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라는 것이 어찌 권문세가의 귀족들과 사대부의 전유물이란 말인가. 백성이 글을 알고, 글을 써서 할 말을 전달할 줄 안다면 이 세상이 더욱 나아지지 않겠는가.”
이 소설은 이방원과 업동이의 신분을 뛰어넘은 지란지교로 시작한다. 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업동이에게 글을 가르쳐준 방원. 업동이는 종놈 주제에 글을 읽을 줄 알고, 게다가 “종놈은 백성이 아니옵니까? 귀한 백성이 글을 익혀 천리와 인도(人道)를 안다면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까?”라고 항변하다가 입안을 벌겋게 달군 숯으로 지지는 고문을 받아 벙어리가 되고 만다.
이를 본 방원은 ‘글이라는 것이 어찌 권문세가의 귀족들과 사대부의 전유물이란 말인가. 백성이 글을 알고, 글을 써서 할 말을 전달할 줄 안다면 이 세상이 더욱 나아지지 않겠는가. 그것이 인(仁)을 이루는 길이지 않겠는가. 배움의 기쁨이 어찌 신분의 굴레에 갇힐 수 있단 말인가’ 통탄하며 분노한다.
소설은 그 뒤 유랑걸식하다 동래현 관노가 된 업동이가 관비 매향과의 사이에 아들 영실을 낳고, 세상이 바뀌어 이방원이 임금의 자리에 오른 후 막역지우였던 업동이와 감격의 재회를 하는 등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방원은 업동이와 영실이 주고받는 수어(手語)를 보고 예전에 업동이에게 우리 글자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 일을 떠올리며, 영실에게 수어의 원리를 정리해 올리라고 명한다. 한글 창제의 아이디어를 수어와 연결지은 작가의 상상력이 흥미롭다.
세자 시절부터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영실과 함께 비밀리에 조선의 글자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이도는 마침내 28개의 자모로 정리하고, 글자 이름을 ‘정음’이라 한다. 양반 사대부들은 거세게 반대하며 저항하지만 정음이 내외명부에서 공식 문자로 자리 잡자,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배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후 정음은 아녀자 상언(上言) 사건, 정음 연서 사건, 사대문 안 정음 벽서 사건 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피바람을 몰고 오기도 하지만 백성들 사이에 정음 열풍이 불면서 조금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 조선의 새 역사!
역사에 가정법은 없다고 하지만, 사대에 찌든 기득권층의 반발로 한글 보급 속도가 그렇게 지지부진하지 않았더라면, 그리하여 백성들의 의식이 더 일찍 깨고 신분 질서와 폐습이 일찍 혁파되었더라면 우리 근대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 조선의 새 역사가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