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책만 읽으려고 하면 똥꼬에 팬티가 끼어서 간지러울까.
게임 생각도 나고, 미뤄 둔 숙제도 갑자기 당장 하고 싶고.
위층 도현이한테 물어볼 게 생각나서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기도 해.
또 소파에 올라가서 뛰고 싶기도 하고, 자꾸 목일 말라서 물 마시러 주방에 왔다 갔다 해.
그런데, 나는 책을 안 읽어도 우리 형보다는 천재야.
“책 좀 읽어라, 책 좀 읽어.”
책 좀 보라는 말은 언제부턴가 아이들에게 게임을 그만하라는 소리보다 더 무서운 소리가 되어 버렸다. 유튜브, 게임 등 온라인에서 만날 수 있는 흥밋거리가 많아지면서,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고 스마트폰을 몇 분 정도 봐도 된다는 거래를 하는 게 흔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과, 책 보다는 더 재미있는 것을 찾는 아이들의 바람이 거리를 좁히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책을 읽는다는 건 성인에게도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책보다 재미있는 게 더 많은 아이들에게는 책을 읽는 게 지루한 일이기도 하다. 교과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고학년이 되기 전에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부모의 바람이 어쩌면 아이들을 책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범인은 바로 책이야》는 이런 부모의 바람과, 다른 아이의 바람의 경계를 절묘하게 짚어 낸 이야기이다. 알아서 책을 척척 읽으면 좋겠지만, 책을 안 읽어도 형보다 똑똑하다고 큰소리치는 민재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나와 똑 닮은 아이 민재를 보면서,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책에 대한 부담에서 잠시 벗어나 보면 어떨까.
민재는 무독서가, 우리 집 무독서가!
《범인은 바로 책이야》는 책보다 스마트폰이 갖고 싶은 민재의 바람을 담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바람은 이 책을 읽는 모든 어린이, 아니 스마트폰이 없는 모든 어린이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책 한 권 읽고, 스마트폰 1시간 할 수 있는 풍경은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다. 민재의 엄마는 민재가 왜 책을 읽지 않는지 너무 궁금하지만, 민재에게 적절히 밀고 당기기를 할 줄 아는 엄마이다. 아이를 재촉하기보단, 어느 정도 허용하면서 기다릴 줄 아는 엄마이다. 그리고 민재를 임신했을 때 엄마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민재가 책을 읽기 싫어하는 것이라고 민재를 이해해 준다.
책만 읽으려 하면 똥꼬가 간지럽지만,
나는 게임을 좋아하는 독서가야!
민재는 여느 아이들처럼 게임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이다. 책만 읽으려 하면 똥꼬가 간지럽고, 숙제를 당장 해야 할 것 같고, 물도 마시고 싶어 온몸이 쑤시는 그런 아이이다. 민재 생각에 자신은 그냥 책을 안 읽는 어린이가 아니다. 학교에서 하루 10분 독서도 하기에 책을 읽기는 한다. 책을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형에게 가끔씩 비교를 당하는 게 조금 신경 쓰이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음에도 형은 경찰 아저씨하고 경비 아저씨를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 아닌가. 그런 형에 비해 민재는 편의점 아저씨가 인사 잘하는 애들한테만 젤리를 공짜로 주는 것도 잘 알고, 엄마 마음에 들게 말할 줄도 아는 눈치 빠른 어린이이다. 그런 민재이기에 이 책을 읽는 보통의 어린이들이 ‘나하고 똑같아.’ 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서점에서 책을 읽고 그냥 두고 온 건 범죄야
우리 엄마는 내가 구한다!
책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책을 소중히 하는 민재
엄마의 강권에 못 이겨 서점에 간 민재는 자신이 서점을 한 바퀴 돌고 난 뒤에도 여전히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엄마를 보고 크게 놀란다. 그런데 엄마가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난 뒤에 그 책을 사 오지 않고, 그대로 두고 오자 범죄자가 되어 버린 엄마를 걱정한다. 이때부터 민재의 머릿속에는 온통 엄마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이리저리 알아보다 결국 엄마한테 돈을 빌려 책 살 돈을 마련한 민재는 엄마에게 어버이날 선물로 책을 선물한다. 책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끝까지 다 읽은 책을 구입하지 않은 엄마를 걱정하며, 범죄의 늪에서 구해 낸 뒤에야 비로소 안심한다. 자신이 책을 읽는 데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 책은 사서 읽어야 한다는 마음이 바탕이 된 행동이다. 처음에는 엄마와 책 읽기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 같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민재와 엄마는 서로의 어긋난 바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어우러진다. 책 읽기를 많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소중히 하는 생각을 가질 줄 아는 민재의 마음이 예쁜 이야기이다.