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해설 -----------------------------------------------------------------------
“목사님, 기도하며 기다릴게요.”
내 손을 꼭 잡고 미소짓는 지체들 유재영, 박진영, 성요창, 안하성, 김영임, 강희숙…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의 환송을 받으며 수술실로 옮겨졌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세요.”
8시간을 넘게 하는 수술을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오히려 나는 깊은 잠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다가 잠이 들었다. 얼마를 지났을까? 누군가 나를 흔들며 깨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보니 형광 불빛 사이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잠들기 전에 미소짓던 사랑하는 지체들의 얼굴이었다. 여전히 미소짓는 그들이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사람들, 교회들이었다.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모세가 처한 상황이 너무 가슴 아프게 들려온다. 평생 약속의 땅을 꿈꾸며 살아왔다. 모세가 겪었던 40년의 광야 생활은 눈물과 땀, 피로 얼룩진 시간이었다. 고달팠던 시간도 약속의 땅이 있었기에 참고 견뎌낼 수 있었다. 이제 그 약속의 땅 앞에 서 있는데,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너는 여기까지다.”
아직도 기력이 쇠하지 않고 눈이 흐려지지도 않아서 정정한데, 죽어야 한다면 억울할 것이다. 능력과 지혜가 탁월하고 앞으로도 충분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죽어야 한다면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상황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모세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여기까지입니까” 육십 세가 거의 다 되었으면 아쉬울 것도 없다는 생각과 아직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교차되었다.
죽음이 다가오면 아쉽고 두려워서 우울해지는 사람이 있고, 오히려 “나의 남아있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어떻게 내 인생을 집중시켜야 하는가” 삶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지는 사람이 있다.
모세가 광야 40년을 정리하여 신명기 설교에 집중했듯이, 나 역시 생명의 복음과 교회에 집중하고 싶었다. 가능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요한복음 설교를 마치고, (마음으로 읽는 요한복음)『 도망갈 수 없었던 그 길』과『 저항할 수 없었던 그 길』을 출간할 때 얼마나 가슴이
벅찼던가?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지만, “1년 정도 살 것입니다.”라던 의사의 말은 틀릴 수도 있어서 감사하다.
나는 목회 혹은 교회에 관한 책을 쓸 생각이 없었다. 신학적인 질문과 해석은 전공한 학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목회자로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나의 남은 인생에 채우고 싶은 중요한 가치들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에 안겨주고 싶었다.
이 책을 집필한 후 나에게 목회 위기라 할 수 있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췌장을 누르고 있는 하부 담도암이 발견되었고, 나와 교회 모두는 이 상황이 주는 하나님의 교훈에 집중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수술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 목회의 패러다임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달려왔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나와 교회는 기본적인 질문 앞에서 새로운 답을 찾아야만 했다.
이 질문은 나와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독자나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분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 보지 못했다면 매우 불행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도 고통으로 고민하여 죽게 된 때도 있었는데 하물며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어찌 예측 불가능한 고통이 없겠는가?
나름대로 밤낮 수고하며 지체들과 함께하려고 애썼고, 돈 욕심도 드러내지 않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눈물 흘리며 바르게 목회하려고 애써왔는데도 불구하고 목회를 뒤흔드는 고통은 한순간에 다가왔고, 사랑하는 지체들도 크게 영향을 받았다.
1년 후 재발 될 확률이 80% 이상이며 방사선 치료 후 6개월 동안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에게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품 안으로 달려가는 새로운 희망”이라는 말로 거절하고, 걸어온 삶과 걸어갈 나의 삶에 꼭 필요한 질문을 던졌다. “나의 남은 인생에 채우고 싶은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조심조심 목회해왔고, 이 답이지극히 주관적일지라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에 들려줌으로 그들의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어서『 나는 너로, 너는 나로 이룬교회로 살다』를 집필하게 되었다.
한 순간에 찾아온 고통이 나와 지체들을 당황하게 했지만, 그 고통이 준 유익한 점이 더 많았다. 먼저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의우선순위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영혼의 가치도 새롭게 보였다. 지체들이 겪는 고통에 매우 실제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도 생겨났다.
중요한 가치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아내를 사랑하는 일, 교회를 사랑하는 일이다. 이 가치야말로 내가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이유요 목적이다. 내게 다가온 고통은 이 가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내 삶을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지침이 되었다.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묵묵히 손잡아주며 아름다운 추억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겨가는 아내와 지체들이 진심으로 고맙다.
이 책이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내 마음의 선물이 되길 소망하며 도와주신 모든 지체들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