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유동하는 가능성이다!
고착된 이름-자리 예속을 거부한다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주체, 무위인
『무위인-되기』의 첫 번째 글 「무위인-되기」에서는 이정우가 이전 저작들에서 몇 번 언급했던 ‘무위인(無位人)’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전통적인 주-술 구조에 입각해 인간의 현실적 모습을 ‘술어적 주체’로 개념화하였는데, 즉 “철수는 남자다” “영희는 의사다”와 같이 정의할 때, 한 주체는 그 술어들의 집합체다. 그러나 술어적 주체는 고착화되지 않는다. 생성존재론의 관점에서 세계의 본질은 차이생성(differentiation)이다. 때문에 주체는 차이생성의 흐름에서 변해 가면서 자신의 동적인 동일성(identity) 즉 정체성을 계속 수정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자기차이성’으로서의 주체며, 주체는 인식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만들어 나간다. 이 과정은 곧 ‘타자-되기(becoming-other)’의 과정이며, 주체는 이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를 무위인으로, 즉 고착된 이름-자리[位]에 예속되기를 거부하는 주체로서 만들어갈 수 있다.
특히 이 저작은 ‘내재적 가능세계론’과 ‘타자-되기’ 개념을 통해서 무위인 개념을 존재론과 윤리학의 문제로 잇고 있다. 기존의 가능세계론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내재적 가능세계론은 『접힘과 펼침』에서 던졌던 “라이프니츠가 신과 인간 사이에 놓았던 관계를 인간과 기계 사이에 놓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에 이어 “라이프니츠의 가능세계론을 내재적 지평에서 재구성하면 어떤 가능세계론이 될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 대답으로서 제시한 내재적 가능세계론이 무위인 개념의 존재론적 배경을 이룬다.
인간 주체 고유의 모습은
주체-되기를 행하는 주체이다
「‘이-것’-되기로서의 주체-화」에서는 스스로를 무위인으로서 만들어 나가는 주체란 곧 자신을 ‘하이케이타스’(이-것)으로서 되어-가는 주체임을 논한다. 이런 주체화는 예속된 주체화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체-되기(주체-화)를 행하는 주체다. 이 글은 특히 최근에 유행하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비판하면서 주체-화해 가는 인간 주체 고유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이런 주체 개념을 뒷받침해 줄 존재론, ‘세계’론으로서 제시된 것이 「내재적 가능세계론을 향해」이다. 기존의 가능세계론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보고 이것과 불공가능한(incompossible) 무수한 세계들을 논하는 데 비해, 내재적 가능세계론은 이 세계를 유일한 세계로 상정하고서 그 안에서 여러 세계들을 논한다. 이 내재적 가능세계론에서 세계들 사이의 교차는 중요한 의미를 띠며, 바로 그 교차로에서 살아가는 주체가 무위인이다. 이 점에서 이 글은 무위인-되기로서의 주체론을 뒷받침하는 존재론/세계론을 제공한다.
이어지는 「우연의 존재론에서 타자-되기의 윤리학으로」, 「도(道)의 지도리에 서다」는 위의 논의를 보충하며, 특히 ‘타자-되기의 윤리학’을 통해서 무위인-되기로서의 주체론과 내재적 가능세계론으로서의 존재론을 잇는 윤리학을 제시한다. 주체론과 세계론 그리고 윤리학을 연결해 읽음으로써 논의의 전체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사건의 시간으로서의 시간, 그리고
철학자 최한기 이후의 한국 역사와 사상
『무위인-되기』 2부에서는 시간론을 다룬다. 여기에서 다뤄지는 시간론은 흐르는 시간으로서의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흐르지 않는 시간, 사건의 시간으로서의 ‘아이온의 시간’이다. 논의의 출발점은 12세기 가마쿠라 바후쿠의 승려인 도겐(道元)이며, 그의 시간론을 니시다 기타로, 오모리 쇼조, 그리고 들뢰즈로 잇는다. 도겐에게서 아이온의 시간을 읽어 내고, 그것을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 연결시켜 논한 후, 니시다 기타로, 오모리 쇼조, 들뢰즈에게서 크로노스의 시간과 아이온의 시간을 논한다.
3부의 글들은 구한말의 위대한 한국 철학자 최한기를 시작으로 이후 전개된 한국의 역사와 사상을 염두에 두고서 철학자 이정우가 여러 방면의 주체들과 나눈 대화들이다. 한국에서 대안공간이 가지는 의미,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상황들이 그것이다. 건축 전문가 정인하 교수와 대담은 오늘날 건축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하여 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