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음모론이 아니다
저자는 책의 상당 부분을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반박하는 데 할애한다. ①‘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지구 기온에 반응하므로 기후변화를 야기하지 않는다’거나, ②‘이산화탄소는 대기의 일부일 뿐이며 거대한 온실효과를 일으킬 수 없다’거나, ③‘최근 지구 기온의 변화는 태양의 변화로 인한 것’이라거나, 심지어 ④‘모든 데이터가 지구온난화 현상을 보여주도록 보정되거나 조작되었다’라는 음모론에 꼼꼼히 반박한다.
“과학은 신념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관찰과 실험을 통해 생각과 이론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법론이다. 또한 그것은 세계사회의 근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당신은 어떤 과학적 증거를 믿고 어떤 과학적 증거를 거부할지 부분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 _58쪽
저자는 지난 150년 기술이 부족했던 시기에 측정된 기후 데이터에 보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 과정의 일부”(78쪽)이며,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온난화의 원인임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 여섯 가지를 댄다. 온실가스 동위원소 구성에 따르면 추가적으로 발생한 탄소의 대부분이 화석연료의 연소로 인했다는 것, 온실가스가 열을 흡수한다는 것, 빙하권과 해양 및 육지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 태양흑점은 지난 100년간 온난화 추세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 등이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 부인할 수 없는 자료와 데이터로 뒷받침된다.
누구의 책임이고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선진국의 책임과 개발도상국의 우려
“북미, 유럽, 아시아는 전 세계 산업 생산 관련 이산화탄소의 90퍼센트 이상을 배출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개발도상국은 선진국보다 이산화탄소를 훨씬 적게 배출해왔다.” _28쪽
영국인 저자는 기후변화의 책임이 우선적으로 선진국에게 있음을 분명히 인지한다. 그리고 개발도상국이 기후변화와 기상이변에 더욱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사실을 염려한다. 이를테면 기후변화로 일어난 허리케인은, 선진국엔 경제적 피해를 입히지만 개발도상국엔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다.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의 측면에서도, 선진국보단 개발도상국이 농업 생산량의 하락과 식량 위기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는 정치적으로도, 그리고 철학적으로도 아주 복잡한 문제를 빚는다. 개발도상국의 탄소 배출 저감할 수 있도록 선진국이 비용을 지불하는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같은 제도가 있었지만 이 비용은 최빈국까지 두루 지급되지 못했다.
“많은 사회정치학자들은 기후 협상 자체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의문을 제기해왔다. 주된 걱정은 선진국들이 가난한 국가들에게 언제, 어떻게 국가 발전을 중단해야 하는지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기후 협상이 일종의 제국주의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수년 동안 인도와 중국 같은 국가들은 자국의 발전과 빈곤 구제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탄소 배출을 줄이라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저항해왔다.” _193쪽
이 책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최빈국들의 경제성장을 허용하면서”(241쪽)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지가 인류가 당면한 과제임을 밝히고 있다. 세계 인구는 2050년 100억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선진국의 생활수준을 원하는 사람이 80억 명으로 증가한다는”(241쪽)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후변화를 과학의 문제가 아닌, 정치와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임을 저자는 다시 한번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