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랜의 증가, 괴물의 대응력, 조직적인 공격에 저 영화 개봉까지.
여기에 지적인 배후가 있다면? 난 있다고 믿거든.
그러면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야.”
뛰어난 기교로 당대 비평과 흥행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던 무성영화 「국가의 탄생」은 남북전쟁 시기에 결성된 1세대 클랜 일원이었던 노예주의 아들 토머스 딕슨이 쓴 백인우월주의 사상의 저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링 샤우트』는 이 영화에 사악한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으며 증오를 전파하는 매개체라는 도발적인 상상력을 선보이며, 쿠 클럭스 클랜에 소속된 자들 역시 흑마술 의식을 통해 이 세상에 온 이 세계로 소환된 괴물 ‘쿠 클럭스’과 이들을 추종하는 인간들인 ‘클랜’으로 구분하여 그려 낸다.
쿠 클럭스는 평소에는 인간들 사이에 위장한 채로 숨어 지내지만 이들의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이들이 몇몇 있었으니, 주인공 마리즈 부드로가 그중 한 사람이다. 2세대 클랜이 결성된 해에 쿠 클럭스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던 마리즈는, 겉으로는 농장을 운영하지만 사실은 마법의 힘이 깃든 밀주를 유통하는 저항 세력의 주축인 진 할머니의 부름을 듣고 조지아주 메이컨을 거점을 옮겨 괴물 사냥꾼으로 성장해 왔다. 7년이 흘러 「국가의 탄생」이 재개봉 소식이 들려오는 1922년. 마리즈는 남장을 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돌아온 코델리아와 뛰어난 저격수 세이디와 함께, 독립기념일을 맞아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려던 쿠 클럭스 클랜과 맞선다. 그러나 성공적인 소탕 작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즈의 꿈에 ‘도살자 클라이드’라 자칭하는 남성이 등장하며 곧 닥쳐올 폭풍을 예고한다.
증오에 맞서 생존과 자유를 부르짖는 외침
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종교 문화나 블루스와 재즈 같은 음악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링 샤우트(Ring Shout)는 노래와 외침을 곁들여 단체로 발을 구르며 원을 형성해 춤추는 전통 의식이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미국 남부 노예들의 숭배 행위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그 내용은 순수하게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기보다 먼 과거의 아프리카 대륙 시절의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작가는 구전과 관습으로 전해지며 공동체를 단단하게 결속시켰던 이 문화를 작품 속에서 증오에 맞서는 원동력으로 묘사한다. 거기에 더해 아프리카의 민담과 전설 속의 존재들을 소환해 풍부한 상상력을 곁들인다. 추장과 왕의 영혼이 속박된 고대의 힘이 깃든 검을 주인공에게 선사하는 영령들, 밤이면 노예들을 잡아가 해부한다고 알려진 민담 속 유령인 줄 알았지만 사실 무한한 힘을 지닌 신적 존재 등이 영웅과 괴물이 대립하는 스릴 넘치는 전개 속에 녹아들어 서사를 풍성하게 한다. 경장편 분량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고 나면 새로운 시각의 역사 강의를 한 편 본 듯한 성취감을, 그리고 주류 문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역사와 존재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샤우트 의식은 노예제 시절에 생긴 관습이다. 하지만 윌 아저씨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보다 더 역사가 오래되었는지도 모른다. (...) 윌 아저씨는 이런 샤우트에 가장 큰 힘이 있다고 한다. 노예 시절에서 살아남고, 자유를 위해 기도하고, 그 악행을 끝내 달라고 하느님을 부르는 샤우트에.
내 검이 유령처럼 희미하게 손에 나타나는 게 느껴진다. 절반은 이 세상에, 절반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머릿속의 노래가 시작되고 여러 추장과 왕이 울부짖는 가운데, 그들이 팔아먹은 자들이 나뭇잎 모양의 검에 밀려들고, 과거의 신들이 깨어나 샤우트에 맞추어 몸을 흔든다.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