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주된 사상은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란다… 아름다움은 이상이지… 이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존재는 바로 그리스도 한 분이 유일하단다…”
위의 내용은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조카 소피야에게 쓴 편지의 일부이다. 그리고 소설 〈백치〉의 주인공 므이쉬킨 공작은 도스토옙스키가 그토록 그리고 싶어했던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그리스도’를 형상화한 인물이었다. 대체 도스토옙스키가 그리던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존재는 소설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백치〉는 〈죄와 벌〉, 〈미성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과 더불어 도스토옙스키의 5대 장편 중 하나로, 도스토옙스키 작품 중 유일하게 해외에서 구상과 집필이 시작되고 완성되었다. 구상은 186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했고 1868년 1월 〈러시아 통보〉지에 연재를 시작했으며 1869년 1월에 작품을 완성했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주인공 므이쉬킨 공작의 여정은 제네바로부터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시작된다. 므이쉬킨 공작의 ‘그리스도 형상화’는 첫 장면에서부터 나타난다. 로고진은 기차에서 그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공작, 당신은 천상 유로지비(바보 성자)인데, 신은 당신 같은 사람을 사랑하죠.”
해외에서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어디서 어떻게 살 지 아무런 대책이 없는 그는 순수한 건지 멍청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면 성경에서 보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언뜻언뜻 떠오른다.
“…제가 완전히 어린아이와 다름없으며 키와 얼굴만 성인이지 마음, 성격, 지능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고 제가 60살까지 살아도 계속 어린아이처럼 지낼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중략) 저는 왠지 모르게 성인들과 함께 있는 것이 힘들었고 제가 그들로부터 해방되어 제 친구들(아이들)에게 달려갈 수 있다면 뛸 듯이 기뻤는데 그건 제가 어린 아이라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끌렸기 때문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므이쉬킨은 스위스에서의 추억을 되짚으며 아이들과 있을 때 가장 행복했다던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이들을 사랑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이렇듯 므이쉬킨 공작은 인간의 가장 선한 면을 가진 인물로 그려졌다. 그는 ‘백치에 가까운 상태’가 될 정도로 심각한 병을 앓았는데 여기서 ‘백치’라는 단어는 축복받은 자,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밖에 소설 곳곳에 므이쉬킨 공작이라는 인물 속에는 ‘돈키호테’의 모습, 아글라야가 언급하듯 푸쉬킨의 ‘가난한 기사’의 모습도 들어가 있다.
소설의 주된 사건은 통속적인 로맨스 스캔들이다. 절세 미인 나스타시야 필리포브나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내연 관계, 정략 결혼, 삼각관계, 사각관계, 도주, 싸움으로 치닫다가 결국은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여자 주인공 나스타시야 필리포브나는 순진한 어린 시절토츠키라는 대부호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해 그의 정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토츠키는 예판친 장군의 여식에게 장가를 들고 싶어한다. 나스타시야 필리포브나는 이렇게 자신을 헌신짝처럼 버리려는 토츠키에게 분노하고 그의 결혼을 훼방 놓는다고 협박한다. 이에 예판친 장군과 토츠키는 그녀를 달래려 그녀에게 지참금을 주며 가브릴라(가냐)와 결혼하라고 회유한다. 그녀는 이들을 비웃으며 자신에게 반한 로고진과 떠나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므이쉬킨 공작을 잊지 못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결국 그녀를 완전히 소유하지 못해 분노한 로고진은 그녀를 죽이고 므이쉬킨 공작은 이전보다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스위스로 또다시 요양을 간다.
그리스도의 닮은꼴이라는 므이쉬킨은 실제로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구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와 만난 사람들은 선량함, 고결함, 이해심이라는 한 줄기의 빛을 받게 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작품에 자신의 삶의 흔적을 남겨두는 경우가 많았다. 〈백치〉에서는 사형선고를 받아 총살 직전까지 갔다가 사면되었던 잔인한 ‘사형극’ 경험을 므이쉬킨 공작의 입을 통해 생생히 들려준다. ‘사형당할 뻔했던 아찔한 경험담’을 실제로는 쓸 수가 없어 소설 속에서라도 본인이 느꼈던 감정을 토로한 느낌이다.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니콜라이 1세는 정치범들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사형을 선고했다가 형 집행 직전에 사형을 취소하는 ‘사형극’을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치범으로써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20분쯤 후에 사면령이 내려졌고, 다른 형벌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사형선고와 사면령 사이 그 20분 동안 몇 분 후면 죽을 것이란 확신을 했지요. (중략) 신부님이 십자가를 들고 모든 죄수들 사이를 돌아다녔습니다. 시간이 5분도 채 안 남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 5분이 그에게는 영겁의 시간 같았으며 너무나 큰 자산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5분이란 시간이 너무 긴 시간처럼 느껴져 이 순간이 마지막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던 것입니다. 그는 동료들과 이별할 시간 2분, 자기 자신에 대해 마지막으로 돌아볼 시간 2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변을 돌아볼 시간을 남겨놓기 위해 시간을 나누어 놓았습니다. (중략) 그는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데, 3분 후면 다른 존재 혹은 다른 인물인지 무엇인지가 될 것이다. 무엇이 될 것인가?”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소설의 대표작으로 만들기도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독일 화가 한스 홀바인의 ‘무덤 속의 그리스도’를 좋아했는데 바젤 미술관을 방문해서 그림을 직접 감상한 후 소설에 등장시킨다.
“그래 이건… 한스 홀바인의 복제품이군.” 공작이 말했다. “내가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훌륭한 복제품 같네. 해외에서 이 작품을 봤는데 잊을 수가 없더군.”
로고진의 음침한 집에서 므이쉬킨 공작은 한스 홀바인의 그림 〈무덤 속의 그리스도〉의 모작을 보고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이 그림은 소설의 가장 핵심적 키워드인 믿음과 불신의 테마와 연관되어 있다. 만약 한스 홀바인의 그림에 묘사된 것처럼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구세주의 부활을 믿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래, 이 그림을 보면 신앙이 사라지겠군!” “사라지지.” 갑자기 로고진이 예기치 못하게 확신했다.…
이밖에도 〈백치〉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할 만한 흥미로운 포인트가 많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소설에 비해 희미하고 불확실한 느낌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도스토옙스키가 이 작품을 정말 사랑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앞서 언급했듯 도스토옙스키는 〈백치〉를 해외에서 모두 구상하고 집필하였으며, 두 번째 부인 안나와 결혼하자마자 해외로 떠나서 쓰게 된 작품이다. 집필 기간 동안 그는 안나와의 사이에서 딸 소냐를 낳았으나 소냐는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이 시기는 그가 인생에서 큰 슬픔을 경험한 때이기도 하다. 이후 도스토옙스키는 딸을 잃은 슬픔을 잊기 위해 다른 도시들을 전전하다가 피렌체에서 〈백치〉의 작업을 모두 마쳤다. 〈백치〉 이후에는 도스토옙스키 부부는 독일 드레스덴으로 이사해 둘째 딸 류바를 낳고 그곳에서 소설 〈악령〉을 쓰기 시작해 러시아에서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