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문 크기부터 화단의 나무 한 그루까지,
집값에 매몰된 채 우리가 놓친
가장 한국적인 주거공간에 관한 과학 집들이
우리나라 사람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또 전체 주택의 3분의 2가 아파트다. 아파트는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주거공간이다. 국민 절반 이상이 거주하며 영혼을 끌어모아서라도 소유하고 싶은 아파트. 그런 아파트에 관해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집값에 관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아파트가 딛고 선 과학적 토대에 관해 질문하면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우리나라 아파트 수명이 왜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짧은지, 60억 원 넘는 초고가 아파트마저 왜 층간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 2000년대 초반 갑자기 우리나라에서 새집증후군이 대두한 이유가 무엇인지,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오른 아파트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작업자 6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등 수백, 수천 세대의 삶을 떠받치는 핵심 기둥은 ‘과학’이다.
아파트의 뼈와 살을 이루는 콘크리트에는 나노과학이, 건물 사이를 흐르는 바람에는 전산유체역학이, 열효율을 높이고 층간소음을 줄이는 벽과 바닥에는 재료공학이 숨어 있다. 오늘날 수많은 학문의 성취가 아파트에 담겨 있다. 과학의 시선으로 아파트를 구석구석 탐사하는 색다른 집들이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 성인 손바닥 넓이에 중형차 100대를 쌓아 올려도 버틸 수 있는 고강도 콘크리트를 만드는 원리는?
• ‘난방비 절약왕’을 윗집으로 둔 세대에 난방비 폭탄이 떨어진 이유는?
• 아파트는 어떻게 한국인의 평균 수명을 연장시켰을까?
• 한국인의 뿌리 깊은 남향 선호 때문에 점차 길쭉해지는 평면!?
•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아파트를 가르는 숫자, 1988!
• 아파트를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저렴하게 지으려면 ‘보(beam)’를 빼라!?
•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볼기짝을 맞대는 불온한 일을 조장하는 설비는?
• 아파트 매미가 유난히 시끄럽고 오래 우는 이유는?
• 조선이 미국에 파견한 외교사절단 보빙사(報聘使)가 혼비백산한 지진의 정체는?
◎ 사는(buy) 집을 만드는 것은 가격이지만,
사는(live) 집을 만드는 것은 과학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며 한국인의 삶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주거공간을 ‘한옥(韓屋)’이라고 재정의한다면, 오늘날 한옥에 가장 부합하는 주택은 ‘아파트’다. 우리나라 사람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며, 전체 주택의 3분의 2가 아파트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대단히 생소한 주거 양식이었다. 1970년 <총인구 및 주택조사>(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보면 전체 주택 가운데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0.8%에 불과했다. 집의 수명이 수십 년인 점을 고려하면, 실로 놀라운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매주 아파트 가격 동향을 발표하고, 모든 경제 주체가 가격 추이를 예의 주시하는 전 세계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영혼을 끌어모아서라도 소유하고 싶은 최고의 재화이다. 수백, 수천 세대가 학교·병원·상가·공원 등을 공유하는 아파트 단지는 ‘동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삶에서 아파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아파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집값에 관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아파트가 딛고 선 과학적 토대에 관해 질문하면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우리나라 아파트 수명이 왜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짧은지, 60억 원 넘는 초고가 아파트마저 왜 층간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 2000년대 초반 갑자기 우리나라에서 새집증후군이 대두한 이유가 무엇인지,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오른 아파트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작업자 6명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등 아파트에 관한 수많은 궁금증을 풀 열쇠가 과학에 있다.
◎ 가장 한국적인 주거공간을 만든 과학
아파트는 도시화·산업화의 산물이다. 최초의 아파트는 2천 년 전 로마시대에 서민들에게 임대하기 위해 만든 인술라다. 로마제국은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도시가 팽창하자, 좁은 땅에 여러 층을 올린 인술라를 지어 주택난에 대응했다. 현대적 아파트의 원형을 만든 건축가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집을 잃은 많은 사람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쾌적한 주거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수직으로 높이 쌓아 올린 공동주택을 고안했다. 그의 이상을 구현한 것이 1952년 프랑스 마르세유에 지어진 ‘유니테 다비타시옹’이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철근콘크리트로 된 단일 건물 안에 337가구가 거주하는 혁신적인 주택이었다. 그러나 같은 형태의 건물 여러 채를 지어 단지를 조성하려 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구상은, ‘미친 집’ ‘정신병의 온상’과 같은 거센 비난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공동주택 모델이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국가가 한국이다.
