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 수상,
2022 제9회 한국 SF어워드 대상을 수상한 최의택의 두 번째 장편소설,
배제되고 소외된 이들이 ‘가장 보통의 존재’로 살고자 애쓰는 가슴 벅찬 사이버펑크
“우리는 고유의 원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같은 원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전자가 그러하듯, 우리는 반응한다. 그것이 가장 보통의 존재인 우리가
특별해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최의택의 등장은 화려했다. 2021년,『슈뢰딩거 아이들』로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 같은 작품으로 2022년 SF어워드 장편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데뷔작에 담은 서사는 화려함과는 먼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기술을 통한 격리와 배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는 심사평에 걸맞게 소외된 존재들을 위한 서사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0과 1의 계절』에서 더욱 확고해졌다. 최의택은 그의 말대로 “이 소설을 쓰면서 처음으로 장애를 있는 그대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소설은 흰 눈과 혹한이 뒤덮인 지구, 자연적으로는 더는 아이가 태어날 수 없다고 여겨지는 땅에서 출산 장면을 지켜보는 주인공 ‘봄’이란 아이를 묘사하며 시작된다. 이 아이는 신성한 출산 현장을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도 부정이 탄다는 핀잔을 받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봄의 다리 한쪽이 의족이기 때문이다. 대체 지구엔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폭력적인 시선이 당연시될까?
어느 편에 설 것인가?
_ 평범한 이들이 특별해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을 말하다
핵겨울이 닥쳤다. 생존자들은 “밸리”라는 가상지구로 탈출했다. 신체를 버리고 0과 1의 조합만으로 존재하는 디지털 세계다. 이제 인류는 인공지능이 지구를 안전한 상태로 정화하면 의체를 입고 나들이를 올 예정이다.
그러나 지구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다. 첫 번째는 밸리가 관장하는 보육원 사람들, 두 번째는 그 보육원을 물리치고 원생들을 해방시키려는 몽유족 사람들이다. 소설은 몽유족의 ‘봄’이라는 아이와 보육원의 ‘현’이라는 아이가 만나 우정을 쌓아가고, 그들의 부모 세대가 각자의 신념에 따라 격돌하면서 숨 가쁘게 전개된다.
이에 더해 소설은 다리가 불편한 봄과 눈이 보이지 않는 현의 만남, 그로 인해 빚어지는 좌충우돌을 통해 양 조직의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면서 독자를 고민에 빠뜨린다. ‘나라면 보육원과 몽유족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여기에 족장과 원장, 밸리에서 온 사신 등 어른들의 사연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훨씬 입체적이 되고, 그 입체성에서 현이 봄에게 말한 “가장 보통의 존재인 우리가 특별해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전달된다.
존재감이 또렷한 캐릭터와 역동적인 전개가 주는 큰 재미
_ 소외된 이들이 ‘가장 보통의 존재’로 살고자 애쓰는 가슴 벅찬 사이버 펑크
재미있는 이야기의 관건은 캐릭터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캐릭터들은 독자에게 제 존재감을 또렷하게 내세워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부족의 걸림돌로 여겨져 매일 눈총을 받는데도 결코 굴하지 않는 ‘봄’, 모범적이고 명랑해서 보육원을 수석 졸업하리라 여겨졌으나 공황장애를 앓게 된 ‘현’. 이 대조적인 두 인물이 만나 전혀 다른 결의 문장으로 대화를 나눌 때마다 독자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특히, 핵겨울이라는 상황에서도 봄이 가는 곳마다 벌어지는 소란은 등장인물 전체를 움직이면서 소설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부모 세대도 못지않다. 몽유족장 ‘강희’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과격하기 그지없어서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한다. 보육원장 ‘우성’은 매사에 무의욕인데도 밸리의 사신과는 시종 갈등을 빚는다. 유능한 부원장 ‘유미’는 비밀을 숨긴 채 야심을 실현하려 한다. 냉소적인 밸리의 사신 ‘소연’은 자신이 보육원에 끌리는 이유도 모른 채 그곳의 관리를 맡는다. 개성적이지 않은 인물이 없다.
막힘없는 전개와 뛰어난 문장력도 소설의 재미를 책임지고 있다. 최의택의 문장은 정갈하면서도 유려하다. 단어 하나하나에 소설과 호응하는 의미를 숨겨두고 그 말들을 이음매 하나 보이지 않게 매끄러운 문장으로 엮어낸다. 그 문장들이 물 흐르듯 연결되면서 독자의 읽는 호흡도 함께 흐른다. 그에 반해 이야기 전개는 역동적이다. 쉬지 않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등장인물들 덕분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인물들이 처한 문제 상황을 지금 우리 현실에 자연스럽게 대입하게 된다는 점이다. 장애를 둘러싼 왜곡된 시선을 전면에 내세운 SF이면서 이야기의 재미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SF를 통해 장애를 다시 보고 제대로 보려”는 작가의 노력이, “처음으로 장애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자 한 작가의 의지가 독자의 삶에 닿아 큰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