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 ‘여성 최초 퓰리처상 작가’의 ‘부캐’는 글쓰기 구루
쉬운 길은 가기가 쉽다. 작가 자격증이라는 자그마한 성공이 전부라 착각하고, 자기 복제를 하면서도 죄의식이 없다. 단편을 장편처럼 구성하고, 장편은 단편처럼 들려준다. 그렇게 작가 또는 예비 작가는 ‘읽히는 이야기’에서 멀어진다. 답답한 베테랑 소설가가 ‘썰’을 푼다. 퓰리처상을 받은 첫 여성 작가 이디스 워튼이 글쓰기 구루가 돼 소설 쓰는 기술을 이야기한다. 현대 소설의 뿌리, 다양한 소설 쓰기 기법, 소설의 형태와 문체를 돌아본다. 정교하게 조율된 단편 소설의 이야기 방식, 장편 소설 구성법, 소설 속 인물과 상황의 중요성도 살핀다. 독자로서 제인 오스틴, 헨리 제임스, 마르셀 프루스트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 작품도 읽는다.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작가인 워튼은 쓰기의 기술이란 천재성보다는 ‘읽기의 기술’과 ‘곰곰이 생각하기’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쓰는 마음과 읽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은 덤이다.
‘이디스 워튼의 글쓰기 십계명’, 읽히는 이야기를 쓰는 비법 레시피
이디스 워튼은 19세기와 20세기에 미국과 유럽을 무대로 작품 활동을 했다. 장편 소설 22권, 단편 소설집 11권, 여행기와 전기를 비롯한 논픽션 9권을 쓰면서 다진 단단한 글쓰기 근육을 바탕으로 삼아 《소설 쓰는 기술》을 썼다. 작가와 예비 작가를 위한 ‘소설 쓰는 기술’과 ‘읽히는 이야기를 쓰는 비법 레시피’를 정리해 한 권에 담았다. 한국어판에서는 영어판에 없는 주와 소제목을 달아 평범한 독자도 다가가기 쉬워졌다. 그래도 많은 작가와 작품이 등장하는 통에 응축된 문장 속에서 길을 잃을 수 있는 만큼,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디스 워튼 글쓰기 십계명’으로 요약해보자.
첫째, 소설 쓰는 기술이란 가상의 등장인물들을 창작하고 그 인물들이 겪는 가상의 경험을 고안하는 일이다(96쪽). 자전적 요소가 포함된 소재이든 순수한 창작물이든 쓰는 사람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객관적으로 창의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작가는 자기가 쓰는 글에 창조적 숨결을 불어넣어 모든 것이 새로워진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삶을 꾸준히 응시하라(83쪽). 소설가에게는 삶 전체를 자세히 이야기하는 일보다 삶을 꾸준히 응시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숙해진 이야기는 사려 깊은 독자에게 원숙한 예술을 누릴 기회를 준다.
셋째, 연필 끝으로 시야를 좁혀라(31쪽). 작가의 시야와 표현력 사이의 불균형을 해결하려면, 더 큰 영역을 단호히 버려 더 작은 영역을 취하고, 큰일을 얼렁뚱땅 처리하기보다는 작은 일을 꼼꼼하게 깊이 파야 한다.
넷째,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선택 본능에 달려 있다(164쪽). 등장인물들은 현실에서 할 법한 대화를 나눠야 하지만,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에 관련 없는 요소는 모두 제거해야 한다. 작가란 자기가 창조한 인물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규칙과 공식의 부여자’(143쪽)이니까 말이다.
다섯째, 길이 걱정은 하지 마라(123쪽). 소설의 길이는 주제에 따라 결정하되, 처음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훌륭한 작가라면 주제에 따라 얼마만 한 돛을 올려 목적지에 도달할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폭넓고 창의적인 시야(38쪽)와 새로운 시각(27쪽)은 진정한 독창성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다. 작가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관과 개인성이라는 비밀스러운 싹을 틔우려면 지식과 경험이라는 넉넉한 양분도 필요하다.
일곱째, 기술적 수법을 최소화하라(63쪽). 시냇물이 강둑을 깎아내듯 인물 성격이 사건들을 거부할 수 없는 방식으로 빚어가는 영국 소설의 특징도 주목할 만하다(150쪽). 독자가 칭송할 만한 익숙한 방법만 쓰려는 마음도 버려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살아남는 최소한의 요소만이 독자의 상상력과 작가의 상상력을 잇는 가교가 될 수 있다.
여덟째, 지출을 고려하라(72쪽). 소설 쓰기는 재산 관리에 견줄 만하다. 시간, 숙고, 인내, 노동 등 추출과 재현 과정에 지출하는 모든 요소가 소설 쓰는 데 필요한 비용이다. 훌륭한 작가는 ‘쓰기의 경제학’을 무시하지 않는다.
아홉째, 독자와 비평가가 던지는 유혹을 의심하라(136쪽). 비슷한 작품만 찍어내라 요구하는 독자들에 흔들리지 말고, 각자 영역을 나눠 소설가를 가두려는 비평가를 무시하라. 독자의 칭찬과 비평가의 찬사는 때로는 독이 된다.
열째, 듣고, 읽고, 빨아들이고, 몰두하라(30쪽). 작가는, 아니 쓰는 사람은 ‘소설의 지난 역사를 고찰’하고 ‘창작에 관련된 원칙들을 사색’(26쪽)해야만 독창성이라는 강박을 넘어 읽히는 이야기를 쓰는 성숙한 작가가 될 수 있다.
기술에서 마음으로, 고전에서 찾는 쓰는 마음과 읽는 마음
‘초심자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과거의 위대한 소설’과 ‘작가를 이리저리 끌어당기는 동시대 작품’(30쪽) 사이에서 쓰는 사람은 자기 눈으로 삶을 바라보려는 의지를 품고 계속 써야 한다. ‘울리되 울지 않고 웃기되 웃지 않’(143쪽)아야 하는 작가에게는 그래서 기술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워튼은 대가의 풍모로 소설 쓰는 구체적 기술을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친절한 말투로 고전에 담긴 쓰는 마음과 읽는 마음을 들려준다. 거의 100년 전에 나온 이 책은 그런 미덕 덕분에 흔하디흔한 작법서하고 다르다. 워튼이 한 말대로, 잘 쓰려는 사람은, 언제나, 끊임없이 읽고,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