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행동치료 기술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 힘들고 아프다는 신호를 마주하기
인지행동치료(CBT)는 인간의 심리적·정신적 문제에 왜곡된 인지적 정보처리가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치료 기술이다. 죽음에 관한 생각으로 마음의 문이 닫힌 것처럼 느껴질 때는 너무도 쉽게 자신을 탓하게 된다. 마치 자신이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고 왜곡하여 느끼기 쉽지만, 고통은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잘못’해서 생기는 것도,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고 떨쳐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지행동치료에 기반하여 자살 생각을 다루는 이 책은 자살 생각으로 이어지는 감정이나 상황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왜곡된 부분을 찾고, 변화의 실마리를 획득해 나가도록 돕는다.
이 책은 희망을 말하는 섣부른 조언을 지양한다. 대신 부정적 생각을 제대로 마주하여 인지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풍부한 활동지(질문응답지)를 통해 터득해 나가도록 돕는다. 절망적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외면하지 않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오히려 삶의 이유와 희망이 발견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 비로소 이 책의 제목 『죽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희망 찾기』에 담긴 의미 역시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감정을 왜곡 없이 식별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마음속에서 사실이 아닌 것들을 말하고 있을 때 그것에 대응할 수 있다. 이 책은 자살 생각까지는 아니더라도 왜곡된 인지적 문제로 평소에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느끼며 도움을 받길 원하는 이들에게도 유용한 안내서가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
“인생에는 아름다운 것이 정말 많아요.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요.”
한국의 자살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2020년 기준으로 OECD 평균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11명인데 반해, 한국은 24.6명에 이른다. 2배 이상 높은 수치인데, ‘OECD 1위’라는 이 불명예를 우리는 꽤 오랜 기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아직 자살 문제를 개인의 문제, 일부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고통을 겪는 개인 역시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어 이들이 치료의 과정을 밟아 나가는 일은 더욱 쉽지 않다. 이 책은 고통을 겪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그 주위의 다양한 사람들까지도 대상으로 한다. 자살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부록에 담긴 ‘일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에 관한 내용은 우리가 그동안 이 문제에 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인생에는 아름다운 것이 정말 많아요.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요.”, “저는 기분이 처질 때마다 그냥 운동을 해요. 그러면 기분이 나아지더라고요. 당신도 해 보세요.” 등 대부분 ‘일반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말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례와 활동 양식
- 쓰고, 칠하고, 콜라주 하기
책에는 자살 생각으로 고통을 받는 내담자 수백 명과의 상담을 바탕으로 기획·구성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활동 양식이 담겼다. 실질적인 대응 방안을 준비하는 과정을 안내하는 4장 ‘위기에 대처하기’에는 ‘정서적 고통을 줄이기 위한 열 가지 방법’이란 것이 있다. 각자의 열 가지 방법을 적어보는 활동인데, 영화 보기, 샤워하기, 반려견과 산책하기 등 삶의 유쾌한 부분들이 포함될 것이다. 활동지에 쓰고, 칠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오려 붙이는 것으로 시작하여 일상의 전 영역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활동지는 혼자서 채워 나갈 수도 있지만, 치료사 또는 신뢰하는 누군가와 함께 채워 나가는 것 역시 좋다. 친구나 가족, 지인들이 당사자가 겪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당사자 또한 자신을 도우려는 주변 사람들의 진심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 온전히 인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활동지는 사람들 각자의 경제적인 상황, 지역사회 인프라의 이용 가능 여부, 그 밖의 상황에 따라 정신건강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이 다르다는 점들도 고려되고 있다.
정서적 고통을 줄이기 위한 방법들
- 안전한 방향으로 사고 전환하기
이 책은 인지행동치료와 인지적 오류에 관해 알아보는 과정으로 시작한다(1장 ‘들어가며’). 특히 누구라도 빠질 수 있는 인지적 오류에 관한 내용은 자살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주 3일을 운동하려고 마음먹었는데 하루를 빠뜨리고는 건강관리에 실패했다고 기분 상해 하는 일, 이는 ‘이분법적 사고’다.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화가 났거나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은 ‘독심술’이다. 친구에게 부탁을 했을 때 친구가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말했음에도 자신이 한 부탁이 친구에게 짐이 된 것 같다고 느끼는 것, 이는 ‘감정적 추론’일 뿐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인지적 오류들 가운데 어떤 것도 관련 없기란 그 누구도 힘들지 않을까? 물론 이를 오류라고 알아차릴 수 있다면 대응할 수 있다!
이 책으로 우리는 자살 생각에 관한 잘못된 편견들을 데이터와 연구를 통해 되짚어 보고(2장 ‘자살 생각 이해하기’), 잊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험들, 이를테면 실업, 사회적 고립, 신체질환 등을 돌아본다(3장 ‘원인 알아내기’). 이 과정은 고통스러울지라도, 단절과 절망을 인지하고, 삶의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로 방향을 전환하게 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나의 위기 계획 요약본’을 작성해 신뢰하는 누군가와 공유하고(4장 ‘위기에 대처하기’), 본격적으로 정서적 고통이 되는 문제들도 탐구하며(5장 ‘정서적 고통 줄이기’), 회피와 부정의 전략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 봄으로써 자기를 수용하는 능력을 기른다(6장은 ‘자기 자비와 수용력 기르기’).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은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가운데 하나이므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삶의 희망에 더 다가간다(7장 ‘희망 키우기’).
희망을 찾아가는 다채로운 과정
- 건강을 관리하듯 꾸준히 해보기
책에서는 사회적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노력한다면 정신건강이 향상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8장 ‘관계 강화하기’). 물론 다양한 활동지들은 자살 생각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제안과 도구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활동지에 적힌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논리가 없고, 명백하게도 긍정적인 결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거나, 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경우, 즉 의미를 찾기 어려운 일들(예: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 폭행, 학대, 배우자의 바람, 불임, 비극적인 사고)에 대한 고통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각자가 여러 방법을 찾아 시도하는 일이 요구된다(9장 ‘의미 부여하기’). 물론 이 책은 이에 대한 다양한 방법도 예시하고 있다.
또한 책에는 자살을 막을 수 있는 수단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거나 자살 충동이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게 해주는 등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제시돼 있다(10장 안전해지기).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배운 기술을 앞으로도 꾸준히 활용하기 위한 아이디어도 소개하고 있다(11장 ‘미래를 위한 계획 세우기’).
이러한 치료를 진행할 때 가장 흔하게 겪는 실수는 어떤 전략을 딱 한 번 해 본 뒤에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인지적 오류 중 ‘이분법적 사고’). 즉각적인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포기하고 싶어질 때는 이 책에 담긴 방법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은 수백 명의 내담자와의 상담을 통해 만들어진 치료 과정임을 다시금 생각해볼 것을 이 책은 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