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일본의 제국주의가 ‘대동아공영’ 미명 아래 펼친 피의 역사는 당연히 조선 땅에서만 그 잔혹상이 연출됐던 건 아니다. 우리가 35년 동안 수난을 겪고 있을 때 중국도 커다란 덩치에 안 어울리게 무력하게 일본 식민지로 전락, 수많은 민중이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감당 못할 능욕과 심지어 난징대학살 같은 참혹한 실상까지 마주하게 된다.
이때 중국 역시 한 줌도 안 되는 민족반역자 무리들이 흉악한 힘을 이뤄 일본에 달라붙더니 그들이 내어주는 꿀을 빨며 동족을 향해 총질과 채찍을 휘두른다. 소위 ‘한간(漢奸)’, 그들의 친일행각은 그 치졸함과 추악함이 극에 달했다.
그 한간들의 우두머리인 왕정위(汪精衛)가 일본의 비호 아래 남경과 상해를 중심으로 세운 괴뢰정부가 (僞)중화민국국민정부이다. 이 괴뢰정부 산하 특무기관인 특공총부 ‘76호’와 장개석의 중국 국민당 정보기구 ‘군통’, ‘중통’ 간의 피비린내는 혈투, 뜯고 물리는 이간책과 회유·궤멸공작들의 실화를 이 책은 국내 최초로 공개하고 있다.
본문 전개는 우국지사 열혈맨으로 왕정위가 휘황했던 그 젊은 날의 모습과 곧바로 이어지는 매국노로의 변신, 전면적인 중국침략인 중일전쟁의 발발과 평화회담에서부터 상해에서의 일본의 중광당 공작, 그리고 왕정위의 월남행 탈출과 암살기도, 서로 죽이고 죽는 첩보공작 등으로 이어지는데, 일본의 간사한 내분 획책과 이에 꼭두각시로 놀아나는 일본 앞잡이 매국노들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난다.
‘전통사상과 현대중국’, ‘중국문화의 산업화 콘텐츠’, ‘중국현대사상연구’ 등 저자의 교수 재직 시 그의 학부나 대학원 강의명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문화와 인물·사상의 학문적 연구성과를 현대사회의 공적가치와 결합시킴으로써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기여하고자 했던 저자 이강범은 왜 이 책을 썼을까? 우리는 못했고, 중국은 해낸 ‘친일청산’의 실질적 역사 자료와 관련 전언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청산 못한’ 우리 자신들에게 각성의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