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계가 아시아를 주목하는 이유
압도적인 에너지와 투쟁의 역사를 간직한 민중
지구상의 많은 나라를 취재한 저널리스트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가깝고도 친근한 아시아로 시선을 돌렸다. ‘일본과 닮은 것 같지만 다른’ 아시아의 나라들이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했거나, 일본 사회가 잃어버린 인간의 에너지와 사회 동력을 갖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경제 발전과 성장만을 추구해 온 오늘날의 세계는 경기 침체와 빈부 격차, 전쟁과 무역 갈등,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룬 일본 사회 문제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후퇴, 군국주의, 미군기지, 원전 등이다. 따라서 민중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미국의 침략에 완강하게 맞서며, 원전을 폐로하고 미군기지를 반환하는 등 아시아 작은 나라들의 행동은 일본 사회가 바로 서길 바라는 양심 있는 지식인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저자가 바라보고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한국 민중의 에너지는 어려울 때마다 분출하는 특성이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하야시킨 2016년 민중 총궐기에 이르기까지, 현장에 있던 일본인 저널리스트의 시선을 좇으며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의 열망을 새로운 관점으로 접할 수 있다. 아울러 베트남, 필리핀, 스리랑카를 다룬 장에서는 초강대국 미국에 저항한 베트남 민중의 투쟁과 당시 미국의 편에서 전쟁에 가담한 한국군 이야기, 원전을 건설했지만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필리핀 국민운동으로 반환한 역사, 전쟁 배상 문제에서 스리랑카가 일본의 은인인 이유 등 우리가 잘 몰랐던 역사와 현재를 파악할 수 있다.
일본 저널리스트가 본 한국의 ‘민중 총궐기’
싸워서 스스로 민주주의를 획득한 역사
저자는 격렬한 정치 변화 속에서 피 흘려 민주주의를 얻어낸 한국 민중의 에너지를 탐구하기 위해 한국에서 취재하며 목격한 장면을 상세히 서술했다. 2016년 민중 총궐기가 일어난 배경과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며 ‘대통령을 실각시킨 원동력은 민중의 거대한 물결’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싸워서 정권을 바꾸는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알기 위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밖에서 본 광주민주화운동의 흐름과 광주에서 학살이 일어난 배경으로 지역 차별을 든 서술, 한국에서의 ‘민중’ 개념 분석과 그 역사의 탐구 등에서 수십 년에 걸쳐 한국 사회 변화를 추적해 온 저자의 열의가 엿보인다.
노태우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88년에 시위 현장을 찾은 저자는 전두환과 노태우에 저항하는 시민의 강한 의지를 겪었고, 〈한겨레〉와 〈말〉지 편집국에 방문해 ‘싸우는 기자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군사정권 시절 모든 미디어가 검열을 받았고 한국 저널리스트들이 억압당했지만, 사실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 격류처럼 분출해 ‘금지’를 깨뜨려 왔다고 보았다. 〈한겨레〉의 설립 과정과 자주 언론으로서의 사명, 초대 사장과의 인터뷰 등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었다. 한국에서 진실을 전하려 했던 기자들이 어느 시대든 있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부정 폭로도 기자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덧붙인다. 일본인 기자의 눈으로 볼 때 한국 기자들은 ‘저널리즘 의식이 빈곤한 일본 언론과 비교해’ 과감하게 싸우고 있는 셈이다.
초강대국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의지의 베트남
시민의 힘으로 원전도 미군기지도 몰아낸 필리핀
증오의 연쇄를 끊고 화해로 나아가는 스리랑카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지 80여 년이 지나도록 일본이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에게 초강대국 미국과 싸워 이긴 베트남 민중의 저항은 존경의 대상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의 여왕’이라 불리던 게릴라 대표 응우옌 티 빈을 만나 파리회의와 평화협정의 후기를 들었다. “우리에게는 정의가 있고, 전 국민이 하나 되어 구국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확신했다”는 거의 당당한 자신감과 신념을 전하며, 현재까지 이어지는 베트남 평화를 위한 활동을 소개했다. ‘붉은 나폴레옹’이라 불린 보 응우옌 잡 장군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여성 결사대’의 행보를 되짚으며 전쟁의 참상과 당시 베트남 민중의 굳은 결기, 현재까지 이어지는 반전 평화의 의지를 다뤘다.
“일본의 정치 현실을 보고 있으면 뭘 하든 원전도 군사기지도 없애지 못할 거라는 체념”에 관해 저자는 일본이 아닌 필리핀을 보며 비관에서 벗어나자고 말한다. ‘피플파워’로 독재정권을 쓰러뜨린 필리핀에 일본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시민의 힘’이 있다며 탈원전, 탈미군기지의 현장을 방문했다. 아시아 최대 미군기지였던 수비크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는 1992년 필리핀 국민의 힘으로 반환돼 현재는 산업단지로 번성하고 있다. 또한, 마르코스가 1976년 세운 바탄 원자력발전소는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진 후 폐로됐다. 필리핀의 지열발전 현장과 비핵필리핀연합을 방문한 저자는 여전히 원전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과 다른 점이 ‘시민의 자발적인 행동력’이라고 평가한다.
한편 스리랑카는 전후 일본에 알려지지 않은 막대한 공헌을 했다. 일본군의 폭격에 따른 손해배상 요구 권리가 있던 스리랑카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배상권을 포기하며 다른 나라도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후 대통령이 되는 자야와르데네의 “증오는 증오가 아닌 사랑으로 없애는 것”이라는 연설은 유명하다. 저자는 이를 위안부 문제나 강제동원 배상 문제 등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전후 처리와 비교하며 “부끄러운 어리석음”이라고 서술한다. 아울러 “중요한 것은 피해자 입장에서 그 존엄을 회복하는 것이다, 역사 앞에서는 겸허해야 한다”며 일본이 아시아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있다. 민족 간 갈등과 분쟁이 있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빠르게 부흥하며 무상교육, 무상의료, 여성의 사회적 지위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점과 더불어 홍차, 카레, 불교 등 스리랑카 고유의 문화도 소개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가라앉는, 나아가 ‘추락하는 일본’이 살 길을 찾으려면 아시아와 마주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네 나라에서 본 민중의 늠름한 모습이 일본 사회를 고무함과 더불어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가 자랑해온 모럴이 붕괴되고 있다.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일본은 더더욱 몰락할 것이다. 현세대만 힘들어지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자손들에게 살기 힘겨운 사회를 물려주게 된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 행동에 나서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을 아시아 사람들이 온몸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그들에게 겸허히 배움으로써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이웃 나라로서 빈부 격차, 저출생, 고용 불안 등 긴 정체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다시금 강건한 민중의 힘에 눈을 돌려 저력을 일깨울 계기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