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는 분에게 |
이 책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라는, 내부에 두 개의 상반되는 세계를 가지고 그 대립 때문에 괴로워하는 한 청년의 수기 형식으로 시작되고 있지만, 사실은 작자 헤르만 헤세 자신의 젊은 날의 정신적 편력기遍歷記라 할 수 있다.
헤세는 당시 유럽의 불행은 지나친 물질주의物質主義의 추구와 이에 연유하는 인간의 자기 상실에서 비롯되었다고 파악하였다. 따라서 당시의 유럽인 개개인은 물질주의를 추구하다가 정신의 공허화空虛化를 초래했고, 이 공허, 어떤 불안과 공포감 같은 데서 헤어나려다가 잘못된 해결책을 찾게 되었다고 본다. 즉, 자기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 운명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에 유럽인 개개인은 단체를 만들고 떼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려 하는데, 이것은 진정한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상실이며, 이러한 자기 상실은 마침내 이성理性을 상실하고 전쟁에서 그 탈출구를 찾으려 한 것이라고 보았다.
소년 싱클레어는 신앙이 깊고 청결하며 예의바른 부모의 세계와, 하녀, 장인匠人들의 입을 통해 듣는 부랑자, 주정뱅이, 강도 등의 더러운 악의 세계가 자기의 내면에서 대립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악의 세계는 싱클레어가 속한 선의 세계보다 더 강하게 어린 소년의 심령을 끌어당긴다. 그의 내면에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의 혼魂을 지니고 있는 싱클레어는 위태로운 방황을 계속한다. 그러다가 그의 정신적인 지도자 데미안의 다음과 같은 메시지, 즉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를 받고 홀연히 자기 인식의 눈을 뜬다. 스스로 내면의 운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싱클레어는 자기 운명을 개척하고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을 걷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신을 비롯하여 기성의 모든 것, 혼을 잃은 유럽의 문화를 철저하게 비판해야만 했다.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헤세는 일체의 과거를 청산하고 본래의 자기 그대로가 되기 위해 외곬으로 창작에만 파고들었는데, 그 산물 중의 하나가 이 작품 《데미안》이다.
패전 뒤 허탈과 혼미에 빠져 있던 독일인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이 《데미안》은 열화 같은 반응을 불러일으켰음은 물론이다. 전쟁이 끝난 후의 정신적인 폐허 속에서 헤매던 젊은이들에게 《데미안》은 마음의 양식이 되고 삶의 의지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이 책은 커다란 생명력과 호소력을 가지고 젊은 영혼들의 길을 밝혀주고 있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