기 동물’이 ‘멸종 동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이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냈다. 바로 그림으로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_‘캐릭터 속 멸종 위기 동물들에게’ 중
저자는 캐릭터를 분석하다가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실제 동물 중 생각보다 많은 종이 멸종 위기나 위험 단계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들의 실정을 알리고 도울 방법을 찾다가 NFT 시장을 발견한다. 가상 지갑과 화폐를 만들고, 개체 수에 따라 각각의 위기 단계에 해당하는 동물을 그린 뒤 그 수익금을 세계자연기금(WWF)에 기부하는 것이다. 비록 눈에 띄는 결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이 활동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더 캐릭터 너머의 실제 동물들에게 관심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진료실뿐 아니라 밖에서도 치열히 고민하는 모습이다.
너희를 만난 건 숭고한 사명감 대신 수능 성적이야
현실적이지만, 그래서 더 믿음직한 고백
보통 수의사 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이 있다. 동물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이 너무 좋아서, 생명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등등 수의사 모두가 하나같이 가슴 찡한 사연이나 숭고한 사명감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동물을 향한 애정과 책임감은 수의사에게 당연히 필요한 덕목이겠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이런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이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저자는 수의과대학과의 인연이 “갑자기, 어쩌다, 우연하게” 찾아왔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4학년, 재수 끝에 나온 수능 성적을 가지고 입시 상담을 하면서다.
그러나 입학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동물과 같이 보냈다는 것, 어렸을 때부터 동물 인형만 좋아했다는 것을. 나는 이 학교가 내 인생에 찾아온 행운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다녔고, 지금까지도 이 길을 선택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다.
_‘성적 맞춰 들어간 게 잘못인가요?’ 중
이 책에는 마냥 환상적인 이야기만 담겨 있지 않다. 매일 귀여운 환자들을 만나지만 자칫 방심했다간 금세 이들의 배설물로 더러워지는 일상(136쪽, 똥오줌으로 범벅될 결심), 연차가 쌓여도 도무지 적응하기 어려운 동물들의 죽음(143쪽, 수의사의 상처, 마음 편), 주말과 휴일에 몰리는 환자와 보호자 때문에 여느 서비스직처럼 남들 놀 때 일해야 하는 현실(150쪽, 희미하고 희미한 워라밸) 등 지극히 세속(?)적인 이야기를 한다. 담담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어쩌다가 동물들에게 스며든 삶을 살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미래를 확신한다. 훗날 수의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그게 동물의 곁을 떠나는 일은 아닐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