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썰의 전당’ 유홍준 교수와 함께 걷는 망우역사문화공원 답사에서
BTS RM 애정하는 조각가 권진규의 삶 소개
2023년 3월 KBS 공영방송 50주년 기념 ‘예썰의 전당’ 프로그램에서는 유홍준 교수와 함께 ‘기억을 걷는 시간-망우역사문화공원’편을 방송했다. 방송에서는 특히 우리나라 근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잊힌 예술가 가운데 비극적인 생을 마치고 망우리공원에서 친구가 된 두 천재 예술가 ‘이인성’과 ‘권진규’를 소개했다.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한국의 고갱’ 이인성은 24살 어린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는 등 온갖 상을 휩쓸었고, 고향 대구에는 “달리기는 손기정, 춤은 최승희, 그림은 이인성”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아이콘이었다. 〈지원의 얼굴〉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조각가 권진규는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교 개교 80주년 기념으로 “졸업생 중 가장 예술적으로 성공한 작가”를 선정해 회고전을 열었을 때 그 주인공으로 선정될 정도로 우리 근대미술의 선구자였다. 방송에서는 방탄소년단의 RM 역시 권진규의 〈말〉이라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내용도 소개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천재적인 두 예술가는 당시의 명성과 달리 현재 우리에게 낯설다. 어떤 이유로 그들의 명성은 이어지지 않았을까.
한편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이자, 살아서도 죽어서도 단짝이었던 두 예술가가 있다. 바로 ‘방정환’과 ‘강소천’이다. 방정환은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최초의 아동잡지 《어린이》를 발간하는 등 어린이의 인권 신장에 힘썼던 인물이고, 비교적 생소한 이름의 강소천은 〈코끼리 아저씨〉, 〈스승의 은혜〉 등 수많은 동요의 작사자로서 ‘어린이헌장’을 만든 인물이다. 방송에서는 살아생전에는 어린이를 위해 평생을 바치고, 죽어서는 망우리공원에 함께 묻힌 아동문학의 선구자 두 분, 그들에 얽힌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흙”이 되어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든 일본인이 있다. 유홍준 교수가 꼭 소개하고 싶은 특별한 분으로 언급한 묘는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라는 묘비명과 묘 옆에 팔각백자항아리 조각이 있는 특이한 묘였다. 이 무덤의 주인공인 일본인이 망우리공원에 잠들게 된 사연도 흥미를 자아냈다.
책에서는 방송에서 소개된 인물들의 삶과 사랑, 죽음과 관련된 더 자세한 내용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 독립운동가를 만나볼 수 있다.
망우인물열전의 완결판에서 새롭게 소개하는 내용과 인물
하나, ‘시를 남기고 가을 속으로 떠난 ‘목마’의 시인 박인환 관련 사진 추가
망우리공원에는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소설가 계용묵, 조각가 권진규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다. 특히 박인환 시인은 추모객이 많이 찾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유족의 참석하에 해마다 추모제를 지내고 고인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헌신, 사랑을 되새긴다. 새로 펴낸 이번 개정판에는 박인환 시인이 책방 마리서사를 열었을 무렵 책방 앞에서 임호권 시인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실었다. 임호권 시인은 해방기에 박인환과 함께 모더니즘 시 운동을 전개한 문인이다. 또한 1950년대 명동 휘가로 다방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도 추가했다. ‘휘가로’는 조병화, 김수영, 박태진, 김광주, 전봉래 등 당시 문인들이 애환과 낭만을 나눴던 다방이다.
둘, 1930년 조선어학회의 맞춤법통일안 작성위원 18명 중 3명(신명균, 박현식, 이탁)
신명균은 조선어학회의 중심인물로서 스승 주시경의 사망 후 대종교에 입교했다가 시인 조지훈에 따르면 교주 나철의 사진을 품은 채 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글의 보급과 연구에 많은 일을 했음에도 가족의 월북 등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고, 망우리공원에서도 파손된 비석만 남아 있어 비석만으로는 고인이 누군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소설가이자 법학자, 교육자였던 유진오의 회고록에 따르면, 박현식은 재동공립보통학교 교사로서 유진오에게 한글 철자법의 기본을 가르쳤다. 한편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이력도 있는 이탁은 해방 이후 1961년까지 서울대 사법대학에서 국어학을 가르친 인물이다.
셋, 애기똥풀, 금낭화, 바람꽃 등 식물에 우리말 이름을 붙인, 한국 식물학의 선구자 장형두
일제 강점기 우리 고유식물의 학명은 일본이 독점하다시피 지었다. 장형두는 일본인 중심의 조선박물학회와 별도로 조선박물연구회를 조직하고 주체적인 연구에 나서서 우리의 동식물에 우리말 이름을 붙인 인물이다. 애기똥풀, 금낭화, 바람꽃, 괴불주머니 등이 그가 새로 명명한 이름이다. 1936년에는 조선일보의 백두산탐험단에 식물학자로 참여해 새로운 종을 채집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방 후 서울사대 식물과 교수로 재직할 때 어이없게도 좌익 혐의로 고문치사를 당했다.
넷, 우리나라 제2대 관상대장, 국내 최초 기상학 박사 국채표
2022년 6월 16일 조선일보의 기사 헤드라인은 “태풍 진로 정확도, 처음으로 미, 일 제쳤어요”였다. ‘72시간 태풍 진로 예보 오차’에서 우리나라가 미국과 일본을 제쳤다는 내용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기상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한 우리나라의 기반을 만든 선구자 국채표가 망우리 가족묘에 부모와 함께 있다. 1963년 12월 19일 한국기상학회를 발족해 회장에 취임하고 1964년 7월에는 「한국에 올 가능성이 있는 태풍의 중심시도와 진로의 예보법」이라는 논문으로 교토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상학으로는 국내 최초의 박사였다. 그가 논문에서 제시한 ‘국(鞠)의 방법(Kook’s Method)’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당시 기상예보에 활용되었다. 앞서 언급한 ‘미 ·일을 제친 태풍 진로 예측’이라는 성과의 근원에 국채표가 있는 것이다.
다섯, 조선말 외교의 중추적 인물이자 한성판윤에 5회 제수된 역관 변원규
은둔의 나라 조선에 19세기 이후 외국의 문물을 소개하며 나라를 개화의 방향으로 이끈 주역 가운데 외교 현장에서 활약한 역관들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망우리에 있는 변원규는 5회나 한성판윤을 제수받을 정도로 조선말 외교의 중추적 인물로서 두터운 인맥을 활용해 청나라와의 외교에서 크게 활약했고 시와 글씨에도 능했다. 1883년 7월에 체결된 조일통상장정의 기념연회도에서는 김옥균의 옆 좌석에 앉아 있을 정도의 위상을 가진 인물이었다. 관련된 일화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많은 그였지만 전근대적 신분사회에서는 몸을 낮추어 살아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