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보다 루만?
니클라스 루만, 사회이론의 연구 대상을 전체 사회로 확장해 학제 간 융합을 시도하다
2016년 6월 20일부터 24일까지 5일간에 걸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치러진 ‘루만위크’에서는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법학, 신학, 불교학, 문학, 신문방송학, 역사학, 기호학, 여성학, 체육학, 인공지능 등 14개 분야에서 활동하던 자기준거적 체계이론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연구 주제를 중심으로 루만의 자기준거적 체계이론을 소개하는 대중 강연을 했다. 이 책은 ‘루만위크’에서 발표한 글들의 모음집이다.
루만은 독일의 사회학자로서 1998년 71세로 사망했으니 당대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루만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소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철학자인 하버마스와의 논쟁으로 잠깐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사회학 분야에서조차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루만은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이제까지 존재했던 주류의 모든 사회학 이론을 거부하고 전대미문의 이론을 제안했고, 그 이론이 소위 ‘사회체계이론’이다. 사회체계이론이라고는 하지만 사회에는 사람이 있고, 이 사람들이 사회에 대한 이론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어디까지 가능한지, 즉 인식론의 바닥까지 파고들어서 일관된 설명의 틀을 마련하고 법, 정치, 경제, 종교, 학문, 미디어, 예술, 문학, 교육, 조직, 도덕, 환경, 사랑 등 거의 모든 분야를 500여 편의 논문과 100여 권의 저서를 통해 다루고 있다.
필자는 과한 농담(?)으로 “지금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루만이 낫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으로부터 다른 많은 학문을 갈라서 시작을 했지만, 루만은 현재까지의 거의 모든 이론을 꿰어 연결했으니”라고 말하곤 한다. 또 다른 과한, 이런 농담도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루만에는 웬만한 건 다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의 소견으로는 루만은 가장 창의적인, 최고의 편집자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그 낱낱의 이론들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것들을 꿰어서 그런 구슬들로 이뤄진 목걸이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구슬을 다시 잘 다듬어서. _ 141쪽
루만의 체계이론이 개별 분과 과학들의 경계를 초월하는 초학제적 이론이라고 해서 모든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통합한 지식체계라는 뜻은 아니다. 루만의 사회이론은 사회에 대한 이론으로서 사회학에 속한다. 루만의 자기준거적 체계이론은 사회학이 태동기부터 안고 있던 이론적 딜레마들, 즉 거시와 미시의 관점 차이, 구조와 요소 작동(행위, 사건)의 관점 차이, 구조와 과정의 관점 차이, 합의와 갈등(이의)의 관점 차이 등에서 오는 딜레마를 동일한 유형의 작동들, 즉 소통체계 형성의 세 가지 분석 층위인 요소 층위와 과정(구조) 층위, 체계 층위로 구별함으로써 해결한다.
자기준거적 체계이론의 장점은 사회이론의 연구 대상을 전체 사회로 확장해 다른 과학 분야들과의 학제 간 융합을 활성화시키는 데 있다. 이런 학제 간 융합이 자기준거적 체계이론의 구상과 개념들에 기초해 어떤 과학 분야에서 지식의 융합을 통한 역동성을 추동해 낼지는 온전히 우리 후학들의 손에 달려 있다. 물론 자기준거적 체계이론은 기존의 접근법과는 다른 접근법을 통해 새로운 성과를 창출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에 다른 변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제 후학들의 과제는 기존의 사회학에서 다루던 주제들을 자기준거적 체계이론의 개념 도구와 기능적 분석을 결합시킨 설명 방식을 통해 새롭게 재구성해서 사회에 다른 변화 가능성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러한 재구성 작업은 노력한 만큼 한국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현상들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그를 통해 다른 변화 가능성을 열어낼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