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 교과서를 내다 버려야 할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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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지구 생물의 85퍼센트가 변화 중!
익숙한 걱정과 방향 잃은 두려움 넘어
생명 깊이 내재된 ‘가소성’에 주목한
새로운 관점의 기후변화 이야기
자연사 저술 분야 최고의 영예로 손꼽히는 존 버로스 메달 수상자인 소어 핸슨은 ‘보전생물학자’다. 보전생물학은 생물다양성 보전과 관리를 목표로 하는 학문으로, 최근의 가장 긴급한 화두는 당연히 기후변화다. 연일 치솟는 기온이 생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기록한 핸슨의 책에서 느껴지는 것은 걱정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이다. 일반적인 우려와 다르게, 실제 자연에서 수많은 동식물은 순순히 멸종의 문턱을 넘는 대신 적응하고자 분투하며 진화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
저자는 북미의 숲과 사막, 남미의 우림, 태평양과 대서양 곳곳의 해안가, 북극의 빙해에서 동식물 연구에 매진 중인 동료 학자들의 입을 빌려 그 놀라운 이야기를 전한다. 가령 카리브해의 아놀도마뱀은 빈번해지고 강력해지는 허리케인에서 살아남고자 앞다리는 길게, 뒷다리는 짧게, 발가락 패드는 크게 진화했다. 그럼으로써 나뭇가지를 붙잡고 깃발처럼 나부끼며 강풍을 흘려 보낼 수 있게 되었다(173~179쪽). 이러한 형질 변화는 놀랍게도 단 한두 세대 만에 이뤄졌으니, 저자의 소감은 간명하다.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기대하라.”
책은 아놀도마뱀 외에도 훔볼트오징어부터 흑가문비나무까지 총 22종의 “실제로 벌어진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이 생존 전문가들의 공통점은 바로 ‘가소성(plasticity)’이다. “유전자 코드에 장착”된 유연한 적응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생태계 전체를 새롭게 조직하고 있는 것. 이처럼 기후변화는 “광범위한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기회로도 작용”하는바, 저자는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으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생태계의 작동 방식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인간 또한 나름의 가소성을 발휘해 더 나은 미래를 찾아갈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조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정하라”
이동하고 바꾸고 변이하는 상상초월 진화 분투기
보전생물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기온이 높아질수록 진화도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진화는 수만 년이 아니라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이뤄진다. 서식지를 옮기는 즉각적인 반응부터 유전자가 변하는 궁극적인 변화까지 연구자들을 놀라게 하는 “깜짝 쇼”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저자는 바로 이 ‘오늘의 세계’를 확인하고자 생물학, 생태학, 기후학, 지질학, 박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짧게는 수년, 길게는 평생을 바쳐 연구를 수행 중인 학자들을 만났다. 이제는 자연을 연구하는 어떤 분야도 기후변화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이들은 모두 ‘기후변화 생물학’이라는 큰 틀에서 함께한다.
[변화_비건으로 진화한 알래스카의 회색곰]
생물들은 먹이와 성격, 심지어 형태까지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알래스카의 회색곰은 최근 ‘채식’의 비중을 크게 높였다. 많은 사람이 곰 하면 겨울잠을 자기 전 살을 찌우기 위해 연어를 잡아먹는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연어는 단백질 함량이 70~80퍼센트에 달해 ‘다이어트 식품’에 가깝지, 살 찌는 데는 큰 도움이 안 된다. 다만 곰은 연어를 엄청나게 많이 먹어 이를 만회할 뿐이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알래스카에 일찍 봄이 찾아오자 엘더베리라는 열매가 더 일찍, 더 많이 열리게 되었다. 이 장과류는 단백질과 탄수화물 비율이 2:8로 곰을 매우 빨리 살찌운다(155~158쪽). 곰으로서는 사양할 이유가 없으니, 오늘날 알래스카에서 곰을 보려면 강가 대신 숲속을 뒤져야 한다.
한편 먹이는 동물의 성격과 행동을 바꾸기도 한다. 태평양 일대의 나비고기는 굉장한 공격성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차지한 산호를 자나 깨나 경계하고 침입자를 몰아낸다. 역시 산호에 살며 광합성으로 당분을 만들어 먹이를 제공하는 와편모충류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해양 열파로 와편모충류가 자취를 감추자 먹이가 부족해진 나비고기도 온순해졌다. 1분 1초라도 더 살아 있기 위해 경계하고 싸우는 데 쓸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다. 이처럼 “싸움의 비용이 승리의 보상을 넘어”설 때 동물은 성격을 바꾼다(166~169쪽).
무엇보다 급진적인 변화는 형태에서 나타난다. 캘리포니아만 앞바다에 사는 훔볼트오징어는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대왕오징어로도 불린다. 그런데 해양 열파가 맹위를 떨치자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해양생물학자들이 조사해보니 훔볼트오징어는 다른 종으로 보일 만큼 작아져 있었다. 즉 환경이 열악해지자 기존보다 절반만 살고 그만큼 작게 자라는 쪽을 택한 것(164~166쪽). 이처럼 자기 생까지 깎아내는 극단적인 변화가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저자가 “인간도 동물과 식물에 영향을 미치는 힘에 똑같이 지배”당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이유다.
