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공부를 하는 이유
“국문학을 공부하면서 부족한 한문 독해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원문으로 읽어 보고 싶어서” “여행 중에 만나는 한시나 한문 구절에 대한 지적 갈증으로” “학부모로서 아이에게 한문 공부를 어떻게 시킬까 하는 마음에서” “번역자마다 같은 고전의 해석이 천차만별인데 본연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등등. 이것이 사람들이 주로 말하는 한문 공부의 이유다.
배우기 어렵고 언어로서 기능마저 거의 사라졌지만 한자와 한문은 우리 삶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말에서 ‘한자어 비중이 70퍼센트다’ ‘개념어의 90퍼센트가 한자어다’라는 통계가 아니더라도, 한자를 몰라 어휘력이 떨어진다는 진단이 없어도, 한자를 모르면 의외의 곳에서 어려움에 맞닥뜨린다.
그렇다면 초보자가 한문 공부를 하기 좋은 방법이 따로 있을까. 한문 공부를 시작할 때 초보자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비전공자에게 필요한 한문 수준은 어느 정도면 충분할까.
저자 정춘수는 20년 동안 한자와 한문 관련 책만 집필해 왔다. 국문학 전공 석사 시절, 비전공자가 한문 공부를 할 방법이나 마땅한 책이 없어서 아쉬웠던 경험이 있었다. “한문을 전공할 마음은 없지만 가끔 한문 자료를 읽어야 하는 사람, 번역서를 읽다가 원문을 확인하고 싶거나 우리말에 깃든 한문의 흔적이 궁금한 사람, 생활 속에서 만나는 좋은 한문 구절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해 기억해 두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었다.
《한문 독해 첫걸음》은 작가의 이런 문제의식이 깊게 배어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우리말과 한문의 차이, 한문식 사고와 감각, 우리말에 남은 한문의 흔적, 한국어와 한글의 시선으로 한문을 바라본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문 독해는
우리말과 한문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부터!
한문 공부를 하다 보면 우리말과 한문의 차이에 맞닥뜨린다. 이 차이는 문장의 구조, 어순, 표현 방식 등에 걸쳐 두루 나타난다. 한문을 이해하려면 우선 이 차이를 제대로 아는 게 필수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독해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차근차근 짚어주는 책이 드물었다. 형태가 바뀌지 않고도 역할과 뜻이 달라지는 한문, 조사가 붙고 어미가 바뀌고 활용을 하는 우리말. 《한문 독해 첫걸음》은 두 언어의 차이를 비교해 가며 초보자가 겪는 실질적 어려움을 덜도록 했다.
저자는 한문 독해의 어려움은 크게 세 가지라고 말한다. “한문의 언어 구조와 한자 뜻을 모르면 해석하기 어렵다. 또 우리말을 몰라도 한문이 어려워진다. 우리말 어휘력이 부족하고 표현력이 떨어지면 한문의 의미를 세심하게 포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문과 우리말의 언어 구조가 달라서 생기는 어려움이다. 문장 내 역할에 따라 적절하게 의미 전용을 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다.”
한자는 글자 자체가 뜻을 드러내는 표의문자다. 예를 들어 ‘한(寒)’이라는 한자는 ‘찰 한’이라고 외우며 대표 훈을 익힌다. 하지만 한자의 ‘대표’ 훈은 빈도수를 나타낼 뿐 문장에서 다양한 변용이 가능하다. 즉 寒은 ‘차다’는 뜻의 서술어로 주로 쓰이지만 “寒來署往(한래서왕)”에서처럼 ‘寒’이 주어 역할을 할 때는 ‘차가움, 추움, 추위’ 같은 명사형으로 바꿔서 해석해야 한다. 한문 독해에서 이와 같은 ‘의미 전용’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문장에서 그 역할에 맞게 우리가 알고 있는 한자 뜻을 우리말로 적절하게 바꿀 수 있는 힘, 이것이 한문 독해의 첫걸음이다.