1950년대 한국은 전쟁으로 많은 가옥이 파괴된 상황에서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며 극심한 주택난을 겪었다. 아파트는 가난한 나라에서 주택을 대량으로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었다. 한국은 1962년 서울 마포에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불과 반세기 만에 국민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거 혁신을 이뤘다. 도시는 고밀·고층의 아파트를 기반으로 상수도 보급률을 100% 가까이 끌어올리고 빠르고 편리한 대중교통체계를 구축했다.
아파트라는 고밀·고층의 공동주택이 전 세계에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대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아파트는 좁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개발된 주거 형태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아파트는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는 도시지역의 집단 거처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주거환경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개선하고 발전한 한국은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파트 안팎의 주거환경 격차는 더 큰 폭으로 벌어졌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많은 사람이 갖고 싶고 살고 싶어 하는 주거공간이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를 받아들인 지 6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기저에 깔린 개념이나 평면 형태는 무척이나 달라졌다. 거실을 중심으로 방과 부엌이 둘러싸고 있는 한국 아파트의 전형적인 평면 구성은 마당을 중심으로 공간을 배치하는 한옥의 평면 구성이 변형된 형태다. 한국의 아파트는 세계 그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 우리만의 독특한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아파트를 만든 과학 역시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주된 주거공간과 분리되어 있던 부엌을 집의 중심 공간으로 들이고, 한국인의 남향 선호를 공동주택에 반영하고, 하중이 큰 온돌을 깔고도 건물을 수직으로 높이 세우고, 고층화 추세에 맞춰 고강도 콘크리트를 개발하는 등 한국의 주거 문화를 뒷받침하는 과학도 독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 창문 크기부터 화단의 나무 한 그루까지,
과학의 시선으로 아파트 구석구석을 탐색하는 ‘과학 집들이’
아파트의 뼈와 살에 해당하는 물질은 콘크리트다. 콘크리트는 고대 로마시대에도 사용됐을 정도로 오래된 건축 재료로, 인간이 물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물질이다. 아파트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강도 높은 콘크리트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2016년 완공된 롯데월드타워에는 150MPa(메가파스칼)의 초고강도 콘크리트가 사용되었다. 150MPa은 성인 손바닥 넓이에 중형차 100대를 쌓아 올려도 버틸 수 있는 정도의 강도다. 콘크리트의 강도를 높이는 원리는 무엇일까?
“슈퍼콘크리트의 핵심은 ‘공극률’을 낮추는 데 있습니다. 공극률은 단단하게 굳은 콘크리트 전체에서 비어있는 공간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합니다. 공극률이 낮아질수록 콘크리트가 버틸 수 있는 무게가 늘어납니다. 즉 압축 강도가 커지는 것이죠. 공극률이 낮아지면 외부 물질의 영향을 덜 받아 콘크리트의 수명도 늘어납니다. 슈퍼콘크리트는 빈틈을 줄이기 위해 1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충전재와 나노미터 크기의 특수 혼화재를 사용합니다. 그 결과 슈퍼콘크리트의 공극률은 일반 콘크리트 대비 5배 이상 줄어든 2% 이하입니다.” _<아파트의 뼈와 살, 콘크리트>(155쪽)
우니라라 아파트에서 가장 많이 채택하고 있는 건축 구조는 ‘벽식 구조’다. 벽식 구조는 두꺼운 내력벽을 마치 벌집 칸막이처럼 곳곳에 설치해 수평을 지지하는 보 없이 바닥을 바로 올릴 수 있다. 벽식 구조의 가장 큰 장점은 경제성이다. 보가 필요 없기 때문에 건설 재료가 적게 들어가고 층고가 낮아 공사 기간도 줄일 수 있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저렴하게 짓기를 원하는 건설사의 이해와 맞아떨어지며, 우리나라 아파트 거의 대부분이 벽식 구조로 지어졌다. 그러나 벽식 구조는 한국 아파트의 평균 수명을 단축시키고, 층간소음을 아파트의 숙명으로 만든 1등 공신이다.
