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에마》를 쓴 제인 오스틴은 오늘날 영어권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소설가로 꼽힌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그녀는 이런 빛나는 평가와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기도 했다. 그다지 유복하지 않은 시골 목사의 막내딸로 태어나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고, 한 번도 가족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으며, 외국은커녕 잉글랜드 남부를 벗어난 적도 없이 모두 6편의 소설을 남기고 4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출판 이래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으며, 특히 1970년대부터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연극・영화・TV를 위해 매년 새로이 번안되었다. 제인 오스틴은 조용하고 짧은 삶을 살았고, 그 삶을 밝힐 자료는 많지 않다. 그런데도 이제까지 그녀에 관한 방대한 수의 전기가 나왔고, 지금도 어디선가 쓰이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이 식을 줄 모르는 인기는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별과 같은 존재
영국의 작가 J. K. 롤링은 오스틴을 일컬어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별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 바 있다. 작가들로부터는 존경과 선망을 받고 독자들에게는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제인 오스틴- 일반 독자에게 제인 오스틴 문학을 해설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쉬운 편이다. 제인 오스틴 문학의 평가는 그녀의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1813), 《이성과 감성》(1811), 《맨스필드 파크》(1814), 《에마》(1815), 《노생거 사원》(1817), 《설득》(1817) 등 6편으로 끝내고, 다른 작품은 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그중에서도 첫 두 작품에 의해 그녀의 작풍이 거의 결정되었다 해도 무리가 없다. 상황 설정부터 등장인물의 사회 조건, 작품 세계, 소설의 의도나 목적까지 거의 동일한 패턴을 따른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6편의 우열에 대해서도, 오스틴만큼 작품성의 격차가 적은 작가도 드물다. 세계문학 기준에서 《오만과 편견》이 그녀의 작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서 선택되는 것은 거의 결정된 평가로 봐도 좋지만, 《이성과 감성》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구성상의 무리를 빼면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또 《맨스필드 파크》를 그녀의 대표작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가볍고 밝은 것을 고르는 사람은 《에마》를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동시에 차분히 가라앉은 정서의 물결을 느끼고 싶은 독자는 마지막 작품 《설득》을 고른다. 이렇다 보니 어느 작품이 훌륭한가에 대한 평가는 이미 그 사람들의 취미에 달린 것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우열을 가리기 힘든 점도 제인 오스틴 문학만의 특징이다.
“나 말고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주인공”
1814년 1월 21일 오스틴은 가족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는 ‘나 말고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주인공을 만들어 낼 생각이에요.’라고 쓰여 있다. 그렇게 탄생한 인물이 바로 《에마 (Emma)》의 ‘에마 우드하우스’이다. 에마는 어떤 사람이기에 오스틴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주인공’이라 했을까? 에마는 혼자 남은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지방 상류층 우드하우스 집안의 두 딸 가운데 막내딸이다. 에마의 언니는 일찌감치 결혼해서 런던에 살고 있고, 어머니이자 친구와 같았던 가정교사 테일러 양마저 결혼을 하면서 동성의 친구가 없었던 에마에게 해리엇 스미스라는 어린 여성이 새로운 친구로서 등장하게 된다. 본인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연애사에는 참견을 잘하는 에마는, 해리엇의 짝으로 그 교구의 목사인 엘턴 씨를 골라 그들의 결혼을 성사시키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엉뚱하게도 그의 마음이 자신에게 향한 것을 알고 그런 일로부터 거리를 두기로 한다. 그런 와중에 테일러 양이 결혼한 웨스턴 씨의 전처에게서 태어난 프랭크 처칠이 부모님을 방문한다는 이유로 에마가 살고 있는 하이버리에 등장해 에마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타인의 연애에 이러쿵저러쿵 참견하기 좋아하기에 누구도 쉽게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에마를 창조한 제인 오스틴 자신은 가장 사랑했던 캐릭터로, 에마 우드하우스는 온갖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찾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로맨스의 왕도로서 작품 탄생 이후 몇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뜨거운 사랑을 받는 비결이 되고 있다.
“나는 명예를 위해 쓴다”
제인은 작품을 출판하려고 마음먹기 훨씬 전인 1796년 1월 14일, 언니인 카산드라에게 농담 삼아 이렇게 편지한다. ‘언니가 편지로 칭찬해 주어서 매우 기분이 좋았어. 돈이나 보수를 생각하지 않고 명예를 위해서만 쓰려고 해.’ 오스틴은 보수를 생각지 않고 글을 쓴다고 했지만, 그녀의 작품은 초판 이후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다. 그래서 돈보다 명예를 택한 것이 도리어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한 것은 아닐까. 그녀의 소설을 처음 읽으면 평범한 젊은 남녀가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의 소중함이 그녀 소설의 영원한 인기 비결이다. 제인의 소설을 두 번 세 번 읽다 보면 그 문학적 기법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인물들의 대사나 작가의 생각이 교묘하게 섞여 인물들이 마치 작품 속에서 살아 있는 듯 움직이고, 이러한 기법에서 변덕스러운 인간성에 대한 오스틴 특유의 깊은 이해가 분명히 나타난다. 그녀의 천재적인 독창성에 대해, 첫 독자 중 한 사람인 조카딸 파니 나이트가 보낸 편지에 쓴 것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에마》를 빌려 주어 정말 고마워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는 다른 작품보다 마음에 들어요. 등장인물 모두가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다 하고 있어요…… 전 이런 귀한 보물을 만나 기뻐서 죽을 것만 같아요! 등장인물은 독특하고, 더구나 글과 말로 다하지 못할 만큼 재미있어요. 다른 어느 누구도 이만큼 명쾌하고 기분 좋게 쓰지는 못할 거예요.’