더 쉽고 더 세세하고 더 친절하게,
한문 독해 수업
이 책에는 표현 내용에 따라 68편으로 나눈 322구의 한문 문장이 실려 있다. ≪논어≫ ≪맹자≫ ≪장자≫ ≪노자≫ ≪통감절요≫ ≪사기≫ 같은 중국의 한문 고전과 ≪삼국유사≫ ≪난중일기≫ ≪열하일기≫처럼 우리의 한문 고전에서 뽑아낸 문장이다. 과거엔 비주류 취급을 했지만 현대에 들어 가치가 높아진 ≪관자≫ ≪순자≫ ≪묵자≫ ≪한비자≫ 같은 문헌에서도 발췌했다. 모두 우리말과 다른 한문의 특성이 잘 녹아 있는 문장이다. 이들 문장은 한문 초보자가 자신이 아는 익숙한 한자 뜻과 우리말 언어 관습에 따라 해석하다 보면 엉뚱한 번역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68편의 대표 구문엔 배경 설명과 함께 우리말과 비교해 가며 한문의 문장 성분, 구조, 표현 등을 익히며 독해 기초를 다지도록 했다. 254구 연습 구문에선 해석이 막혔을 때 도움을 주는 ‘이럴 땐 이렇게’, 문법론이 명확하지 않은 한문에서 어떤 요소를 기준으로 맞는 해석과 틀린 해석을 구분하는지 참고할 수 있는 ‘이렇게 번역한다면’ 코너를 두어 독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도록 구성했다. 부록엔 한문에 자주 등장하고 독해에 꼭 필요한 ‘필수한자 45’를 덧붙여 그 뜻과 기능, 용례 등을 정리했다. 모든 단계마다 ‘이 정도는 알겠지’ 하고 건너뛰지 않고 저자의 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짚어줘 한문 공부에 입문하는 누구라도 ‘어려워서’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했다.
저자는 “해석이 힘든 한문 문장을 만났을 때 모르는 것이 한자 뜻인지, 문장의 의미 맥락인지, 한문의 구조인지 따위를 구분할 수 있다면 한문 독해의 반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분야별 한자 사전이나 공구서의 도움을 받으며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322구는 그 구분을 도와주는 다양한 자료다. 암송이 좋지만 외우지 못하더라도 문장 안에서 한자 의미를 자주 되새김질한다면 분명 한문이 달리 보일 것이다.
단단한 문장력, 튼튼한 문해력,
그리고 고전 읽는 즐거움
이 책은 “교양 있는 한국인”이 갖추면 좋은 “기초 수준의 한문 독해력”을 기르는 걸 목표로 했다. 저자는 기초 수준의 독해력은 “우리말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우리말 어휘력과 문장력, 문해력을 길러주는 가성비 좋은 수단”의 하나라고 효용을 밝혔다. 여기서 기초 수준의 독해력이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면 삼국유사나 통감절요, 천자문이나 소학, 나아가 논어나 맹자 같은 고전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읽으며 즐길 수 있는 정도”라고 말한다.
외국어 번역은 우리말 실력이 없으면 정확하고 유려하게 옮길 수 없다. 특히 한문은 문법 체계가 뚜렷하지 않고 해석의 여지가 많다. 또 맥락과 상황에 따라 같은 문장도 다르게 옮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논어≫에 나오는 “言忠信 行篤敬(언충신 행독경)”은 “말이 충실하고 믿음직스러우며, 행동이 독실하고 경건하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귀가 액자에 담겨 사무실 벽에 걸려 있다면 “말은 충실하고 믿음직스럽게 하고, 행동은 독실하고 경건하게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게 어울린다.
이처럼 문장의 맥락을 살피고, 상황과 조건을 보고, 의미를 헤아리며 단어와 조사를 선택하다 보면 저절로 어휘력, 문장력, 문해력이 길러질 것이다. 바로 글을 읽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힘이 쌓이는 것이다.
저자는 청년에서 중년으로 나이대가 넘어가면서 한문 공부가 새롭게 다가왔다고 한다. “나이가 좀 들다 보니 웬만한 고전이 다 형이나 동생, 친구의 이야기가 됐다. ≪논어≫는 공자 형의 잔소리 겸 조언이었고, ≪열하일기≫는 유쾌한 연암 동생의 여행기였다. 그런데 형 동생 삼아 읽은 책은 젊은 시절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통찰을 주었다. 아마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곡절이 그들과 공명하는 접점을 늘린 탓일 게다. 어른이 된 뒤의 한문 공부는 고전에 담긴 저자나 화자의 육성을 풍성하고 절실하게 듣게 만든다. 한문 공부는 역사적 인물을 멘토로 삼아 자기 삶을 돌보는 꽤 괜찮은 수단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