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은 작가다”
책을 쓰는 일은 한 개인을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
글을 왜 쓰는가,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다정하고 다감한 답변들
책을 쓰고 만들고 파는 일에 대한 생생한 경험과 실제적인 노하우
2015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이 출간되었을 때, 일간지와 포털 사이트, 온라인 서점 등이 이 책과 김민섭이라는 저자로 인해 떠들썩했다. 지식 노동자의 삶이 담긴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고 청년 세대가 마주한 삶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민섭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후속작 『대리사회』 『훈의 시대』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로 이어지며 개인의 삶이 사회-시대-타인으로 어떻게 연결되고 확장되는지 보여주었다. 이 책 『당신은 제법 쓸 만한 사람』은 전작들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글쓰기와 출간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처음으로 정리한 책이다. ‘개인-사회-시대-타인’을 잇는 강력한 연결고리로서의 글쓰기를 말한다.
◈ 왜 글을 쓰는가
- 나 자신을 잘 알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글을 쓰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세상에 기억되고 싶거나 진실을 기록하고 싶을 수도 있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바꾸고 싶을 수도 있으며, 그저 글쓰기에서 큰 재미를 느껴서일 수도 있다. 김민섭이 글을 쓰는 이유는 조금 신선하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글을 쓴다고 말한다. 얼핏 순진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책에 담긴 그의 집필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글을 쓴다는 그의 말이 구체적인 현장과 날것의 경험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1990년대 말 피시통신에 글을 올려 고등학생 신분으로 에세이집을 출간했던 일화, 시간강사이자 가장으로 살기 위해 분투했던 시절의 고백이 담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기사로 일하며 개인이 주체가 되지 못하는 사회 구조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본 『대리사회』, 타인의 잘됨이 나의 잘됨을 증명한다는 믿음으로 쓴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등 그가 써낸 글은 모두 자기 자신을 잘 알기 위해 고민하고, 자신이 타인과 사회와 시대와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 개인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기할 수 있는지, 그 연결성에서 자신이 잘하고,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글쓰기 여정에 귀를 기울여보면 독자는 “궁극적으로 한 개인을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글쓰기라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게 되고, 저마다 자신만의 글쓰기 이유를 고민하게 된다.
◈ 어떻게 쓰는가
- 계속, 몸으로 쓴다
왜 쓰는지 자기만의 이유를 찾았다면 어떻게 쓰는가란 질문이 연이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노하우는 이것이다. “계속.” 이 책에는 ‘계속’이란 단어가 셀 수 없이 많이 나온다. 비슷한 말로는 “매일”도 종종 등장한다.
고등학생 시절에 에세이집을 출간한 뒤 글쓰기를 중단했던 그가 다시 일곱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정리하면서 확신하길 “결국 작가란 어느 한 책으로 성공하고 이정표를 세운 사람이 아니라 ‘계속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계속 써나갈 때에야 자신만의 언어와 사유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저자가 확신하는 가장 강력한 글쓰기 노하우다. 글쓰기가 한 개인이 타인, 사회, 시대에 연결되는 강력한 연결고리라면, 쓰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개인과 사회와 시대 안에서 자신이 서야 할 좌표를 잃게 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가 제안하는 ‘계속 쓰기’ 실제적 노하우는 낯설지 않다.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타인들과 함께 쓰기, 온라인의 다양한 채널에 매일 일상을 기록하기, 여러 방식으로 연재처를 확보하기, 슬럼프가 올 때 제 글과 거리를 두기 등이다.
가장 눈에 띄는 글쓰기 노하우는 “쓸 만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책『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맥도날드에서 물류 상하차 아르바이트와 시간강사라는 노동을 병행했던 경험에서 나왔다. 『대리사회』는 대리운전을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는 sns와 방송이 주목했던 ‘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 이야기 담겨 있다. 현재도 그는 탁송기사로 일하면서 전국에 강연을 다니고 있다. 직접 몸으로 겪어야 좋은 하루를 살 수 있고, 그래야 쓸 만한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게 김민섭의 글쓰기 철학이자 비법이라 할 수 있다. 글을 쓰고자 하는 모든 이가 육체노동을 하고 주목받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이 사회와 시대 안에서 어디에 있는지 인식하고, 직접 몸과 정신으로 부딪치며 살아냈을 때 자기만의 언어와 사유가 담긴 진솔한 글이 나온다는 말이다. “모든 쓰는 사람이 작가가 될 수는 없다. (...)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은 작가다”(6~8쪽)라는 저자의 생각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 책을 쓰고 만들고 판다는 것은 무엇인가
- 책은 작가와 출판사가 함께 파는 것
그의 이력 가운데 남다른 점을 하나 더 꼽자면, 1인 출판사와 동네 서점의 주인이라는 점이다. 많은 작가가 글쓰기만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작가는 글쓰기를 가장 잘해야 한다. 다만, 독자와 작가가 온라인에서 직접 소통하는 방향으로 시대가 변하면서 글쓴이가 좋은 기획자이자 뛰어난 세일즈맨이 되기도 한다.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과 영업과 서점 판매까지 모두 직접 해내며 “책은 작가와 출판사가 함께 파는 것”이라 생각하는 김민섭의 생생한 경험은 작가이거나 프로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둘 만한 실제적 내용이다.
한국 문단에 큰 충격을 주며 등장한 김동식 작가의 소설을 발굴하여 기획 및 편집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마케팅에 주력했던 일화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다. 직접 출판사를 차려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질 책들을 만든 이야기, 구독 서비스를 통해 작가들의 지속 가능한 글쓰기를 지원하고 독자와 작가를 연결하고자 했던 마케팅 이야기, 전국에 강연을 다니면서 책을 알리고 수천 부를 판매했던 이야기, 동네 서점을 차려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작가는 물론 편집자, 발행인, 영업자와 마케터 등 책을 업으로 삼는 모든 이에게 귀감을 준다. 김민섭에게 책을 기획하고, 글을 쓰고, 만들어 팔고 알리는 일 모두가 그가 얘기하는 “어디서든, 매일, 쓸 만한 몸으로” 나아가는 과정,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가닿는 일인 셈이다. 무엇을 하든 그 이상을 하는 김민섭의 작가 생활을 통해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와 구체적인 글쓰기 현장을 독자 모두가 한번 숙고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