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백계百計가 불여일보不如一步!
여행은 백 가지 계획보다
한 걸음 실행이다!]
몇 년 사이 ‘MBTI’가 유행을 넘어 ‘대세’로 떠올랐다. 면접에서마저 MBTI를 물어볼 정도라고 하니, 아마 누구나 한 번쯤 ‘MBTI’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을 것 같다.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중 하나인 ‘MBTI’의 결과 유형은 네 자리의 알파벳으로 표시되는데, 이 중 마지막 자리인 ‘J’와 ‘P’는 각각 ‘판단형’과 ‘인식형’을 카리킨다. 이들의 차이는 흔히 ‘여행 계획 방식’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통제 욕구가 높고 체계적인 일 처리를 선호하는 ‘J’는 일명 계획파다. 그들은 여행 장소와 관광 테마에서부터 주요 동선과 예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부 사항을 꼼꼼히 계산해 여행 계획을 세우고, 그 예정대로 일정이 완벽하게 진행되었을 때 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반면 적응력이 높아 삶의 예측 불가능성 자체를 ‘새로운 변화’로 받아들이는 ‘P’ 유형에게 여행이란 대개 이런 것이다. “일단 내키는 대로 한번 가보자. 그럼 거기에 또 길이 있겠지!”
어학연수와 박사 유학. 꽃다운 청춘의 시기를 중국에서 객지 생활로 보냈다는 그의 여행 스타일은 그야말로 ‘P’의 정수다. 그에게 여행이란 현지에서의 이동수단은 고사하고 그 흔한 숙박업소 예약도 없이 무작정 중국 땅을 밟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도 하나 들고 말 그대로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그러므로 언제나 “우연이랄 것도 없”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돌발’ 연속인 그의 여정에서 눈에 띄는 것을 짚자면 단연 생생한 현장감이다. 때로는 현지 시장을 둘러보면서 상인들과 가격 흥정도 하고, 때로는 ‘외국인 손님은 받지 않겠다!’라고 으름장을 놓는 숙소 직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때로는 산속 깊은 곳에 산다는 청년의 오토바이 뒤에 올라 ‘소수민족’의 터전을 경험하는 일. 누군가는 ‘우여곡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이 종횡무진의 여정이, 저자에게는 모두 “신선함과 긴장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이라는 게 믿겨지는가? 어쩌면 그의 여행이 이렇게 호방할 수 있는 것은 비단 그의 성격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청춘이 배어든 땅, 중국 대륙의 광활함이 드넓은 ‘포용성’을 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먼 나라 이웃 나라’,
우리는 아직도 ‘중국’을 모른다.]
언제, 어디에서든 전 세계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구촌’ 시대라지만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들은 존재한다. 가령 우리의 대표적인 ‘먼 나라 이웃 나라’ 중국이 그렇다. 인접국으로서 한자 문화, 유교 문화 등을 공유하는 사이인 데다 재중동포 및 화교 등과 접할 기회도 적지 않은데, 중국을 마냥 ‘친숙한 나라’로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너무 가깝고 익숙하다 보니 ‘대륙’인 중국의 이미지가 협소한 편견에 갇히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유학생 신분으로서 3년 동안 중국에 머무른 경험이 있는 중문학 전공자의 눈으로 본 중국은 어떨까? 지난 삼십여 년간 수도 없이 중국과 한국을 오갔더니 이제 중국을 ‘제2의 고향’처럼 가깝게 느끼게 됐다는 저자는, 그러나 여전히 중국에 대해 말할 때 “아직 못 가본 곳이 가본 곳보다 훨씬 더 많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중국에서 태어나 평생 중국 땅을 벗어나본 적 없는 사람들조차 중국에 대해서 감히 ‘다 안다’고는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대륙’ 중국에 발을 디디려면, 도대체 어디에 가고 무엇을 보아야 하나. 고민보다 경험, 계획보다 실전! 중국으로 향하는 첫 걸음이 ‘발길 닿는 대로’의 호쾌한 여정이 될 수 있도록, 저자의 발자취를 몇 자 소개한다.
[유교의 아버지 ‘공자’를 만나다]
‘유교적 가치’가 퇴색하고 있는 요즘이라지만, 그래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유교적 가르침을 체화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기원전 550년경, 즉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태어나 세계 4대 성인의 자리에 오른 유학의 아버지 ‘공자’의 고향인 곡부가 바로 산동성에 있다. 그는 “중국인들에게는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곡부는 “마치 과거의 요새”와 같이 “도시 전체가 성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곡부에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 ‘공묘’와 공자의 직계가 살았던 저택 ‘공부’, 공자와 그의 후손들이 묻혀 있는 무덤 ‘공림’으로 이루어진 세계 문화유산 ‘삼공’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야말로 역사가 생동하는 현장으로서 “시간의 장중함이 단연 압권”인 유적지다.
[〈색, 계〉의 원작자, ‘장아이링’의 발자취를 따라서]
‘상하이 유학생’이었던 저자는 독특하게도 자신이 머물렀던 현대의 상하이보다 1930-40년대의 ‘올드 상하이’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가 번역한 바 있는 산문집의 작가 ‘장아이링’(張愛玲, 장애령) 역시 ‘올드 상하이’를 대표하는 작가다. 장아이링은 영화 〈색, 계〉의 원작자로도 알려져 있는데, “남녀 간의 감정, 상하이 유한계급의 일상, 과도기 여인들의 산산스러운 삶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도시이자 국제도시인 상하이의 면면을 사랑했다는 장아이링의 발자취를 따라 이으면 이른바 ‘장아이링 로드’라 불리는 여행 코스를 만들 수도 있다. “대략 우캉루, 헝산루, 화이하이루, 난징루, 푸저우 등의 중심 시가지, 프랑스 조계지 지역”이 중심을 이룬다는 그곳에는 장아이링이 젊은 시절 살았던 아파트와 자주 오가던 절, 오래된 영화관과 백화점들이 여전히 남아 사람들을 ‘올드 상하이’로 인도한다. ‘중국의 민족혼’이라고도 불리는 “중국 현대 문학의 거대한 산” 노신의 또한 ‘올드 상하이’는 중국 영화의 1차 황금기를 열었던 곳으로 지금도 ‘상해 영시낙원’이라는 영화 세트장을 찾아볼 수 있으니, 3-40년대 중국의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쯤 가봐야 할 것이다.
[바다 위의 삶, ‘싼두아오’의 수상 가옥들]
중국은 땅이 드넓은 만큼 각자의 독자적인 생활 양식을 지키며 살아가는 민족들이 많다. 지금은 관광지로도 꽤나 알려진 복건성의 ‘토루’ 역시 ‘객가인’들의 고유한 주거 양식이고, 우리네 제주 해녀들과 비슷하게 여성이 중심을 이뤄 바다 연안에서 생활하는 독특한 전통 복식의 ‘혜안녀’들도 있다. “바다 위에 목조로 된 집을 짓고 바다를 내 집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복건성 연안의 ‘영덕현 싼두아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찾을 수 있다는 해상 가옥 군락은 “작은 도시처럼 마을을 이루고 있”다는데, 주로 “미역을 키우기도 하고 인근 바다에 나가 어업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심지어는 “아예 배 자체를 집으로 삼아 모든 생활을 배 위에서 하는 이들”도 있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30분씩 육지로 등하교”를 해야 한다는 바다 위, 그들에게 삶은 하나의 ‘항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