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역사의 나무에서 성장하고 익어가는 열매이기에
문명 기행은 역사를 따라가는 길에서의 체험이다.
‘여행’이라는 말이 마음에 던져질 때는 고유의 울림이 있다. 아마도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일 것이다. 평소 ‘집순이, 집돌이’를 자처하는 이들조차도 언젠가 한 번쯤은 훌쩍 떠나보겠노라고, 막연하게나마 꿈꿔보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은 목적지만큼이나 그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누군가는 권태로운 삶에서 벗어나 신선함을 찾기 위해 여행을 가고, 누군가는 동경하는 이의 자취를 좇기 위해 그의 고향을 찾으며, 누군가는 그저 ‘방랑’과 사랑에 빠져 부지런히 떠난다. 『파리, 런던으로 떠나는 서유럽 문명 기행』의 두 저자는 ‘서유럽 근대 문명’의 기록을 직접 감각하고자 여행길에 올랐다. 이렇듯 각자의 이유와 각자의 방식으로 시작되는 여행이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든 여행의 목적지는 ‘즐거움’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낭만’에서 ‘이성’까지
파리와 런던, “두 도시 이야기”
프랑스 대혁명 시기를 바탕으로 한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고
지혜의 시절인 동시에 어리석음의 시절이었다.
(...)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또한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며 내걸었지만, 그 끝은 지옥인 것도 같았다.”
그 찬란한 혼란의 시기가 펼쳐졌던 ‘두 도시’가 바로 파리와 런던이다.
이미『유럽에서 마주한 뒤섞인 문명』에서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와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을 탐방하며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을 살펴본 두 저자가, 이번에는 유럽 근대 문명의 역사를 찾아 프랑스와 영국을 방문했다. 아직까지도 명실상부 유럽을 대표하는 대도시인 파리와 런던은,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단지 ‘기념사진’ 속의 낭만적인 풍경이 아니다. 그들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귀족 문화의 폐단과 ‘우주 항공 시대’의 개막을 발견했고, 노트르담 성당에서 마녀사냥의 광기와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을 찾았다. 런던에서의 발자취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걸음을 따라가면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활약했던 ‘글로브 극장’에서 영국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의 갈등이 당대 연극 예술에 끼친 영향을 엿볼 수 있고, 런던 구 증권거래소와 영국은행이 위치한 ‘시티 오브 런던’에서 19세기 영국 사회의 금융업 성장의 역사와 그것이 견인한 혁신적인 ‘산업혁명’을 확인할 수 있다. 낭만과 예술, 치정과 애정의 이야기에서부터 혁명과 계몽, 정의와 투쟁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걷다 보면 어느새 ‘탐구적 여행’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문명 기행’이라는 말이 자칫 지루하고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걷고, 배우고, 말하는 것을 기꺼이 즐기는 두 저자의 친밀하고도 유쾌한 대화를 읽으며 그들의 시선과 나란히 할 때, 자칫 고루하게 들릴 수 있는 ‘문명’이나 ‘역사’는 한층 살갑게 거듭난다. 저자의 말대로, “세상에는 끝없는 미지의 세계가 존재한다.” 서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책이 그 미지의 길을 밝혀 당신을 “넓은 대양”으로 이끄는 반짝임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