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장끼전
장끼전은 대부분의 고전 소설이 그랬듯이 처음에는 〈장끼타령〉 〈자치가〉 등의 이름으로 판소리로 불리었습니다. 판소리 열두 마당에 들어갈 정도로 널리 유행했으나, 조선 후기 신재효에 의해 판소리가 여섯 마당으로 정리될 때 빠지면서 판소리로서의 〈장끼타령〉은 서서히 사라지고 소설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장끼전은 숨이 끊어지는 절박한 순간조차 웃음으로 여유를 보이는 우리 민족의 웅숭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고전 소설의 하나로, 익살스러운 풍자와 해학이 가득합니다. 이 책은 사람 이름과 지역 이름, 말투 등을 원문의 내용에 맞게 살려두면서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시 쓴 것입니다.
고전을 옛날에 쓰인 그대로 읽으며 그 맛과 멋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러려면 여러 가지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은 어린이들이 비교적 편안히 읽으면서도 고전의 넉넉한 재미와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을 느낄 수 있도록 문장을 정성껏 다듬었습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해 한 걸음 앞서간 결말
장끼전은 〈화충전〉 〈자치가〉 등의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여느 고전 소설처럼 여러 이본이 있습니다. 전체의 내용은 비슷한데 결말 부분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기본 줄거리로는 까투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콩 한 쪽을 먹으려다 장끼가 죽고 마는데, 이야기가 거기에서 끝이 나거나 아니면 과부가 된 까투리가 재혼하여 잘 사는 얘기까지 이어지거나 합니다.
‘남존여비’의 유교 도덕을 중시하던 조선 시대에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아 목숨을 잃는다는 설정은 상식을 깨뜨리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까투리의 재혼까지 이끌어간 것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생각이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좀더 폭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추운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 온 들판을 헤매다가 콩 한 쪽 때문에 목숨을 잃는 장끼의 모습에서 조선 시대 후기에 먹고 살기 힘들어 떠돌며 유랑하던 우리 선조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에 어울리는 목판화
이 책의 그림은 목판화입니다. 목판화는 목판에 그림을 칼로 파서 새긴 후 먹을 묻혀 찍어낸 그림입니다. 그래서 다른 그림과 달리 몇 가지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목판에 새길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좌우로 뒤집어서 목판에 옮겨 그립니다. 목판으로 찍는 그림은 좌우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가 흔히 쓰는 먹지로는 그림이 목판에 잘 옮겨지지 않기 때문에 크레파스를 칠해 만든 먹지를 씁니다. 이것은 오랫동안 목판화 작업을 해온, 이 책의 작가인 이동진 선생님이 개발한 방법이랍니다. 그런 다음 그림을 칼로 새기고, 목판에 먹물을 칠해 그림을 찍습니다. 목판을 찍는 종이는 우리 나라 장지(두껍고 질긴 한지)를 씁니다. 그림을 그리는 화선지는 너무 얇아 먹물을 먹으면 쉽게 찢어질 수 있답니다.
목판화는 그림을 목판에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찍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름으로 된 잉크를 롤러로 칠해 ‘프레스’라는 기계로 찍는 서양의 판화와 달리 우리 판화는 목판에 먹물을 칠해서 손으로 문질러 줍니다. 힘이 골고루 들어가야 나뭇결이 살아나고 목판화에서 느낄 수 있는 나무의 생명력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목판화는 섬세한 표현을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에는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속뜻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다른 데 빗대어 이야기하는 우리 옛이야기와 잘 어우러지는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끼전의 해학과 풍자를 목판화와 함께라면 좀더 색다르게 느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