“벽식 구조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2000년대 우리나라에서 건설되는 아파트의 98% 이상이 벽식 구조로 지어졌고, 2020년대에도 건설되는 아파트 열에 아홉은 벽식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중략) 아파트에서 벽식 구조가 독보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이 구조가 만능인 것은 아닙니다. 벽식 구조는 아파트 평면을 뒤덮고 있는 내력벽을 건드릴 수 없어서 입주민이 평면을 변형할 수 없고 노후화됐을 때 리모델링이 어렵습니다. 구조 역학 측면에서 40층 이상 높이 올리기에도 부담이 됩니다. 또한 위층에서 발생한 소음이 곳곳에 존재하는 내력벽을 타고 아래층으로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층간소음에 취약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_안전성부터 층간소음까지 좌우하는 ‘건축 구조’(161~162쪽)
여름의 불청객, 매미. 그런데 아파트에서 매미가 유난히 더 시끄럽게 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공원보다 아파트 지역에서 매미가 더 시끄럽게 울고 있었으며, 열대야에는 비열대야 기간보다 울음소리가 10% 가까이 커진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한낮에 울어야 하는 매미가 밤에도 쉬지 않고 우는 이유는, 아파트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 조명이 지나치게 밝기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매미는 보통 오전 5시를 전후로 울기 시작해 오후 8시 전후로 울음을 멈춥니다. 그러나 야간에도 밝은 도시에서는 3~4시간 정도 더 길게 웁니다. 아울러 매미는 온도에 상당히 민감한 곤충인데요. 녹지가 부족한 아파트 단지가 도시 열섬이 되면서 매미를 잠들지 못하게 합니다. (중략) 플라타너스와 벚나무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성장이 매우 빠른 나무입니다. 조경을 빨리 완성하기 위해 아파트 단지마다 플라타너스와 벚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문제는 두 나무가 말매미(울음소리가 가장 큰 매미)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라는 것입니다 ”_<아파트 매미가 유독 시끄럽게 우는 이유>(129쪽)
◎ 아파트는 다양한 학문의 성취가 융합하는 ‘통섭의 장’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Isadore Kahn)은 “하나의 건물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인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했다. 건축가는 건물이라는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길 삶까지 고려해야 한다. 건축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양변기가 아파트에 정착하기까지 겪은 우여곡절은, 건축에서 인간에 대한 탐구가 왜 중요한지 알려준다. 마포아파트(1962년)는 양변기가 최초로 설치된 아파트다. 당시 국내에 양변기 제조업체가 없어 양변기는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 설치했다. 재래식 화장실에 비해 어느 모로 보나 편리한 양변기는 황당한 이유로 환영받지 못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볼기짝을 맞대는 게 고약하다”며 일부 세대가 양변기 사용을 거부한 것이다. 게다가 1960년대는 대다수 국민이 화장실 휴지로 신문지를 쓰던 시절이라 하루가 멀다고 변기가 막히는 통에, 양변기는 집안의 큰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인간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축은 설 자리가 없다.
다양한 학문이 경계를 넘나들며 지식의 대통합이 이루어지는 ‘통섭’은 먼 곳 있지 않다. 아파트는 다양한 학문이 자유롭게 융합하는 ‘통섭의 장’이다. 지하주차장의 조명 밝기 하나도 생리학과 범죄심리학의 논의를 두루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주거지의 적정 밀도를 계획할 때는 경제학과 심리학 모두에 기반을 둔 균형 잡힌 분석이 필요하다. 물리학·화학·생명공학·지질학·공학·심리학·미학 등 오늘날 수많은 학문의 성취가 아파트에 담겨 있다.
“우리가 건물을 만들고, 그 건물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말처럼,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주거공간을 창조하는 동시에 삶의 터전인 주거공간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가격만 쫓는다면, 아파트는 ‘억’ 소리 나는 가격표로 우리의 삶을 흔들 것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 대한 다양한 이해는 공간에 대한 안목을 높여주고, 그 속에서 성장할 아이들에게 값진 지적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창문 크기부터 화단의 나무 한 그루까지 과학의 시선으로 아파트를 구석구석 탐사하는 색다른 집들이에 여러분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