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데이비드 호킨스, 아헹가, 해리 팔머, 라다소아미, 하트풀니스…
명상가이자 구도자 문진희가 평생에 걸쳐 만난 영적 스승과 성인에 대한 기록들
수없이 지나친 길에서조차 안내자가 없으면 우리는 종종 길을 잃는다. 하물며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을 걸을 땐 어떠하겠는가. 혼자 가지 말고 안내자와 함께 가야 한다. 영적 진화를 이 생의 목표로 삼은 문진희 박사는 길을 잃지 않도록,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붙잡아줄 안내자를 찾았다. 그녀의 삶은 ‘신’을 만나기 위해 떠난 여정 그 자체였다. 그녀는 스승을 찾았고 운명처럼 만났다. 가르침을 구했고 그들은 기꺼이 가진 것을 나누어주었다. 우리가 가진 잠재력의 마지막 단계까지 이를 수 있도록 믿음과 사랑으로 지지해주는 자비로운 분들이었다. 그분들의 은혜를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없어 망설였지만, 문진희 박사는 스승들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고자, 또한 같은 길을 걷는 구도자들에게 자신이 받은 시혜를 조금이라도 나누고자 한 권의 책 《신에 대한 명상》으로 엮었다.
불교 집안에서 자란 문진희 박사는 어머니 손을 잡고 경봉 스님을 뵈러 통도사로, 성철 스님을 뵈러 해인사를 찾곤 했다. 어느 날 ‘석 달만 절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 간곡히 부탁드려 머문 곳이 서옹 큰스님이 계시던 백양사였다. 조계종 종정 임기를 마치고 백양사에 내려오신 서옹 큰스님을 시봉하게 된 것에 대해 그녀는 ‘운명, 카르마’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불법이나 수행에 대해 아는 것 없던 시절에 《임제록》의 대가이자 원칙에 어긋남 없이 청정하신 서옹 큰스님을 석 달이 아닌 3년을 시봉했다.
1980년 인도 유학길에 오른 것도 서옹 큰스님의 제언이었다. 큰스님 곁에서 절밥을 3년이나 먹었으니 비구니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큰스님은 “비구니는 너의 길이 아니다. 인도에 가서 공부해라” 하셨다. 문 박사는 책에 썼다. “왜 비구니는 되지 말라 하셨을까? 그때는 몰라서 서운했지만 지금은 안다. 더 많은 생을 헤매지 말고 이생에서 마감해야 된다. 더 이상 새로운 집을 짓지 말고 환상에서 깨어나 새벽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 육신 안에 값진 보물이 있다는 걸 알고 정진해야 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녀는 인도 유학을 시작으로 많은 스승과 성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중 가장 깊고 긴 인연은 달라이 라마 승왕이었다. 이 책의 출간에 맞춰 달라이 라마 승왕은 추천의 글을 보내왔다.
“저는 문진희 박사를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습니다. 문진희 박사는 종교를 초월하여 지혜로운 이들을 공경하고 성인들의 가르침과 계율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노력해왔습니다. 30년이 넘도록 지켜본 그의 구도의 여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수행자인 그의 삶과 이 책이 우리와 같은 길을 걷는 이들에게 등불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인도 유학 시절 듣고 “어디에 가야 49재를 제일 잘 지낼 수 있습니까?” 묻고 물었고, 그 답으로 도달한 곳에 달라이 라마 승왕이 계셨다. 달라이 라마가 누구인지, 티베트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또 다람살라는 어디이며 임시정부라는 게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 시절 맺은 인연이 30여 년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달라이 라마 승왕을 처음 뵌 문진희 박사는 질문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엉엉 울기만 했다. 달라이 라마는 그녀가 우는 모습을 다 지켜보신 후, 녹음기에 말씀을 녹음해 전해주시곤, 다른 승려를 시켜 3박 4일이 되는 길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동행하게 하셨다. 울기만 했던 그녀가 받아 들고 온 테이프 안에는 영적 수행을 해나가는 길과 사후 세계에 대한 말씀이 들어 있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문진희는 책 속에 적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열광하게 했는지는 모른다. 나는 다시 달라이 라마가 계신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분의 법회가 열리는 곳은 무조건 따라다녔다. 유학도 요가도 ‘나’도 다 잊어버린 채 달라이 라마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티베트인들과 함께 따라다녔다. 그렇게 나는 험한 산속에서, 열차 안에서, 버스 안에서, 길거리에서 살았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카르마가 있다. 사람마다 카르마가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다. 태생적으로 영성 쪽으로 기울어 세상일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문진희 박사는 숱한 세월 언어와 사고의 한계를 깨닫고 시행착오가 이어졌지만 스승들의 은혜 덕분으로 서서히 영적 수행이 진보했다고 말한다.
