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순부터 제환공까지, 흥미진진한 고사의 세계
『논어』, 『대학』의 사례를 풀어내 유학 고전의 본질로 안내하는 길잡이
『신서』의 장점은 이야기와 대화로 이루어진 서술 방식에 있다. 이를 통해 읽는 사람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통찰은 전혀 가볍지 않다. 『논어』나 『대학』 등의 유학 고전 경서를 읽을 때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표현이 함축적이고 배경이 생략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경서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기』나 『한서』 등의 역사서를 함께 읽는 게 권장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분량이 방대하고 서술 또한 난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에 『신서』와 같은 책이 후대에 전해진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 배경이 된 이야기가 고전 경서의 함축적 표현의 이해를 돕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학』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편에 “楚國無以爲寶, 惟善以爲寶(초나라는 보물로 여기는 것은 없고, 오직 선(한 사람)을 보물로 여깁니다)”라는 표현이 맥락 없이 등장한다. 『신서』는 이 말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진(秦)나라 신하들이 초나라를 찾아와 보물을 구경시켜 달라고 떼를 썼다. 이때 소해휼이라는 초나라 신하가 자국 대신들이 초나라를 지키는 보물이며, 왜 그들이 보물인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이 있어 진나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데 인재가 가장 중요함을 강조한 내용이다.
신서에는 고사가 풍부하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인 요순, 폭군의 대명사 걸주와 그의 애첩, 명군 제환공과 그를 보필한 명재상 관중,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명의 편작 등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기』, 『전국책』, 『춘추』, 『순자』, 『한비자』 등 여러 중국 고전에 나오는 다양한 고사들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다. 한 예로 『춘추』 「좌씨전(左氏傳)」의 순망치한(脣亡齒寒) 고사가 『신서』 ‘선모상(善謀上)’에도 등장한다.
숨겨져 있던 고전이 품은 시대를 관통하는 지혜
고민하는 리더를 위한 제왕학 지침서
『신서』는 유학적 가치관과 윤리·도덕 등이 중심 내용을 이루었기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지배계층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활용되었다. 그러나 사서삼경으로 불리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역경(주역)』에 비해 그 가치가 낮게 평가된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신서』가 본격적인 경서가 아닌, 이야기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경서들이 활발히 번역되었음에도 『신서』가 덜 알려지고 번역 작업이 상대적으로 미진한 것 또한 같은 이유다.
하지만 ‘유학적 이념을 담은 이야기책’이라는 『신서』의 특징은 오히려 유학의 현대적 계승을 촉진하기에 적합하다. 읽고 이해하기 쉬우며, 인용 등 활용하기에도 편리하다. 또한, 등장하는 이야기와 대화는 시대를 관통하여 현대에도 유효한 가치를 담고 있다.
『신서』는 아무 이야기나 모은 책이 아니다. 유학에 정통했던 유향이 유학적 가치를 기준으로 선별하여 주제별로 엮은 책이다. 공자는 리더십의 핵심을 ‘지인지감(知人之鑑, 사람을 알아보는 식견)’으로 보았다. 제왕의 리더십 교과서로 『신서』의 이야기들 역시 사람을 알아보는 법에 역점을 두고 있다. 『신서』가 유학의 깊은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자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학을 비현실적 공리공담, 공허한 형이상학, 추상적인 관념론 등으로 폄훼하는 경향도 존재한다. 현대와 단절된, 과거에만 유효했던 낡은 이념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주희의 교조적 해석의 폐단이 이어진 탓이기도 하다. 교조적 틀을 벗어나면, 유학은 현대에 계승되어야 할 분명한 가치를 담고 있다. 특히 사람을 알고, 신뢰하고, 관계를 맺고, 서로 예의와 책임을 다하는 리더십을 가르친다.
『신서』는 유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리더십 교과서로 손색이 없다. 짧은 호흡 속에 명구, 문답식 구조,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따라서 현대인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어렵고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유학의 이념을 생동감 있고 흥미롭게 다가가는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흩어져서 떠돌던 이야기들을 모으고 같은 것끼리 묶고 앞뒤로 통하는 맥락을 만들어 후대의 사람들에게 뜻을 환하게 밝혀줌으로써 “옛것을 배워 익혀서 새것을 알아내는” 경지로 우리를 이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이한우의 인물지』 |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이한우의 설원』(전 2권) |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
▶ 『완역 한서』(전 10권) | 반고 지음 | 이한우 옮김 | 21세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