[서식 범위 이동_나무들의 진군이 시작되다]
수많이 생물이 이상기후를 피하고자 서식지를 옮기고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인데, 그 이동 범위와 방법은 상식을 벗어난다. 북미의 갈색펠리컨은 더위를 피해 1440킬로미터나 북쪽으로 날아갔다. 따개비부터 병코돌고래까지 각종 해양 생물도 평균 345킬로미터를 이동했고, 후드윙커개복치는 아예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고향을 바꿨다(95~98쪽). 이러한 대규모 재배치를 ‘글로벌 위어딩(global weirding)’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동식물의 최소 25퍼센트에서 최대 85퍼센트가 이주 중이다(135쪽). 워낙 광범위한 지역에서 수많은 개체가 움직이므로, 분석을 위해 인공지능과 알고리즘까지 동원된다(234~236쪽).
그렇게 밝혀진 글로벌 위어딩의 가장 ‘이상한’ 경우는 바로 나무다. 말 그대로 나무도 자신의 ‘쾌적 온도’를 찾아 움직인다. 발도, 날개도, 지느러미도 없는 나무가 어떻게 움직인단 말인가. 해답은 종자의 “새를 통한 장거리 운송”이다. 가령 유럽에서 대왕참나무는 거의 전적으로 파랑어치에 의존해 이동한다(10년간 3.5킬로미터). 식물학자들은 20세기 전부를 바쳐 이를 실제로 관찰하고 증명해냈다. 흥미로운 점은 나무의 이동 거리가 처음 예측을 아득히 뛰어넘어, 때로는 새보다 빠를 정도라는 것이다. 가령 북미의 미국흰참나무는 10년간 17킬로미터를, 새우나무는 34킬로미터를, 쥐엄나무는 64킬로미터를 이동한다(147~151쪽). 이는 나무의 놀라운 이동 능력뿐 아니라 적응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새로운 서식지에는 새로운 관계가 있다. 즉 낯선 이웃, 천적, 먹이와의 얽힘이 생존을 좌우한다. 나무의 서식 범위 이동은 생태계가 무수한 관계의 연속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유전적 변이_더는 구애하지 않는 수컷들]
기후변화는 짝짓기 풍경도 바꾸고 있다. 가령 수컷 목도리딱새의 유명한 왕관 모양 깃털은 크기가 작아지고 색이 칙칙해졌다. 날이 더워지자 짝짓기 경쟁을 회피해 에너지를 아끼는 것으로 보인다. 수컷 큰가시고기는 더는 춤추지 않는다. 무더위로 녹조가 잔뜩 낀 물에서는 아무리 춤을 춰도 암컷이 볼 수 없으니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182~185쪽). 더 극단적인 경우로는 북미 사막 지대의 울타리도마뱀이 있다. 가뜩이나 사막에 사는 녀석들인 만큼 기온 상승에 예민해 최근에는 거의 온종일 그늘만 찾아다닌다. 자연스레 먹이 활동할 시간이 줄어들자, 끝내는 “아예 새끼를 낳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81~83쪽).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생물들이 당장 ‘인구 절벽’을 맞닥뜨리지는 않겠지만, 유전적 다양성은 확실히 줄고 있다. 북미 로키산맥의 송어들이 좋은 예다. 수온 상승으로 컷스로트송어의 원래 서식지인 차가운 물이 따뜻해지자, 그런 온도를 좋아하는 무지개송어가 섞여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구 교배가 이뤄져, 가뜩이나 수가 줄고 있던 컷스로트송어의 유전적 다양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얼마 안 가 컷스로트송어의 존재는 무지개송어 유전자의 일부 DNA로만 확인될지 모른다. 사실 이는 우리 인간에게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호모사피엔스의 유전자에는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남아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진화의 새로운 차원을 엿본다. 즉 특정 종으로서는 멸종하더라도 DNA는 끝내 보존한다는 것. 이것이 기후변화 시대에 “잡종”이 맡은 역할이다(189~192쪽).
“모든 일을 할 순 없지만, 어떤 일도 할 수 있다”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서
혹자는 기후가 지구 역사상 언제나 변해왔다고, 따라서 지금의 기후변화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지 모른다. 사실 5500만 년 전의 팔레오세-에오세 극열기 때는 지금보다 무덥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현재는 기온이 너무나 빨리 오르고 있어 상황이 전혀 다르다. 19세기 말에 예측한 3000년어치의 탄소 배출량을 채울 때까지 고작 30년도 남지 않았을 정도다(39~40쪽). 이런 극한의 환경에 모든 생물이 잘 적응 중이라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가령 데스카마스는 이른 봄에 속아 수분을 도울 곤충이 활동하기 전에 꽃을 피웠다가 번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71~75쪽). 남미 고지대의 새 수십 종은 0.39도의 기온 상승 때문에 멸종하고 말았다(114~119쪽).
이처럼 생물들은 진화라는 기회와 멸종이라는 위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고 있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기존 논의는 이 지점에서 무책임한 낙관, 또는 염세적인 비관으로 흐른다. 전자는 녹색 경영, 탄소 저감 기술 같은 온갖 첨단의 것을 제시하며 꿈꾸듯 희망에 빠진다. 후자는 문제가 너무 거대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절멸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태도들에 “조금 옳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진실의 정반대”라 소리를 높인 저자는 다시 한번 가소성을 강조한다. 특히 저자가 정말 기대하는 것은 “변화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의 가소성이다. 자연에서 가소성은 개체 단위에서 발휘되어 개체군, 종, 군집 전체로 퍼져나간 끝에 모두의 생존을 돕는다. “같은 패턴을 (인간)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즉 우리 또한 각 개인이 당장 바꿀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도마뱀이 한두 세대 만에 다리 모양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정도의 변화는 능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소소한 행동과 태도가 모여 세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합당한 접근법이다.” 그러니 일단 시도해보자.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