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결말은
단단한 땅에, 함께, 무사히 닿는 것
소설은 두 인물의 서술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믿기지 않는 사고로 아빠를 떠나보낸 자매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첫 번째 주인공, 카미노는 의사가 되기를 꿈꾸지만 여성이 꿈을 좇기 쉽지 않은 도미니카에선 앞날이 막막하기만 하다. 함께 살지는 않았어도 매년 여름을 함께 보내던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금전적 지원마저 끊기게 된 상황이라면 더더욱. 카미노는 사랑하는 아빠를 잃은 슬픔과 학업을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여자애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동네 남자에 대한 두려움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채 바다 수영으로 마음을 달랜다. 두 번째 주인공, 야아이라는 미국 뉴욕에서 퀴어로 살아가며 청소년 체스 선수로 맹활약해 왔다. 그러나 어느 여름에 야아이라는 깨닫게 된다. 자신이 체스판 위에선 승부사이자 챔피언일지 몰라도 현실에선 폭력적인 상황을 무력하게 견뎌야 하는 여자아이에 불과하다는 걸. 기차에서 추행을 당하고 아빠가 도미니카에 또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된 날, 야아이라는 돌연 체스를 그만두고 아빠에게 영영 입을 닫아 버렸다. 아빠가 그렇게 세상을 떠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열여섯 살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배다른 자매지만 지금까지 서로의 존재조차 모른 채 살아왔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완전히 다른 궤적의 삶을 그려 온 두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도 무거운 상실감과 배신감, 그리고 현실의 가혹함이다.
“어떻게
한 사람을 통째로 잃었다가
한 조각을 되찾았는데
그게 난생처음 보는 조각일 수 있는 거지?” _(274쪽, 야아이라)
“어쩌면 그 아이는
지금 내 심정이 어떤지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일까?” _(213쪽, 카미노)
사랑하는 이가 늘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진실을, 어른들은 줄곧 숨겨 왔다. 가족의 맨얼굴을 마주하고, 쏟을 곳 없는 분노에 힘겨워하고, 끝끝내 용서하고 애도하고 나아가는 일들을 카미노와 야아이라는 조금씩 함께 해 나가기 시작한다.
“언니가
내 손을 꼭 잡았어.
나는 그 힘을 느끼며
언니의 손을 더욱 꼭 쥐었어.” _(370쪽, 야아이라)
“누군가의 언니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가슴에 막 새겨지기 시작한 이상한 감정이었다.
울며 슬퍼하는 동생이 가엾고 안쓰러운 마음.” _(367쪽, 카미노)
남겨진 이의 비통함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결국 남겨진 사람 곁에는 또 다른 남겨진 사람이 있음을 보여 주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누군가를 영영 잃어버리고 나서 회복이란 것이 과연 가능하다면, 그 회복은 아마도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아 가능한 것이리라고 이 소설은 말한다. 카미노의 이모와 카미노, 야아이라의 엄마와 야아이라. 한 남자의 외도로 묶이게 된 기구한 인연의 네 여성이 갈등의 골을 뛰어넘어 끝내 서로를 보듬고야 마는 장면이 묵직한 감동을 주는 것은, 그것이 어제의 죽음을 딛고 오늘의 삶을 지켜 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손과 손을 맞대고 삶을 맞댄 그들의 새로운 출발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 비행의 결말이 무사 착륙이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박수는
감사를 표하는 일.
어떤 결말이든
맞이할 수 있었음에도
하늘이나 바다가 아닌
단단한 땅에
함께
무사히 착륙한 데 감사를. 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