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창을 통해 내내 바깥을 내다보았으나
읽은 것은 결국 내 마음이었다
그녀의 세상은 많은 부분 책과 그림,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여정은 잔잔하지만 뜨겁고, 험난하지만 아름다우며, 형이상학적인 듯하지만 일상과 밀착되어 있다. 어느 날 문득 세상에 던져져 경험한 세상을 "나"라는 프리즘을 통해 통과하여 새로운 빛을 만들어내는 것이 삶이다. 자신이 읽은 세상을 자신의 언어로 창조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바쁘게, 쏜살같이 달려가는 세상을, 이경은 작가는 자꾸 붙잡는다. 난 이제 틀렸어, 하고 주저앉지 않고, 나랑은 상관없는 세상이라며 외면하지도 않고, 계속 들여다보고 말 걸고 대화를 시도하며 사귀려 노력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미술과 음악을 즐기고, 후배들과 부지런히 소통하며, 무엇보다 무식하게, 책을 읽는다. 작가 이경은의 책 읽기는 일상이다. 누군가 슬쩍 알려준 낱말 하나를 디딤돌 삼아 낯선 세계로 건너가고, 여행길의 방문지에서 알게 된 작가의 전집을 무턱대고 사들이는가 하면, 남의 하소연을 듣다가도 카프카의 소설을 떠올려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간다. 은퇴한 남편이 취미로 하는 사진에 단상을 붙여 두터운 포토에세이집을 만들어내고 서점을 찾아다니며 책이 이어준 인연과 수다를 떤다. 세계관에 대한 폭넓은 탐구는 그녀를 과학의 세계로 인도하기도 한다. 과학자의 실패담이 주는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과학자의 문장에 심취하며 추상적인 관념으로 가득찬 자신의 머릿속을 물리적인 사실과 과학적 증명의 공기로 환기시킨다.
늘 새로운 콘텐츠를 발견하고 그것에 반응하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작가의 힘이 오롯이 담긴 이 책은 항상 읽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그녀의 실천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무한대의 긍정성이다. 삶이 어떻게 흘러가든, 세상이 어떤 험악한 모습을 보이든 자신의 공간을 깊고 넒은 앎에의 추구와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의 수없는 반복으로 채워넣는다.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일상의 모든 순간을 예술적 경험으로 승화하려는 자기만의 방식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조각조각 나누어주려는 그녀의 지극한 나눔은 독자에게 책 읽는 순간의 행복을 선물처럼 건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