에마, 제인 오스틴 문학 절정기에 탄생하다!
《에마》는 오스틴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결혼 희극이다. 작품 속 남녀들이 이런저런 오해로 인한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결혼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의 구조는 제인 오스틴 문학의 전형을 따른다. 장면도 거의 영국시골 마을로 한정되어 있어서 기껏해야 몇몇 가족 간의 인적 교섭을 중심으로 사건이라 하면 프랭크 처칠과 제인 페어팩스 사이의 비밀 약혼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나 제인 오스틴에게는 이것으로 충분하며, 또 그것으로 좋은 문학작품이 탄생할 수 없다는 논리는 절대로 없다. 작가 자신이 그녀의 편지 속에서도 썼듯이, “시골에 서너 가족이 모이면, 그것으로도 이미 소설에는 안성맞춤인 재료”라는 것이다. 사실 작가가 그려내는 여주인공들은 황량한 “미국의 강을 혼자서 배로 표류하는 일이 결코 없다”고, 당시에 소설가 월터 스콧이 이미 격찬했듯이, “그녀는 일상생활에 얼마든지 있는 복잡한 사태, 감정, 인물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놀랄 만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이다.
삶의 미묘한 이면을 포착하는 섬세한 필치
제인 오스틴의 집필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제인이 결코 서재에서 글을 쓰는 직업작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항상 작은 종이를 가지고 다니다가, 집안일이나 바느질을 하면서 뭔가 떠오르면 부지런히 쓴다. 그리고 사람이 기척이라도 내고 나타나면 당황하여 숨긴다. 종이가 작은 것도 숨기기에 편하기 때문이라고까지 한다. 이런 방법으로 제인은 그녀 자신의 눈으로 예리하게 관찰할 수 있었던 만큼 남김없이 볼 수 있었다. 이로부터 태어난 것이 사실적 기법이었다. 또 다른 매력은, 작가가 등장인물을 대하는 태도이다. 오스틴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약점이나 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결점으로 인해 수많은 착각과 희비극이 일어나고, 또 등장인물 대부분이 실로 이기적이고, 경박하고, 지레짐작하거나 하는 일로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다. 게다가 이러한 인간의 약점을 그녀는 결코 화내거나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서 관용의 마음으로 품는다.
재치 넘치는 위트와 은은한 유머
또한 작가가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가벼운 풍자의 웃음으로 이러한 장면들을 그려내고 있는 점에서 쾌활한 유머가 넘친다. 물론 결점은 결점이므로 비난하지만, 그 풍자에는 자연히 유머가 깃들어 있다. 그 대상은 우선 허영심과 자만심이다. 여기서 놓쳐서 안 되는 것은 오스틴 자신이 호의와 애정을 쏟고 있는 인물조차 그녀는 결코 완벽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다운 결점을 가지고 있는 좋은 예가 에마 우드하우스이다. 특히 에마는 작가 자신이, 자기 빼고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인물을 그려보겠다면서 만들어낸 인물인 만큼, 인간적 결점이 두드러진다. 사회적 지위나 재력, 지성과 미모 면에서는 결점이 없어 보이지만, 자신의 판단력을 과신한 탓에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의 감정은 물론 자신의 본심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하여 그런 자신의 허영심과 자만심을 극복하기까지 시련을 맞아야만 했다. 전체로서의 인간을 비추고,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용서하는 유머가 있다. 이것이 제인 오스틴 문학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젠트리 계층의 사교과 결혼을 중심으로 당대 사회를 생생히 그리다
제인 오스틴의 문학은 오늘의 눈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적 사상의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이 소설에서 에마를 비롯해, 누구나 생각하는 어떤 엄중한 사회적 신분 차이의 관념도 조금은 낯설다. 변호사나 농부라는 직업이 업신여겨지는 것도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18세기 영국사회에서는 엄연히 존재했던 사실로서 리얼리즘적 가치를 지닌다. 다만 그 안에서도, 소위 비슷한 상류 계급에 속한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진심이 통하는 사람들과 비록 제한적이나마 어떤 종류의 믿음과 우정의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것이 이 작품이 지닌 나름의 장점이다. 영국의 작가 서머싯 몸은 제인 오스틴을 이렇게 말했다. “어느 작품에도 이것과 같은 커다란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 페이지를 다 읽자,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지 하고 서둘러 페이지를 넘긴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겨도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것이다. 독자가 이렇게 하도록 만드는 힘을 가진 것은 소설가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재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