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은 일상에서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을 만난다. 그 결과 그들은 삶 속에서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내적 싸움을 겪는다. 자아와 하나님이 충돌을 일으키고, 자신이 저지른 죄악들을 한탄하며, 고난과 핍박의 십자가를 만나고, 자신을 스스로 더럽히는 자기애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하나님의 정결하게 하는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 유혹에 대항한 승리자가 되는 권고를 들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은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매일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유혹을 이겨내고,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지혜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이 땅에서 천국을 향해 나그네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루어나가야 할 성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온전함을 위한 페넬롱의 심오한 묵상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그로 인해 다시 한번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이 책에는 페넬롱이 오랜 묵상의 결과들을 몸소 실천하는 과정이 담겼기에 그의 인품과 인격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그의 저서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를 강조했다. 그는 그 관계에서 자신에 대한 집착은 교만이라는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같은 맥락에서 페넬롱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전적인 헌신과 온전함을 위해서는 자아에 얽매여서는 안 되며, 오직 자신을 자아에서 떼어내라고 권면한다. 그것이 또한 하나님 사역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자아에서 자신을 떼어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자아란 자신에 대한 집착, 이기적인 생각, 더 나아가 세상을 향한 욕망 등을 포함한다. 페넬롱은 우리의 자아보다도 우리에게 더 가까운 자아는 바로 하나님이기에 우리 자신을 세속적인 자아에서 떨어뜨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무아지경에서 하나님과 같은 신성을 갖는다고 이해하는 것은 오해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피조물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페넬롱의 또 다른 통찰은 하나님의 목적에 올바로 서 있는 사람은 결코 교만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겸손해지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이미 높아졌음을 전제하기 때문에 온전한 겸손이 아니라는 역설적인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겸손은 자신이 아무런 존재도 아님을 직시하고 그 자리에서 높아지려거나 낮아지려고 하지 않는 상태이다. 그러한 겸손의 상태에서는 무엇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생각이 자리 잡을 수 없다. 겸손한 사람이라면 세상 안에 자신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사물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나 은사나 상급을 받을 때 그것을 마치 공로의 대가로 소유하려는 생각은 비성경적이다. 페넬롱은 우리가 하늘에 있는 면류관을 사모해야 하는 것은 그 면류관 자체를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사모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자신이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깊이 있고 지혜로운 영성으로 가득하기에 기도하는 자세로 읽어야 한다. 기도하는 자세로 읽을 때 비로소 우리는 페넬롱의 말과 그 의미에 민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이 성자가 하나님이 당신에게 보내주신, 당신의 가장 깊이 있는 영적인 친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오늘날 빠르고 분주한 삶으로 인해 ‘긴 호흡으로 천천히’ 헌신을 위한 자세로 책 읽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서둘러 읽게 된다면 이 책에 간직된 진리들을 온전히 수용하고 음미할 수 없을 것이다. 페넬롱이 이 책을 통해 들려주는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삶에 이르는 깊이 있는 영적인 지혜들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긴 호흡으로 천천히 음미하며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