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럽에서 과학이 탄생했는가
서구 근대과학 탄생사 시리즈의 완결편, 마지막 제3권 발간
16세기는 소위 ‘14~15세기의 르네상스’와 ‘17세기의 과학혁명’에 끼인 골짜기처럼 여겨지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문화혁명’이라고 불러야 할 지식 세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는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한 점이다. 대학의 아카데미즘과 거리가 멀고 문자문화의 세계에서 소외되었던 직인(職人)과 기술자, 예술가나 외과의, 상인이나 뱃사람들이 생산·유통이나 각종 직업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습득하고 축적한 경험 지식이 자연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유효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까지 대학에서 가르치던 중세 스콜라학에 대치하는 것이었으며, 고대 문예의 부활을 통해 인간성의 회복을 추구했던 후기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운동마저도 뛰어넘는 새로운 지식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원제: 世界の見方の転換, 2014)은 『과학의 탄생』, 『16세기 문화혁명』의 저자이자, 일본 차세대 노벨상 수상자로 불리는 거장 야마모토 요시타카(山本義隆)가 쓴 서구 근대과학 탄생사 3부작 중 완결편인 마지막 제3부이다. 참고로, 『과학의 탄생』(원제: 磁力と重力の発見, 2003)은 국내에 2005년에 번역·출간되었고, 『16세기 문화혁명』(원제: 一六世紀文化革命,2007)은 2010년에 번역·출간되었다.
책은 15세기 중기부터 17세기까지, 북방의 인문주의 운동과 종교개혁을 배경으로 하여 중부 유럽을 무대로 한 세기 반에 걸쳐 전개된 천문학과 지리학, 즉 ‘세계 인식의 부활과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저자의 전작인 『16세기 문화혁명』을 보완하는 의미로, 16세기 문화혁명과 나란히 진행됐던 천문학 개혁의 전말을 추적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는다. 왜 그리고 어떻게 서구 근대에서 과학이 탄생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탐색은,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역작들인 『과학의 탄생』, 『16세기 문화혁명』과 함께 3부작을 이루는 이 책으로 완결된다.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은 세 권으로 분권되어, 2019년에 제1권, 2022년에 제2권이 번역·출간된 후 2023년 6월에 마지막 제3권이 출간되었다.
『과학의 탄생』, 『16세기 문화혁명』의 저자
거장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누구인가
저자는 총 3부작의 긴 여정을 통해 서구에서 과학이 탄생한 과정을 풍요롭게 그려냈다. 저자가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근대과학사 3부작을 저술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의 독특한 이력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941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과학사가, 자연철학자, 교육자이자 전 도쿄대 전공투(全共鬪) 의장이었다. 안보투쟁이 한창이던 1960년에 도쿄대학교에 진학하여, 베트남반전회의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도쿄대 전공투 의장을 맡아 도쿄대 투쟁을 이끌었던 것으로 아주 유명하다. 1969년 야스다 강당 공방전에 앞서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아 지하에 잠복했으나, 같은 해 9월 히비야공원에서 열린 전국 전공투연합결성대회에서 체포되었다.
1960년대의 급격한 경제 발전과 함께 정치·사회적으로 요동치는 상황을 직접 체험한 저자는 ‘일본 사회가 사실 근대화를 경험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었고, 과학도 출신인 만큼 이와 관련해 ‘왜 유럽에서 과학이 탄생했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재야 학자로서 그가 걸어온 연구의 발자취로 이어져, 1970년대에는 주로 물리학과 철학에 관련된 번역서, 1980년대부터 2010년 초반까지는 과학사 연구서, 그리고 2010년대에는 근현대 일본 과학기술사회를 비판한 평론서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과학사가인 저자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에서 중요한 함의를 읽어내는 통찰력뿐만 아니라 각 시대에 등장한 이론 체계를 수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수학적·물리학적 지식을 겸비한다는 데 있다. 이 책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에서는 주제에 따라 두 요소의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내면서 이러한 장점이 특히 잘 드러난다. 15세기까지 사변적인 학문의 세계와 경험적인 기술의 세계는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 경험적인 기술의 세계는 육체적이고 천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이후 학자 집단과 직인이 서로 접근하면서 일어난 ‘16세기 문화혁명’을 통해 학문과 기술의 융화가 일어났으며, 이것이 17세기 과학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과학과 사회를 바라보는 기존의 여러 편견에서 벗어나, 학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뜻깊은 경험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생업을 병행하면서도 지킨 극한의 학문적 성실성, 과학과 사회에 관한 깊은 성찰과 시민의식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저자의 저술에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