“영성이란, 살아 있는 스승의 안내와 그에 따른 수행 없이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영성은 수행을 통해 내면의 세계를 깨닫는 것입니다.”
신께로 가는 길의 안내서!
“모든 시대마다 오시는 성인들은 내면으로 들어가 ‘신’을 만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승님들은 그 비밀을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신체라는 한계에 갇혀 있는 우리는 신에 대해 알 수가 없다.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는데 어떻게 영성의 길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 길이 실제로 우리 안에 존재하더라도 물리적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을 통해 추측할 뿐이다.
문진희 박사는 한국에서 서옹 큰스님과 설송 큰스님께 은혜를 입었고, 스승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는 위파나사의 큰 스승 고엔카, 아봐타 창시자 해리 팔머, 요가의 대스승 아헹가와 디렌드라 브라마차리, 아름다운 성자 라즈니쉬, 세상에서 가장 안정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여성 영성 지도자 다디 장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칭하이 무상사, 균형 잡힌 스승 구루마이, 서양에는 성인이 없다는 잘못된 오해를 불식시킨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 등께 영감과 가르침을 받았고, 라다소아미와 하트풀니스에 몸담아 수행하고 명상했다.
짧게는 몇 차례, 길게는 수십 년 이어져온 스승들과의 이야기는 종교를 초월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 크다. 기독교인들은 하늘에서 하느님을 보고, 불교인들은 남쪽에서 하느님을 보고, 무슬림은 서쪽에서 하느님을 보듯 그녀는 가슴 안에서 하느님을 보았다. 그녀는 말한다. “지성의 눈을 통해서는 신을 볼 수 없다. 신은 오직 영혼의 눈을 통해서만 보인다.”
영적 여정을 가는 인간에게는 두 가지 기회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인간의 몸을 받은 것이고, 두 번째는 완전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인간의 몸은 수백만 종의 삶의 진화를 거쳐서 받은 귀한 선물이고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그러기 위해 명상 수행으로 내면의 장막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 운명이라는 이 세상 잔치에서는 지성적인 것보다 감정적 위기를 다루는 법을 먼저 배워야 된다. 감정적 위기가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영적수행을 한다면 나같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본문 중에서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에 담긴 영적 정보와 지혜에는 한계가 없다. 신, 존재, 진리, 깨달음, 절대자, 신성… 무엇이라 부르든 그것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영성은 모든 것을 통합시킨다. 스승들의 가르침이 저마다 달라 보이는 것은 저마다 다른 문화와 역사적 배경의 반영일 뿐이다. 이 책에 추천의 글을 보낸 하트풀니스의 영적 지도자 다지(Daaji)는 문진희 박사를 만났을 때 “자신에게 길을 안내해준 모든 스승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감동”이었다고 말한다. 스승에 대한 끝없는 경외심과 감사함을 담은 이 책은 그분들을 만나 평화, 사랑, 행복 속에 살면서 그런 자질들을 내면에서 끌어내 바깥세상과 나눈다.
우리는 상처를 끌어안고 살 필요가 없다. 문 박사는 수행을 할수록 내면에 수많은 걸림돌들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았다. 그녀는 방을 치우듯이 마음의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고, 다시 쓸고 닦았다. 에고와 자만심으로 둘러싸인 자신을 보았다. 교만함과 오만함도 씻어냈다. 여러 스승들을 만나고 대학과 아쉬람 등을 찾아다니며 철학과 경전을 공부하면서 영적 수행 전통을 들여다보고 훈련했다. 경험 없이는 아무것도 건질 수 없기에. “아름다운 꽃다발이 꽃의 묶음인 것처럼 이 책은 경험의 모음”이라는 다지의 표현처럼, 이 책은 문진희 박사의 영적 경험의 모음집이다. 이 책은 진리가 있어도 진리에 이르는 길을 모르는 이들에게, 진리가 있어도 진리의 노예가 된 이들에게, 깊이 영적 수행을 하는 이들에게 부족함 없는 구도의 길과 신께 가는 길을 보여준다. 마음을 닦고 수행하는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