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마지막 몸부림과 같은 소설
유희와 환락, 그리고 지독한 고통과 눈물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작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로도 읽힌다. 소설의 주인공 오바 요조는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인간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광대’를 자처하며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그는 화가를 꿈꾸며 미술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반학교에 진학하고, 호리키라는 친구를 만나 술과 여자를 배운다. 도시에서 홀로 지내며 점점 타락해가던 요조는 여자와 동반자살을 시도하고, 알코올과 약물 중독에 이르러 끝내는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끝내 인간으로서 스스로 실격되었다고 여기는 요조의 자기 고백적 이야기는 다자이 오사무가 실제로 겪었던 삶의 풍파와 겹쳐진다.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마지막 몸부림과 같은 소설이자, 자기 파괴와 연민 사이에서 고뇌하던 한 남자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를테면,
인간을 향한 저의 마지막 구애였습니다.”
“부끄럼 많은 삶을 살아왔습니다”라는 구절을 『인간 실격』의 첫 문장으로 알고 있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이 소설은 사실 액자형식으로, 앞의 문장은 ‘수기’의 첫 문장이고 실제 소설은 주인공 요조가 쓴 이 수기를 우연히 얻게 되는, 서문과 후기에만 등장하는 한 남자의 글로 시작한다. 그리고 서문이 끝난 후, 바로 그 “부끄럼 많은 삶을 살아왔”다라는 한 인물의 고백을 우리는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부끄럼 많은 삶”이란 도대체 어떤 삶일까.
요조에게 인간이란 존재는 불가사의하며,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요조가 생각해낸 세상을 대하는 방식은, ‘광대’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광대 짓이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라고 그는 말한다. 광대 짓이 시작된 이후로 요조의 인생은 꽤 무탈한 부잣집 도련님의 삶으로 접어드는 듯싶다가도,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어둡고 나약한 정념에 잡아먹혀 번번이 부서진다. 늘 세상을, 자기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숨고 도망쳤던 요조. 『인간 실격』은 한 심약한 청년과 이 세상 사이의 애증을 우울과 유희를 넘나들며 그려냈다.
세상과 불화하며 방황하는 한 청춘의 이야기
시대를 뛰어넘어 전해지는 절절하고 쓰라린 고백
“겁쟁이는 행복조차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부드러운 솜옷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부유한 집안의 열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 일찍이 문학적 재능을 발견해 10대 때 동인지를 만들어 발표하기도 하고,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쳤지만 서른아홉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1948년 6월 13일 강에 투신했는데, 그 직전까지도 펜을 놓지 않고 『인간 실격』을 포함한 여러 작품을 발표하고 완성했다.
문학 평론가 오쿠노 다케오는 다자이 오사무를 두고 “패전 후 혼란기를 우리는 다자이 하나에 의지해 살았다”라고 말했다.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우울을 반영하여 쓰라리고 수치스러운 감각에 파묻혀 있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다자이가 이 소설을 발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1948년에서 70여 년이 지난 지금, 시대적 배경은 변화하였지만 세상과 불화하고 방황하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는 여전히 생생하게 읽히며 씁쓸한 안타까움을 남긴다.
열림원 세계문학의 『인간 실격』은 「탈향」 「닳아지는 살들」을 쓴 소설가 이호철의 번역 유고작이다. 생전 소설가 김승옥이 고인에게 부탁한 번역으로, 불안하고 복잡한 화자의 어조를 침착하고 매끄럽게 따라가며 다자이 오사무 문학의 섬세함을 끄집어냈다. 역자의 작품 해설을 대신하여 소설가 박솔뫼의 추천의 글을 실었으며, 이는 작품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요조의 고백은 강렬하고 그가 토해내는 한마디 한마디는 꽤 빽빽해서 귀 기울여 듣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단순히 무책임한 사람이군 하고 휙 뒤돌아가기 어려운, 왠지 좀 더 이야기하고 싶고 이 사람 재미있네 싶기도 하고 결국엔 이 어찌할 수 없다는 토로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생각하게 한다.”
─ 박솔뫼(소설가), 추천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