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말]
“정체성에 대한 고민”
한국에게 건네는 교훈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에 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연합체인 아세안의 구성원이지만, 역사적으로 중국 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왔다. (…) 한국과 베트남이 중국과 접촉했던 다른 민족 집단과 차이가 나는 부분은, 자국 문화를 가진 독립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대륙을 정복하기까지 한 몽골과 여진의 현재 위상을 고려하면, 한국과 베트남이 이룬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전봉희(7쪽)
베트남은 천 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와 19세기 프랑스 식민지 시기 이후에도 20세기에 긴 전쟁 기간을 겪었다. 이 역사적 흐름은 한국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가까운 시기의 건축도 그러하다. 한국의 1세대 근대건축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성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트로피컬 스페이스와 H&P 아키텍츠 역시 베트남 근대건축의 첫 세대로, 베트남만의 건축을 고민하며 실천해오고 있다. 서현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의 작업은 유럽과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부채 의식 없는 건축”이다.
시간이 흘러 한국 건축은 서구가 그랬듯 풍토와 관습(에토스)과의 연결이 약해지며 고유한 정체성도 흐려지고 있다. 이제는 주류의 건축 흐름에서 벗어난 두 베트남 건축가와 작업을 변방의 것으로 치부하는 게 아니라, 교훈으로 받아들일 때다. “새로운 세기에는 지난 200년 남짓 이어온 유럽과 미국 중심의 사고가 더 이상 유효하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이 점점 더 확연해지고 있으니.”(서현, 138쪽)
책의 구성
시작을 여는 전봉희의 프롤로그는 베트남의 전반적 역사를 훑으며 역사와 기후 그리고 건축과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다. 도큐멘트에서는 서울대-목천 강연의 소개와 함께 책이 나오기까지의 타임라인을 담았다. 에이탄 피치만의 크리틱은 베트남 건축의 보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 트로피컬 스페이스와 H&P 아키텍츠를 비교·분석한다. PART 1과 PART 2에서는 각각 트로피컬 스페이스와 H&P 아키텍츠를 상세히 다룬다. 에세이에서는 각 건축가의 철학을 살펴볼 수 있고, 크리틱에서는 백진과 서현이 이들의 가치를 짚는다. 건축가별 다섯 프로젝트는 짧은 글과 사진, 도면, 스케치 등을 함께 실었다.
서울대-목천 강연
지역 건축계와 세계 건축계의 소통을 목표로 매해 국제적인 건축가를 초청해 개최하는 강연 시리즈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인 김정식(목천김정식문화재단 이사장)이 서울대학교에 발전기금을 기부하면서
발족됐다. 2017년 미국과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를 초청해 첫 강연을 열었다.
제2회부터는 문화와 역사, 도시적 상황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아시아 건축가를 초청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으며 강연과 함께 건축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모노그래프를 출간하기로 했다. 제2회 강연자로 중국의 건축가 리우지아쿤을 선정해 강연을 열고 서울대-목천 강연의 첫 작품집을 출간했다.
두 번째 작품집은 베트남 건축가를 주목한다. 2019년과 2022년에 각각 트로피컬 스페이스와 H&P 아키텍츠의 강연을 주최하고 학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