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집(漢詩集) 제목을 ‘청산(靑山)’이라 하였습니다.
‘청산(靑山)’은 지강 선생의 한시에서 가장 많이 쓰인(12회) 시어(詩語)이고, 수필 형식의 산문에도 「청산(靑山)」이라는 제목이 있습니다. 아울러 시 속에는 ‘청(靑)’과 유사어인 碧(푸를 벽), 蒼(푸를 창), 淸(맑을 청), 綠(초록빛 록), 翠(비취색 취), 晴(갤 청) 등이 48수 이상에서 사용됐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곧 청산은 지강 선생이 찾았던 대한독립이고 이상향이며 무한 에너지 원(源)인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역해하는 과정에서도 ‘푸른 산’으로 하지 않고 한자음 ‘청산’을 그대로 사용한 것은 우리의 민요를 비롯 전통 시가 문학에서도 자주 쓰이듯이 시적인 의미를 더 깊고 넓게 함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격랑(激浪) 속에 수장된 보석 같은 한시 발굴
국권침탈기의 배일 저항시 문학을 정리하여보면 경술국치 직후 매천 황현(梅泉黃玹)의 〈절명시(絶命詩), 1910년〉, 만해 한용운(萬海韓龍雲)의 〈님의 침묵, 1926년〉 이육사(李陸史)의 〈절정(絶頂), 1940년〉과 〈광야(曠野), 1945년〉, 윤동주(尹東柱)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1년〉 등 네 명의 시인을 들 수 있습니다. 필자는 여기에 191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로 황현 선생을 이은 8년여(1911〜1919년) 동안 지속적으로 발표한 지강 선생의 한시작품들이 1920년대 만해의 〈님의 침묵〉이 발간되기 이전까지 저항시 문학사의 공백기(?)를 메워주고 있으므로,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문학사적 측면에서도 시인으로서 평가받는 시초를 조성하기 위한 의도가 있음을 밝힙니다.
지강 선생도 자신의 시를 발표함에 있어 일제의 혹독한 언론검열과 감시,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문학적 수사(修辭)를 택할 수밖에 없어 중의(重義), 압축(壓縮), 비유(譬喩), 생략(省略), 난해한 전고(典故 ; 典禮와 故事) 사용, 암시(暗示) 등의 표현수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해설을 통해 밝혀냄으로써 ‘대부분의 한시(漢詩)들이란 음풍농월(吟風弄月)한 것’이라는 선입견과 오해를 배제하기 위해 해설문을 더해야겠다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문학사에서 저항시인으로서의 위상
간략하게 한문ㆍ한글문학을 아울러서 국권침탈기의 배일(排日) 저항시 문학을 정리하여보면, 경술국치 직후 매천 황현(梅泉黃玹)의 〈절명시(絶命詩), 1910년〉, 만해 한용운(萬海韓龍雲)의 〈님의 침묵, 1926년〉, 이육사(李陸史)의 〈절정(絶頂), 1940년〉과 〈광야(曠野), 1945년〉, 윤동주(尹東柱)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1년〉 등 네 명의 시인을 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191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로 황현 선생을 이어 8년여(1911〜1919년) 동안 지속적으로 『천도교월보』를 통해 발표한 지강 선생의 한시작품들이 한국문학 시문학사에서 저항시로서 큰 맥을 올연 이어감으로, 독립운동사뿐만 아니라 문학사적 측면에서도 걸출한 저항시인으로서 시초를 조성하였습니다.
- 〈서문〉 중에서
꿈도 못 꾸게 하던 시대에 꿈을 노래하다
일제의 감시가 서릿발 같아서 살얼음을 밟는 심정으로 시의 제목부터 내용까지 모두[多] 감추고[藏], 일월도 그림도 다 못 그리니 숨기고[藏] 또 감추고[藏], 특정 지명을 의미하는 것처럼 ‘곡(谷)’자(字)를 붙여 발표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일월도 앞 용상에 태산처럼 앉아서 만조백관을 불러 정사를 의논하던 나랏님은 어디로 숨었습니까[藏], 누가 감추었습니까[藏], 백성들은 볼 수 없으니 나랏님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藏], 북악산 골짜기[谷]에서 울부짖고 있사옵니다.
- 〈다장곡(多藏谷)〉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